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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연이 Mar 28. 2021

이립而立에 접어들며

잘 산다는 것, 홀로 서려고 하지 않는 것

*이립 而立 :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


서른이 되었다. 만으로는 스물여덟이나 서른이 더 멋있게 느껴지니까 서른이라고 하겠다. 진짜 어른의 분기점처럼 느껴지는 서른이란 숫자가 의식이 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서른이란 게 원래 이런 나이인 건지 계속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막막함이 아른거렸다.


지난 29년은 다 연습 같았다. 서른부터 남은 시간을 잘 살기 위한 연습. 인생을 잘 모른다는 핑계로, 젊은 날 다 해봐야 한다는 치기로 삶의 무게를 애써 덜 어내며 하고 싶은 걸 하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고, 만나고 싶으면 만났다. 그래서 즐거웠다. 울고 불고 가슴을 치던 시간도 분명히 있었지만 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살 수 있을 만큼 애틋한 시간이었다. 돌아보면 하고 싶지 않았던 걸 선택해야 하는 순간은 많지 않았다. 그때그때 당시의 내가 원했던 걸 선택했고, 모든 선택의 결과가 아름답지는 않았으나 나를 한 뼘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해 주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충동적인 선택의 결과마저 큰 해가 되지 않았음은. 그렇게 나의 29년은 유용한 것은 유용한 대로, 무용한 것은 무용한 대로 찬란했고 유익했다.


그런데 서른은 좀 더 성숙하고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앞뒤 오늘내일 가리지 않고 일단 하고 싶은 걸 했던 20대, 그래서 자주 흔들렸고 혼란스러웠고 불안정했던 그때의 나를 잘 보내주고 싶었다. 하루 앞만 봤던 그때보다 좀 더 멀리 보고, 나만 챙겼던 그때보다 내 주변을 더 돌보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꽤 의식했던 그때보다 내 안의 목소리에 더 집중하며 확고한 자리를 잡고 싶었다. 이립에 맞는 서른. 나는 그 나이를 사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라는 질문이 계속 맴돌았던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생을 바탕으로 조금 더 단단한 시간을 살고 싶다는 욕심이었다.


앞으로는 조금 다르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의 계기를 마련해준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지난 11월이었나. <관계를 읽는 시간>이라는 을 읽다가 발견한 7단계 질문법에 따라 내가 성공하고 싶은 이유에 대해 글을 써봤다.  번째 질문은 ‘나는  성공하고 싶은가였다.  질문에 나는 근심 걱정 없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웃으면서 재밌게 살고 싶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질문은 이어졌다. 1번에서 답한 것이  중요한가.  질문에는 ‘행복하려면 주변에 나와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나는 나와 대화가  통하고 자주 웃게 만들어주는 사람들과 있을  가장 편하고, 가장 나다워진다.’ 답했다. 다음 질문에서는  욕망을  깊게 파고든다. ‘2번에서 답한   중요한가?’


이 7단계 질문법에 답하면서 새로운 나를 발견했다. 내가 아는 나는 껍데기에 불과했다. 그 껍데기를 계속 벗겨내는 질문에 답을 하다 보니 알맹이 속 나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껍데기 속 나는 돈을 경계하는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돈 때문에 변하는 어른들을 많이 봤었다. 돈을 수단으로만 쓰지 않고 그 자체를 목적 삼아 소중한 걸 잃고 마는. 그게 트라우마처럼 자리 잡고 있었던 건지 나는 돈을 많이 가지면 사람은 나쁜 쪽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성공과 돈은 다른 문제라며 애써 외면해왔다. 행복하려면 통장이 두둑해야 한다는 엄마를 속물로만 생각했다. 억지로 돈을 밀어내고 있었던 거다.


그러다 이 질문법에 답하면서 깨달았다.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걱정 없이 놀려면 내가 스스로 ‘내 분수’라고 정해둔 이상으로 성공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걸. 그걸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개운했다. 더 열심히 잘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샘솟았다. 그래서 더 중요했다. 잘 산다는 게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이. 돈은 오로지 내가 정의한 잘 살기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해야 과한 욕심에 빠져 길을 잃지 않을 테니까.


주어진 질문에 끈질기게 고민해보니 나에게 잘 사는 건 불안하게 살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불안할 때 불행했고 불행하면 삶의 의미가 사라졌다. 불안하게 살지 않으려면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를 없애야 했다. 신기한 게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는 내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요소들이었다. 건강과 관계, 일. 이 3가지가 바로 나를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만들어줄 내 인생의 원자였다.


이 3가지에서 내가 느끼는 불안요소를 더 뜯어봤다. 건강의 불안요소는 신체적으로 아프거나, 체력이 달리거나, 건강하지 않게 살이 찌고 뻐근한 느낌, 심리적으로 우울하고 무기력하고 타인에게 시기나 질투를 느끼는 것이었다. 관계의 불안요소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나는,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한, 좋아하는 사람들이 점점 멀어지는 듯한 기분이었고 일의 불안요소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하는 상황,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고용의 불안정, 노후 대비였다. 이 불안요소 속에는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도 있고, 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컨트롤할 수 없는 것은 과감히 내려놓고,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은 지혜롭게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잘 사는 방법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잘 사는 것의 가장 기본은 건강이었다. 신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건강한 내가 있어야 다른 행복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야근을 줄이고, 운동을 과하지 않게 꾸준히 하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식단을 관리하기로 했다. 내 건강은 쾌적한 환경과도 연결되어 있으므로 나뿐 아니라 환경에도 무해하게 사는 방식을 꾸준히 고민하기로 했고. 이렇게 내 안을 건강하게 채워가면서 주변 관계도 튼튼하게 채우기 위해 느슨한 커뮤니티를 많이 만들어보기로 했다. 끈끈한 유대감이 이미 만들어진 친구들에게도 자주 마음을 터놓고, 비슷한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도 적극적으로 대화하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거다. 동시에 두 달에 한번 정도는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 나와 함께 하는 시간도 충분히 가지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일. 이게 가장 어려웠다. 내 의지로만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 가장 적은 요소이기도했다. 일단 이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여기에 너무 스트레스받지 않고, 내 능력을 계속 키워나가기로. 그래서 일과 관련된 인사이트를 꾸준히 흡수하고, 나만의 콘텐츠로 정리하며 내 능력으로 내재화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확립해나가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내가 무슨 일을 하든 든든한 기반이 되어줄 글쓰기 역시 지속해나가려고 한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라기엔 클리셰 같은 방법이라 정리하면서도 약간 머쓱했다. 그래도 어쩌겠나. 아직은 내공이 부족한 애송이인 나는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마음에 드는 답을 내리고 실행에 옮길 원동력을 얻는다. 그동안의 고민과 생각들의 점을 엮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20대의 나는 이것저것 원하는 걸 해보면서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캄캄한 밤하늘에 별을 띄웠고, 30대의 나는 그 별들을 이어 커다란 별자리를 만들 차례가 아닐까 하는 생각. 이 별자리들이 앞으로 계속될 내 삶의 길잡이가 되어줄 거고, 그렇게 우리의 우주가 채워지는 게 아닐까 하는 기대.


 글을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 할지 몰라서 방치해두고 있다가 며칠  엄마와 통화하면서 드디어 매듭을 지을  있게 됐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 라고 칭얼거리는 딸에게 엄마는 그런 생각하지 말고  흐르는 대로 살면 된다고 했다.   대로 사는  뭐냐고 했더니 역행하지 않는 거라고 답했다. 내가 흐르는 대로 가는 건지, 역행하고 있는 건지 어떻게 아냐고 물으니 ‘옆에 있는 사람들이랑 같이 두루두루 가고 있으면  가고 있는 거다.’ 엄마는 이렇게 답했다. 그러니까 혼자 자만하지 말고, 항상 겸손하고, 의리를 지키면서 살아야 한다고. 서른 먹은 딸이  개월 동안 끙끙거렸던 질문에 지천명을 넘긴 엄마는  5분도 되지 않아 명쾌하게 답을 내려줬다. 내가 내린 답도, 엄마가  답도 결국에는 ‘함께 가는 임을 잊지 않아야겠다. 혼자만 서있는 것은 의미가 없음을 깨달은 이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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