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짐 시리즈 1
깨짐 시리즈 1 : 깨진 골프공
글 / 이두래
그림 / 두래의 감성과 미드저니
매일 휘둘렀다.
내 마성의 골프채를.
밤마다 휘둘렀다.
나의 힘을.
내 다리가
내 팔이
내 허리가
내 스윙이
문제일까?
문제는
공이다.
아무래도 공, 네
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
오늘도 공을
새로 장만했다.
삐까뻔쩍하다.
팡팡!
타격감이
남다르다.
내일 필드에서는
공을 잃어버리지
않겠군.
훗
풍덩-
해저드에 빠지는 소리다.
틱!
돌에 맞고 어디론가
날아갔다.
퍽-
벙커에 빠졌다.
쒸-웅
오! 잘 날아간다
좋아 좋아.
안 보인다.
아니, 왜?
멀리서 누가 짹짹인다.
"골프공 새로 샀다더니
다 잃어버리고 가겠는데?"
욕 쓰는 페이지를
만들 생각이다.
…
오늘도
나는
공 앞에서
또 작아진다.
다 던지고
드러눕고 싶다.
잃어버린 건
골프공이 아니라
내 자존감이다.
혹시나 몰라서
로스트볼을
준비해 왔는데
참. 다. 행. 이. 다.
그러다
깨진 골프공을 발견했다.
왠지 짠해서
주머니에 넣었다.
오늘도
나는
백돌이.
골프공을 때린 건 난데
내가 아프다.
내가 맞은 기분이다.
집에서 다시 마주한
깨진 골프공.
왠지 나 같다.
골프공에 금이 갔는데
내가 부서진 거 같다.
눈물 한 방울이
깨진 틈 사이로...
처량하다.
고독하다.
깨진 골프공에
입을 그려본다.
웃고 있는 것 같다.
빨간 볼도 그려본다.
괜히 웃음이 난다.
골프공이 깨질 정도로
누군가 열심히 친 공.
어딘가 오랫동안
박혀있던 공.
이건
노력의 상징이다!
필드 위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깨지고 낡고
오래된 골프공들아!
너희들은
우리 골퍼들의
자랑이다!
마성의 골프공이다.
이렇게 내 자존감이
조금은 부풀었다.
# 작가노트
당신 마음속에도
깨진 골프공 하나쯤은 굴러다니잖아요?
골프채 대신, 인생을 휘두르며 살아가는
모든 어른이에게도 작은 위로를 건넵니다.
<깨짐 시리즈>는
어른이를 위한 작은 부서짐의 기록입니다.
우리는 아주 작고도 조용하게
티도 안 나게 부서집니다.
웃기고, 허무하고, 처량한데 어쩐지 위로가 되는
이야기들을 발견하려 합니다.
깨졌지만 여전히 귀하고,
흠이 생겨 더 내 것 같은, 그런 마음을 담습니다.
이번 이야기는 골프를 사랑하는
남편의 귀여운 괴로움에서 탄생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