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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oookong Nov 18. 2019

장난하나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 갔다

오랜만에 끄적이는 내 우주가 또 시끄럽기 짝이 없다.

시작은 이랬다. '뭐든지 다 하고 싶었는데 아무것도 하기 싫고, 다 할 수 있을 것 같더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함..  왜 이토록 애매한 상태로 방황하는 거지?'

불현듯 머릿속에서 이런 생각들이 부풀기 시작하더니 서로의 꼬리를 물고 빙빙 돌기 시작했다. 얼핏 보면 심각해 보여도 들여다볼수록 의미 없고 가벼운 생각들이었다. 어쩌면 반복되는 내 우울감이 날씨와 컨디션, 코 앞의 현실들을 핑계 삼아 이 농담 같은 생각과 감정을 억지로 붙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꽤나 진지한 태도로 말이다. 우습게도.

 

'플라시보'는 가상의 무언가를 세뇌시키면 마치 원래 그랬던 것처럼 믿게 되는 효과를 말한다. 이를테면 초콜릿을 입에 넣고 '이건 두통약이야 이 초콜릿을 먹으면 두통일 금세 사라질 거다' 생각하며 믿고 의지하면 정말 그 초콜릿이 두통약의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용어부터 왠지 사이비 철학자 이름 같은 이 '플라시보'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인간이 이렇게나 단순하구나' 하고 놀라곤 한다. '착각이 빚어낸 긍정, 플라시보'를 나는 지난 주말, 매우 부정적으로 이용해 의도적인 몸살을 앓았다. 세뇌의 방식은 다르지 않았다. '나는 아프다. 약간 피곤한 것 같지만 몹시 앓고 있는 중이다. 귀찮고 몸이 무거우니까 이건 몸살이다' 하고, 계속 의식 속에 이 말을 넣으니까 정말 침대 속이 늪이 되어 나는 헤어 나올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었다. 겨우 잠시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을 때, 우연히 본 거울 속의 나는 실컷 두들겨 맞고 기절했다 깨어난 사람처럼 볼성사납게 붓고, 푸석하고 고단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아프지는 않았던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게 일어나고 있는 하나부터 열까지, 그 사이 촘촘히 박힌 하나하나의 문제들은 내가 잘못 사용하고 있는 플라시보가 아닐까. 나는 뭔가 시작하기에 나이도, 여건도, 능력도 애매하다. 나는 무난한 성격 탓에 상처를 자주 받는다, 나는 특별한 취향이 없이 두루뭉술하다. 나는 부자가 아니고, 원하는 만큼의 부를 누릴 수 없다. 나는 예쁘지고 않고, 뭐 하나 자랑할만한 게 없다. 나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나는 이상이 높다. 나는 모든 게 의미 없고, 재미없다. 나는 사는 게 지겹다. 나는.... 일부러 아픔을 세뇌시키듯 스스로 우울하게 만들고 있었다는 깨달음 비슷한 것이었다. 내 잘못된 플라시보의 근원을 찾아보면 어떤 이유로 내가 자존감이 낮아졌고, 아직 회복이 되지 않은지도 모른다. 나를 아끼고 위한다고 하면서도 나는 스스로를 진지하게 위하고 보호한 적은 없었던 것이다. 생활습관, 생활속도, 자기중심의 무게, 삶의 방향.. 어느 것도 진지하게 변화를 시키거나 다독이지 않았던 것 같았다. 내 안에 지배적으로 깔려있는 루저 마인드가 나를 무의미함의 함정으로 계속 끌고 들어가고 있는데, 나는 그 모습을 '그럴 수 있음'으로 '어쩔 수 없음'으로 방치했던 것이었다. 스스로를 가꾸려는 의지를, 그 의미를 찾으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차피'라는 미지근한 태도를 내세워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해 먼저 방어하고, 미리 방관했던 것이다.


글을 적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이긴 하지만 잘못된 플라시보를 당장 희석시키려면 그 명약은 '깨달음 망각의 제거'인 것 같다. 깨달음을 잊어버리지 않는 진정한 플라시보, 약간 과할 정도의 세뇌가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이다. 더 이상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다간 내게 주어진 긍정들도 잡히지도 사라지지도 않은 채 거품이 되고 말 테니까. 어떤 것부터 해야 할까... 무의미도 의미였음을 알게 될 나의 착각, 나의 플라시보 업사이클.

깊이 생각 말고, 당장 노트북을 덮고 세탁기에 쌓아둔 빨래부터 해치워야겠다. 구겨진 옷을 다리고, 계절이 지난 옷들을 과감하게 정리해야겠다. 긴가민가한 생각들과 기대를 걸고 있던 일들도 내 손을 떠났다면 버리자.

장난은 재미없다. 소소하더라도 직접 변화를 일으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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