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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oookong May 29. 2022

외발자전거

vol. 중국 하이난 - 1 -


하나의 바퀴로 달리는 외발자전거. 서커스단의 수려한 묘기나 화려한 축제마당에서 펼쳐지는 퍼레이드 쇼에서나 봤음직한 외발자전거는 앞뒤로 바퀴가 두개 있는 일반 자전거보다 중심잡기가 힘들고, 조금만 비틀거리면 그대로 쓰러져서 보기만 해도 긴장이 된다. 그런 외발자전거를 능수능란하게 운전하는 기수들은 수 천 번의 낙

오 끝에 벗겨진 굳은 살 위로 균형이란 새살이 돋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토록 충분한 연습시간도 없고, 축제의 환희도 아직 모르던 어느 날 갑자기 외발자전거에 오른 사람들이 있다. 홀로 부모의 두 몫을 다하는 '한 부모 가정'의 엄마들, 그 아홉 가족과 함께 한 중국여행기를 따라가 본다.


- 1 -


십이월의 어느 금요일 저녁. 도심의 번화가만큼이나 인천국제공항에도 여행자들의 불금이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 하나투어문화재단에서 주최한 사회공헌프로젝트 '가족愛발견'으로 특별히 선정된 종로구의 아홉 가족이 모여 중국의 섬, 하이난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나는 인솔을 돕고, 여행 후에 쓸 '아름다운 기록'을 위해 동행에 나섰다. 만날 사람들은 꼭 만나게 되어있다고 했던가? 공교롭게도 이 아홉 가족들과 내가 한 동네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출발 전부터 기대를 가지게 했다. 공항에 모인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목에 자신의 이름이 적힌 명찰을 걸고 있었다. 하지만가족들은 명찰이 무색하게 서로 데면데면하기만 했다. 이번 여행의 동행자들이 서로 이웃동네에 거주하고 있다고 사전에 공유해주었지만 생각해보면 바로 옆집에 사는 이웃과도 말을 섞을까 말까한요즘, 어쩌면 처음의 어색한 분위기가 여행기간 동안 갖게 될 추억의 덤인지도 모르겠다.


"선생님, 비행기에 떡도 가지고 탈 수 있어요?"


기쁨이(가명)의 질문이었다. 나는 장난기가 발동해 떡이 아니라 떡 할아버지도 모시고 타고 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점잖게 '괜찮다'고 대답했다.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기쁨이는 이번에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가 본다고 덧붙였다. 장난치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생각할 즈음 기쁨이 뒤로 서있던 아름이(가명)의 엄마도 질문을 했는데, 아쉽게도 대답을 해드리지 못했다.


"그럼 인슐린은, 그건 가지고 타도 되요?"


지적장애와 당뇨병으로 투병 중인 아름이의 엄마는 어디를 가든 필수적으로 인슐린과 주사바늘을 준비해야하는데, 나는 그 사실도 정확히 몰랐지만 그동안 숱하게 비행기를 이용하면서 기내에 주사약과 바늘을 가지고 탈 수 있는 지에 대해 궁금한 적이 없었다. 다행히 하나투어문화재단 인솔담당자가 대답을 해주어서 알게 되었는데, 가급적이면 기내에 가지고 타는 게 좋다고 했다. 수하물 칸의 냉기로 인슐린 약병이 터질 수도 있다는 이유였다. 알려면 충분히 알 수 있었고, 모르면 평생 몰랐을 질문과 대답이었다. 그때 새삼 떠오른 생각은 때로 우리에게 당연한 사실이 누군가에게는 매우 진지한 낯섦이기도 하다는 것. 마치 처음 가 본 국제공항에서 길을 잃었던 나처럼 누군가에게 당연한 노선이 나에게는 몹시 생소한 여정이듯이 말이다. 인솔자들을 비롯한 이번 여행 동행자들은 강강술래를 하듯 둥글게 서서 서로 눈을 맞추며 안전하고 즐거운 여정을 기원한 후, 비행기에 올랐다.



중국 싼야 국제공항. 제일 먼저 중국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다른 동남아 같은 밤풍경과 공기가 놀라웠다.

냉소적인 공관들의 표정에 긴장된 마음도 계절을 역행하는 훈훈한 날씨로 누그러졌다. 한국에서 내내 겨울로 살다가 만난 약간의 습도는 반가운 옵션이었다. 나는 가족들의 표정을 살피다가 순간 풉 하고 웃음이 났다. 보통은 여행지에 도착하면 기분이 들뜨기 마련인데, 일정상 새벽에 도착해서인지 가족들의 표정은 좋은 기분을 한 껏 드러내지 못하는 피곤이 묵직하게 내려앉았기 때문이었다. 본격적인 가족애재발견이 시작되기도 전에 저질체력의 재발견을 할 수 있던 순간이었다. 역시 여행은 체력이 반인가 보다. 우리는 바로 명랑한 내일을 기약하고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엄마와 떠난 여행지에서의 첫 날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세상에 사연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이번 프로젝트 여행에 함께 한 아홉 가족도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이미 짐작했겠지만 공항에서 내게 기내에서 떡을 먹어도 되냐고 물었던 기쁨이는 지적장애 3급으로 생활에 불편함은 없으나 엄마의 긴밀한 보호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쁨이는 뛰어난 첼로 연주 실력으로 일찍 예술고등학교 합격을 받아놓은 상태였다. 출발 전, 인슐린 주사약을 걱정했던 아름이네도 지적장애와 당뇨를 앓고 있는 엄마가 경제활동이 어려워 경제적 불안을 의지할 데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말 수가 없어도 너무 없었던 아름이와는 마지막 날에야 겨우 짧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는데, 독학으로 배운 애니메이션 드로잉을 배웠다는데 실력이 수준급이었다. 이 두 가족 말고도 모전여전을 증명하듯 미모의 예쁨이(가명)네는 목발 없이 다니기 힘든 엄마와 자매처럼 살아가고, 큰 키와 씩씩한 성격과 달리 정도 많고 눈물도 많은 마음이(가명)는 신체장애를 안고 있지만 자신과 같은 처지의 장애우를 돕는 일을 하고 싶다며 사회복지사1급을 준비 중이다.


든든했던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또 이기적인 아빠에게서 돌연히 버림받아서 혹은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없는 여건이어서 자녀들 곁에서 엄마 홀로 바쁘다. 결코 간단하지 않은 사연들 속에서 마음이 바쁜 엄마 곁을 자녀들이 지키며 살아간다. 부모가 함께 존재하는 가족보다 몇 배 더 고단해야할까, 그 심리적 고단함의 끝은 있을까. 감정에 치우치지 않으려고 담담히 질문해 봤다. 하지만 이런 물음들은 의미가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엄마들은 어느 엄마나 다 똑같고, 자녀들도 우리와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나 또한 일찍 한 부모 가정에서 자랐고, 그래서 알고 있다. 감히 다른 게 있다고 주장한다면 서로에 향한 안쓰러움이 다를까, 행복할수록 부푸는 미안함이 더할까, 서로 알면서도 외면하는 외로움이 더할까.. 저 멀리 창밖으로 보이는 불빛 속에서 엄마의 미소가 별처럼 반짝였고, 나도 엄마와 함께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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