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연이 Mar 17. 2021

우리는 고독하기에 즐겁다.

미래의 나에게 : 내가 쓴 글 중 하나만 볼 수 있다면 꼭 이 글을 보길

오래 전 누군가 물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혼자일 때도 함께일 때도  지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무심결에 그것도 질문을 듣자마자 바로 답이 나왔다. 본능에 가까운 원초적 대답이었다.


외로움을 느끼다가도 그게 즐거울 때가 있었다. 외로움은 정확히 무한한 자유로움과 맞닿아 있었다. ‘외롭다’는 감정이 떠오르는 순간 ‘외롭지 않았던 순간’이 함께 끌려 나왔다.


그러니까, 사막 한가운데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 있어 마음이 허하던 찰나 이건 곧 다른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춤을 출 수 있다는 자유의 순간이자 내 곁에 있던 사람들이 언젠가 나를 찾으러 올 거라는 믿음의 증명임을 깨달은 거다.


이때 느꼈던 감정은 사실 외로움이 아니라 고독이었음을 며칠 전 깨달았다. 시시각각 변하는 디지털 세계로부터 도망치지 못하는 마케터의 숙명에 좌절하고 있던 때 내 시야를 사로잡은 하나의 카피. ‘디지털 기기와 연결에서 벗어난 비밀 공간’. 이건 초대장이나 다름없었다. 다른 브랜드 광고는 거의 클릭하지 않는 못된 반항심을 가진 나였는데 최면에 걸린듯 초대장에 회신을 보냈다. 분류조차 힘든 온갖 것들이 넘실대는 감각 과잉의 시대로부터 단절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렇게 찾아간 곳은 합정의 고독스테이. 2시간 동안 휴대폰을 입구에 걸려있는 새장에 가둬두고 안내자 없이 책상에 올려진 엽서를 펼쳐본다. 엽서 속에는 주어진 시간 동안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미션들이 적혀있다. 세상과의 연결을 차단한다는 기대와 두려움을 품고 문을 열면 의외의 공간이 드러난다. 그 공간 안에서 원하는 것만 듣고, 원하는 것만 보고, 원하는 것만 쓰면서 내 안의 에너지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다.


어느 때보다 밀도 높은 2시간이었다. 피톤치드 샤워를 하고 나온 것처럼 몸도 마음도 개운했다. 고독을 이렇게 제대로 즐겨본 적이 언제였더라. 그때 알게 된 거였다. 고독과 외로움의 다름을. 보통 우리는 외로움에 ‘사무친다’고 표현한다. 외로움이라는 거대하고 손쓰기 힘든 감정 앞에서 우리는 그저 수동적 이어질 뿐이다. 벗어나려고 애를 쓸수록 벗어나기 힘든 상태가 되어버리는. 애를 쓰다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마는. 반대로 고독은 ‘씹는다’고 한다. 나의 의지로 감정을 씹고 맛보고 음미하는 것이다. 무언가를 씹고 나면 끝 맛이 진하게 남기 마련이다. 고독은 그런 것이다. 나의 의지대로 누리다가 남은 끝 맛까지 즐겁게 감상하는 것.


<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는 제목의 책이 있다. 혼자를 두려워하고, 혼자의 즐거움을 만끽하지 못하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허할 때가 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언제나 외로울 수밖에 없다. 언제든 떠날 수 있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모두가 나를 알아봐 주지 않더라도 나만은 곁에 남아 고독을 마주하고 그 안에 있는 나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답은 거기에 있다. 답은 나에게 있다.


요즘 쓰고 있는 대부분의 글들은 미래의 나를 위한 글이다. 언젠가 마음이 요즘같이 않을 때, 불어오는 바람에 다시 나풀거리기 시작할 때 지금같이 단단해지려고 하는 나를 기억하기 위해서. 그중에 단 하나의 글만 읽을 수 있게 된다면 망설임 없이 오늘의 글을 내어놓겠다. 다 잊어도 좋다. 다 변해도 좋다. 이 글 속에 남겨둔 생각만 잊지 않는다면 언제든 웃을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트라베시아모, 함께 건너가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