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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건수 Mar 14. 2022

놀이터 없는 놀이터

건축과 놀이터

  누구나 어렸을 적 동네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친구와 미끄럼틀과 시소를 타다가 술래잡기와 모래놀이를 정신없이 하다 보면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고 부모님의 밥 먹으라는 소리에 맞춰 뿔뿔이 흩어지며 친구들과 내일을 기약했던 공간. 어쩌면 놀이터는 단순히 노는 장소를 떠나 우리에게 ‘공간’으로서 첫 기억이 만들어지는 곳이자, 또래 친구들을 만나 관계를 형성하는 첫 사회화의 터일지도 모른다.


마포아파트(1962) 놀이터. 코끼리 놀이터로 불렸었다 ⓒ대한주택공사 


  놀이터는 우리나라에 언제부터 생겼을까? 지금과 같이 시소, 미끄럼틀, 그네로 구성된 형태는 70년대 아파트가 보급되면서 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도시로 집중하는 인구와 폭발하는 인구수에 대응하기 위해 아파트라는 거대 주거 유형이 대안으로 등장했고, 그 사이 사이에 어린이들이 만날 수 있는 작은 공간이 마련됐다. 우리나라 최초 단지형 아파트였던 마포아파트(1962년 완공, 현 마포삼성아파트 자리)에 있었던 놀이터 사진을 보면, 어쩌면 지금보다 더 과감한 디자인을 엿볼 수 있다.


최초 아파트단지였던 마포아파트는 현재 마포삼성아파트로 재개발 되었다. 현재 마포삼성아파트 놀이터 모습 ⓒdoor2me


  그런데 60여 년이 흐른 지금도 놀이터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마치 아파트 공간이 지루하고 딱딱한 것처럼 서울을 가나, 제주를 가나 어디든 똑같다. 안전을 빙자한 단조로운 모습, 나무를 흉내 낸 플라스틱 가짜 재료, 차가운 스테인리스 철재. 그곳엔 고민은 없고 껍데기만 있다. 재건축된 마포아파트에도 새 놀이터가 등장했지만 오래전 놀이터와 비교해 보면 초라하고 누추해 보이기까지 한다. 근처에 노는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요즘 미끄럼틀에서 많이 노니?” 그러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더러워서 안 놀아요. 엄마가 옷에 뭐 묻는 거 싫어해요.” 그들에게 미끄럼틀은 그저 더러운 때가 묻은 플라스틱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학교의 조회대가, 경사로가 놀이풍경으로 바뀐 모습 ⓒ이유에스플러스건축


  다행히 최근 들어 여러 사회 운동가, 조경가, 건축가들의 노력으로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놀이터가 등장하고 있다. 권위의 상징이던 학교 조회대가 어린이를 위한 공간으로 변하기도 하고 지루했던 경사 등굣길이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쉬어 갈 수 있는 풍경으로 바뀌고 있다. 건축가인 우리도 놀이터를 디자인할 때, 마치 건축주와 이야기하며 건물을 짓는 것처럼 실제 그곳을 이용할 어린이들과 함께 워크숍을 진행하며 의견을 서로 나누고, 해당 지역에 알맞은 고유한 놀이 풍경을 만들어내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놀이터란 4S(시소, 미끄럼틀, 그네, 모래) 놀이 기구들이 모인 곳이다. 공간으로서 가능성이 무한히 담긴, 가치 있는 장소로 보는 시선은 부족하다.


  2022년은 우리나라에 어린이날이 선포된 지 100주년 되는 뜻깊은 해다.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날 선언 발표문에서 어린이를 어른과 똑같이 독립된 인격으로 대하여야 하며, 한 시대 더 새로운 사람으로서 그들의 뜻을 가볍게 보지 말 것을 주장했다. 놀이터의 주권은 어린이에게 있다. 적당한 장소를 찾아 기구를 설치하고 끝날 게 아니다. 어린이들은 아무거나 만들어 줘도 신나게 놀 거로 생각하지 말자. 우리가 조금만 더 신경 쓰고 그들의 모습에 눈을 기울인다면, 어린이들이 먼 훗날 어른이 되었을 때 각자의 다른 기억이 담긴 다채로운 어릴 적 풍경을 서로 이야기 나눌 수 있지 않을까? 멋있는 카페를 찾아 헤매는 어른처럼, 어린이들도 다양한 놀이 공간을 즐길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



이 글은 고대신문에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https://www.kunews.ac.kr/news/articleView.html?idxno=33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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