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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oookong Apr 04. 2018

아직도 그 두통약

우정은 거기서부터

계속되는 스트레스가 위장장애를 일으켰다. 크지도 않은 샌드위치를 반으로 나누어 겨우 먹었는데, 그게 얹힌 건가 속이 답답하다. 불면증인 내가 요 며칠 잠을 잘 잔 덕에 오늘 아침은 가볍게 시작했는데, 아직 적응이 안 된 '국가'일을 해보겠다고 덤벼서인지 오후로 갈수록 어깨는 굳어가고 표정도 건조해졌다. 일당백. '국가'일은 전공분야가 아니라 이 일을 이해하기에도 벅차고 갑작스레 부여받은 아이템을 일주일 안에 처리해내려니 소화시킬 업무량이 엄청나다. 원래 작가가 하는 일이 초반의 구조적인 일부터 후반의 잡스러운 일까지 손이 안 닿는 데가 없다만 보통은 그것들을 체계적으로 잘 하라고 그룹을 구성해준다.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온리원 제도. 원소스 멀티유즈의 표본이랄까. 기초부터 가공, 판매까지 단독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다행히 연출가가 이 분야에 빠삭한 지식과 정보, 역사와 문화를 꿰뚫고 있어서 보완이 되어주고 있지만 그래도 각자의 역할이 있는 만큼 내가 처리할 몫이 분명한 건 사실이다. 물론 작가로서의 어떤 맹꽁한 자존심도 관여 안됐다면 거짓말이고. 이 투덜댐에는 이유가 있다. 이렇게 혼자서 전천후를 달리다 보니 이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걸림돌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프리랜서로 한 평생을 일하면서 사실 선 인간관계 후 가성비의 태도로 임해왔다.

결과는 짐작한대로 경제적으로는 좋지 않고, 인맥적으로는 좋았다. 그 인맥도 경제적으로 난관에 부딪히면 홍해 물 갈라지듯 나뉘는 꼴도 봐왔고. 이런 나의 업무태도를 놓고 측근들은 현실성을 가져라, 자기 우선주의를 지켜라 걱정 어린 조언들을 던져대지만 어디 사람이 쉽게 변하던가. 아닌 척해도 또 원점, 안 그려려고 해도 또 원점이었던 나였다. 연차가 쌓이고, 더 많은 부류의 사람들을 겪으면서 사람들이 다 내 맘 같지 않다는 걸 뼈저리게 인지하면서부터는 일에 있어서 현실성과 가성비를 따지지 않을 수가 없게 됐다. 그러므로 사람은 변한다.


내가 이렇게 변해가는 동안 각자의 세상에 뿌리를 내리느라 서서히 소원해진 친구들도 있다. 모두 한 번쯤은 경험했겠지만 순수하던 시절, 순수하게 어울렸던 친구들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 만난 대도 그 간의 시간은 순간 삭제, 그때 그 시절로 자동 시간여행이 가능해지는 경험 말이다. 모습은 누가 봐도 어르신들인데, 대화를 나누는 태도나 눈빛에서 느껴지는 묘한 동심. 친구들은 그런 마법을 갖고 있나 보다. 대학시절을 내내 붙어 다녔던 친구에게서 오늘 안부를 받았다. 그 시절에 우리는 무리 지어진 친구들 사이에서도 유독 정을 더했고, 고민을 나눴던 사이였다. 그 친구는 키가 평균보다 크고 나는 평균보다 작았다. 그 친구는 긴 얼굴형이었고 나는 둥근 얼굴형이었다. 그 친구는 하얗고, 나는 까맸으며 꼼꼼한 그 친구에 비해 나는 덜렁거리기 선수였다. 한 마디로 손 많이 가는 캐릭터. 그게 나였다. 지금도 여전하고. 말고도 그 친구와 나는 외형상 딱히 공통점이 없었다. 그거 하나, 사람에 대한 배려심이 닮아있었다. '사람은 다 똑같지'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나는 내 기분이 상할 것 같은 경우, 내가 필요할 것 같은 것 등을 고려해 나름 세심하게 사람들을 관찰하고 챙기는 편이었는데 마침 그 친구가 그랬다. 우리가 처음 만난 건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첫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버스정류장에서 143번 버스를 기다리는데, 그 친구가 곁으로 왔다. 좀 전까지 한 강의실에서 본 얼굴들이라 우리는 한 번에 과동기라는 사실을 알았고, 촌스러운 질문들을 이어갔다. 그 시절 나는 편두통을 달고 다녔었는데 딱 그날도 한쪽 머리에 통증이 있었다. 그때였다. 그 친구는 자기 가방을 주섬주섬 뒤지더니 내게 두통약 한 알을 건넸다. 그 순간, 속으로 생각했다. '어.. 얘 내 과다....' 그 날의 첫 느낌을 아직까지 잊지 못한다. 아마도 고마움보다 반가움이 더 컸던 것 같다. 

낯선 사람이지만 그것보다 당장 그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은 배려심. 우리 가족 외에는 없는 줄 알았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있다. 우리가 서로 달랐던 것처럼 그 친구는 꾸준히 직장을 다니며 결혼을 했고, 나는 프리랜서로 전전하며 불안한 미혼 상태로 말이다. 웃음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대화는 그때 그 시절에 머물러 있다는 게. 그 친구가 건네준 두통약은 그때 당시에 먹지 않고, 아직 내 추억의 상자 안에 있다. 자주 앓는 편두통이라 약은 안 먹어도 될 것 같았지만 더 큰 이유는 시절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늘 뜻밖에 걸려온 그 친구의 안부에 신기하게도 얹혀있던 속이 편안해진 느낌이 들었다. 두통약 대신 이번엔 안정제를 건네주신 듯?! 


일이 도통 끝나지를 않는다. 앉은자리에서 거의 8시간은 있었던 거 같은데.. 내일은 아침 일찍부터 부산을 떨어야 한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제 엉덩이 털고 일어나 자리를 정리해야 될 거 같다.  오늘의 심적 소화불량은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것으로 해소해 보려 한다. 날씨가 좋다. 봄은 봄인데, 창 밖 풍경만 영화 보듯 보고있다. 이 계절 말고 진짜로 내게 오고 있는 봄은 좀 다른 모습이겠지!   


- maybe dooookong's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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