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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oookong Mar 28. 2018

필요에 의한 존재

그림자 자아(自我), 필요한 허상(虛像)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는 사람들이 모른채 살고 있는 심리적 존재, 정신분열이 만들어낸 존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후기한다. 유명 소설가로 등장하는 장재열은 호불호가 강하지만 유쾌하고 로맨틱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실제로 현실에서는 쉽게 만나볼 수 없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소설가인 장재열의 직업도 작가의 적극적인 의도였다고 의심한다.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를 마치 사실처럼 그려내 독자로 하여금 임의로 제작된 세상에 몰입하게 하는 것이니까 장재열이란 성격, 배경, 외모까지 모든 그의 캐릭터 역시 허구이며 그가 앓고 있는 정신분열 또한 캐릭터에 맞는 매력적인 증상이라 생각한다. 각설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드라마를 정주행을 하면서 나는 시종일관 그에게 부러웠던 부분이 있었다. 바로 그의 '정신분열'이었다. 


초반부터 그의 곁에는 한강우라는 고등학생이 그를 따라다닌다. 그것도 불쑥. 한강우는 장재열이 밥을 먹거나 운전을 할 때, 또 만나지 않을 때도 수시로 전화통화로 서로의 일상을 공유한다. 심지어 한강우가 짝사랑하는 여학생에게 장재열이 그를 대신해 고백을 해주기도 하고, 위태로운 한강우의 가정사에도 장재열은 과감하게 뛰어든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응원하고, 위로하고, 함께한다. 불쑥. 느닷없이 말이다. 짐작했겠지만 장재열에게 한강우는 그의 암울했던 어린시절의 장재열이며, 현재의 공황을 해소해주는 절대적 탈출구이다. 의학용어로 스키조(schizophrenia:정신분열)라는 한강우의 존재는 자책감이란 트라우마로 사로잡힌 장재열에게 삶의 가장 큰 이유이며, 자존감의 상징적 존재였다. 평생 미안하고 고마운 존재인 것이다.


드라마 전반에 깔려 있는 '스키조'는 사실 주인공인 장재열 뿐 아니라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에게 크고 작은 트라우마로 나타나고 있다. 드러나는 증상은 다르지만 결코 그 시작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상처..

이를테면 정신과 의사로 등장하는 지해수는 지적이고 쿨한 매력을 갖고 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를 갖고 있다. 성적 트라우마. 어린 시절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간호하던 엄마의 외도를 목격한 후, 지해수는 남자와의 스킨십이나 섹스란 절대적인 배신과 더러움의 상징처럼 인지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2년을 넘게 연애를 해도 큰 용기를 내어 겨우 가벼운 키스정도만 가능하고, 트라우마로 인한 엄청난 거부감은 그 외의 관계를 나눌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투렛증후군을 앓고 있는 박수광 역시 7살 때 발견된 불안증후를 받아들이지 못한 가족 때문에  깊은 상처를 입고, 긴장하면 찾아오는 투렛 증상 때문에 삶에 자신감을 잃게 된다. 가난으로 인한 불만이 품행장애가 된 오소녀와 엄마에 대한 오해와 질투로 복수만 생각하는 장재범 등 등장인물이 안고 있는 정신적 불만과 불안과 불편은 모두 최초의 강력한 트라우마에서 기인한 일종의 정신분열 상태같아 보였다. (*의학적 정의를 무시하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아니 나는 어떤가 생각해보았다. 기분이 상할 때면 이상한 꿈을 꾼다. 조각난 꿈의 부분들은 서로 엉뚱하게 조립되고 또 다른 이야기로 연결되고 어떤 날엔 깨고 싶지 않기도, 당장 벗어나고 싶기도 한다. 꿈에서 깨어나서도 여전히 생생한 이미지들은 나로하여금 현실과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고 그날의 기분까지 좌우해버린다. 마음의 무게가 덜어내지지 않을 때, 그 꿈은 하나의 큰 덩어리가 되어 내 컨디션을 조정하는 것이다. 내게 인지되는 존재이나 그 누구도 보지 못하는 덩어리로. 내가 아닌데 나를 조정하는 또 다른 나 말이다. 약해진 나를 강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어쩌지 못하는 나를 컴컴한 구석으로 데려가기도 한다. 언제나 내가 부르면 나타나주고,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마음을 전할 수 있지만 동시에 누구도 생각지 못한 나의 잘못을 잔인하게 다그치기도 한다. 말그대로 스스로 필요에 의해 나타나는 존재인 것이다. 스키조인 장재열에게 한강우처럼 만질 수도 있고, 대화도 가능한 실질적 필요존재가 나는 부러웠던 것 같다. 정신분열을 앓고 싶다는 어리광이 아니다. 나도 설령 항상 좋을 수만은 없는 그 존재와 대화하거나 기대고 싶다는 의미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숱하게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이 생긴다. 태어날 때부터 맺어지는 가족관계도 포함된다. 그런만큼 셀 수 없는 무수한 상황과 사연들도 따른다. 사람은 삶의 순간들과 그 안에서 맺어진 관계들과 거기서 오는 갈등을 전부 다 소화하고 이해하며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그 과정 중에는 뜻하지 않게 상처를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할 것이며, 인정과 불인정 사이에서 이성과 감성의 지독한 싸움을 경험할 것이다. 누구든 내 편에 있다가도 언제든 등을 돌릴 수 있고, 나 만큼 내 모든 상태를 아는 사람도 없을 것이며, 안다해도 경험에 의한 추측에 불과할 것이다. 언제나 일방적으로 들어주기만 하는 관계는 없고 나 역시 일방적으로 내 이야기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외롭고, 외로움은 끊임없이 허상의 존재를 갈구할 지도 모르겠다. 이토록 복잡하고 변화하는 외로움의 뫼비우스에서 불쑥 느닷없이 나타나 찰나의 벗이 되어주는 존재. 나는 장재열의 정신 속에 존재하는 한강우가 부러웠던 것이다. 망상이 만들어 낸 허상일지라도 곁에 존재하기에 마음의 위기에서 극복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상한 이야기가 된 것 같지만 조심스러운 고백은 그렇다.


드라마 제목인 '괜찮아 사랑이야'는 아마도 이럼에도 저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사람들의 트라우마가 어긋난 사랑에 기인한 점에서 '괜찮다'고 위로하는 것은 아닌지. 사랑은 결국 사랑이니까. 그렇다면 나 역시 스스로 필요에 의해 그려낸 존재, 그 허상이 나에 대한 사랑이 부족해서 혹은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 온전한 자리를 찾지못해서 오는 것일테니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은 눈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불쑥 찾아오는 건 잠시 딴 생각 뿐 열심히 필요한 존재를 그려내봐도 이상하게 완성이 되지 않는다. 왜 일까? 아직은 나의 어떤 강력한 트라우마를 이겨낼 만큼 스스로를 사랑하긴 하는 걸까? 


- maybe dooookong's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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