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정리를 마치고 엄마랑 옥상에 올라가 화분을 정리했다. 우리 집 옥상에는 밤이 되어 나팔처럼 꽃을 활짝 피운 하얀 꽃도 있고, 입을 앙다문 고집스러운 아이처럼 봉우리를 한껏 오므린 자주색 꽃도 있다. 내일부터 시작된다는 장마가 반가운 큰 식물들도 있고, 비를 피해 숨어야 하는 꼬마 선인장들도 있다. 색도,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인 화분들이 옥상 도처에 즐비하다. 엄마는 아침, 점심, 저녁 중 한 번은 꼭 옥상에 오라와 이 화분들을 제 자식처럼 돌본다. ‘엄마 얘는 이름이 뭐야?’ 하고 물었더니 ‘모린다. 이름을 꼭 알아야 되나. 이쁘게 키우면 되지.’하고 답했다. 엄마는 이 아이들의 출신, 종 같은 건 몰라도 언제 꽃을 피우고 지는지, 비를 맞게 해야 할지 숨겨야 할지는 그간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정보보단 마음이 중요한 거였다.
우리 할머니도 꽃을 참 좋아했다. 부산에 살던 초등학생 때 여름방학, 겨울방학이 되면 우리 남매는 맞벌이로 바쁜 엄마 아빠 대신 할머니랑 자연이랑 시간을 보냈다. 바닷가 바로 앞에 있었던, 이제는 사라진 할머니의 옛날 집 마당에도 초록빛이 한가득이었다. 굽은 등을 하고서도 물 주기를 잊지 않던 할머니의 모습이 선연하다. 어릴 적 그 마당에서 할머니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닌 것처럼 물도 주고 화분도 치우느라 옥상을 순회하는 엄마 뒤를 쫓다가 구석에 시들어버린 식물 하나를 발견했다. ‘엄마 얘는 죽었나?’ 생기라곤 하나도 없이 영양소가 다 빠져버린 머리카락처럼 축 늘어진 풀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이다. 뿌리는 살아 있어서 비 맞으면 또 자란다. 뿌리만 있으면 된다.’
뿌리만 있으면 된다. 그 말에 가슴이 찡했던 이유는 뭘까. 죽은 듯 엎어져있는 풀에서 3주간 힘없이 늘어져있던 내 모습이 보여서였을까. 나는 회사에서 3년 동안 근속하면 주어지는 리프레시 휴가로 고향에 와있었다. 원래는 작년에 베를린과 파리로 여행을 갈 계획이었다. 해외여행은 예고 없이 찾아온 팬데믹에 물거품이 되었고, 작년 한 해는 직장인이 된 후 가장 바빴던 시기였으므로 한 달의 휴가는 불가능이었다. 자연스레 휴가는 미뤄졌고 언제 쓸까 타이밍을 엿보던 차에 6월에 떠나기로 5월에 결정을 내렸다. 상반기 동안 이룬 것이 별로 없다는 공허감이 컸다. 시간은 계속 가는데 나는 멈춰 있었다. 수압이 엄청나게 강한 깊은 바닷속에서 별 소득 없는 발버둥을 치는 것 같았다. 아무리 몸에 힘을 줘도 나아갈 수 없는. 물살에 이리저리 흔들리기만 하는.
터닝포인트가 필요했다. 힘을 줄수록 더 깊은 심해로 빨려가는 것이라면 힘을 빼야 했다. 그래야 수면 위로 올라와 제대로 수영을 하던 숨을 쉬던 할 수 있으니까. 다른 선택지를 고민할 필요도 없이 집으로 들어왔다. 힘 빼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였다.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있었다. 아침엔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고 다시 누워 TV를 보다가 낮잠을 잤다. 점심 때는 엄마 가게에 내려가 밥을 먹고 날이 좋으면 동네 한 바퀴를 걷거나 드라이브를 하며 커피를 마셨다. 다시 집에 와서 간식을 먹거나 옥상에 매트를 펴놓고 노래를 들으며 책을 읽다가 잤다. 저녁엔 가게 일을 돕기도 하고 가족, 친구들과 놀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와선 옥상에서 엄마랑 빨래를 널고, 화분을 돌보며 수다를 떨었다. 간혹 와인이나 맥주도 마셨다. 생산적인 일은 거의 하지 않고 한량처럼 놀고먹고 잤다. 한량이 체질이었다. 평생 이렇게 살 수 있을 것처럼.
문제는 몸의 안락함과 따로 노는 마음이었다. 여름날 아스팔트 바닥에 퍼져 녹아내리는 젤리 같은 몸과 달리 이성은 평생 이렇게 놀고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도 냉철하게 알고 있었고,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올수록 초조함의 경보를 울렸다. 마음에 이빨이 있다면 너무 떨어서 딱딱딱 아랫니 윗니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그렇게 늘어짐과 초조함 사이에서 아무도 모르게 말라가고 있던 나에게 ‘뿌리만 있으면 된다’는 말은 사막 한가운데 내리는 폭우 같았다. 평생 놀고먹을 것처럼 늘어져 있어도, 신경쇠약으로 온몸의 생기가 빠져나갈 것 같아 보여도 그럴 수도 있는 거라고. 그럴 때도 있는 거라고. 뿌리만 있으면, 비도 맞고 햇빛도 쬐다보면 다시 살아날 수 있으니까.
내 뿌리는 바로 이 섬에 있다.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을 끌어안고 찾아와도 언제든 회복시켜줄 존재들이 있는 나의 섬. 굳이 발자국을 찍지 않아도, 그저 떠올리는 것만으로 메마른 마음에 단비를 내려주는 내 사람들, 내 추억들. 그러니 내가 해야 하는 건 준비되지 않은 몸을 애써 일으키거나 쉽게 가라 앉히기 힘든 초조함을 억지로 누르기보다 엄마가 했던 말을 되뇌이는 것.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들이 가득한 이 섬 아래 단단히 자리 잡고 있는 뿌리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
2021.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