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만 한 마음>
실을 끊고, 응원하는 아이들
오픈을 축하합니다.
새로운 출발 앞에 다 같이 서 있습니다.
모두들 가위를 들고 잘라주세요.
하나,
둘,
셋.
싹둑.
색색의 끈 앞에 선 사람들이 가위를 들고 일렬로 서 있다. 동시에 끈을 자르고, 폭죽이 터진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면 항상 등장하는 장면이다. 나는 검은 실을 아이들과 함께 끊어냈다. 이것 또한 마음속 선언이었다.
어느 날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내 이야기가 알려졌으면 좋겠어. 그래서 나 같은 아이가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어. 엄마가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 어떻게 됐을까. 매일매일 땅만 보고 걸어 다녔을 것 같아. 엄마가 없는 아이를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러니까 엄마는 일을 다시 해야 해. 어디든 엄마 이름이 나오는 사람이 되어야 해. 그래야 내가 덜 미안하고, 내가 행복해져.”
아이는 생각보다 많이 자라 있었다.
나는 검은색 실을 끊고, 색색의 실을 잡기 위한 순간을 기다렸다.
다행히도 여러 색의 실들이 천천히 찾아왔다. 내가 겪은 일이 세상에서 가장 힘들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너무 지난했고,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우리는 잘 견뎠고,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수 있었다. 나는 어린 시절, 이런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다. 누구에게 마음을 털어놓은 기억도 없다. 그래서 사춘기도 거칠었고, 예민했다. 지금은 그 예민함을 무기로 삼아, 섬세하게 마음을 들여다보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지금 나는 그런 방송작가 일을 하고 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해결할지를 고민하며 전문가의 자문을 받는다. 방송국에 전화를 걸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찬찬히 들어보면, 그들은 늘 같은 말을 한다.
“해결되지 않더라도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도 제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더라고요. 가장 가까운 사람이 등을 돌리는 게 너무 속상했어요.” 그래서 누군지는 모르지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어느 정도 풀린다고 말한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것 또한 조용한 용기입니다. 잘하셨어요.”
가끔은 기계적으로, 가끔은 진심으로. 하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주 작기에, 고마워하지 말고 행복하셨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나와 함께 검은 실을 끊고, 그 순간을 응원했던 아이의 목소리를 나는 또 누군가에게 전하고 있다.
아이가 원하는 엄마의 삶은, 결국 나를 위한 것이었다. 《초강력 밤.마.실》은 그렇게 또 한 줄의 실로 이어지고 있다.
끊은 실 너머,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꿰매며
살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