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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연이 May 07. 2021

내 브랜드를 만든다면 어떻게 브랜딩 할까?

브랜딩에 필요한 기본 재료 3가지

언젠가 내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도 사이드 프로젝트로 앱 서비스를 만들어보고 있는데 너무 즐겁다.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 주목받지 못했던 가치를 빛나게 하는 건 상상만으로 신나는 일이다. 그래서 고민해보았다. 내가 창업을 한다면 내 브랜드를 어떻게 브랜딩 할까? 누군가 브랜딩을 하고 싶다고 내게 조언했을 때 나는 무엇을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나는 줄곧 브랜드를 신념, 취향,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고, 브랜딩은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일이라고 말해왔다. (내가 정의한 브랜드, 브랜딩, 브랜드 마케팅이 궁금하다면 여기로!) 그렇다면 브랜딩은 이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나는 나를 무엇으로 표현할까?'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의 어떤 요소를 보고 '저 사람 나랑 잘 맞을 것 같아! 친해지고 싶다!'라고 생각할까?


내 경우에는 크게 3가지였다. 내면에 깃든 생각, 겉으로 보이는 스타일, 대화 나눌 때의 느낌. 먼저 내면에 깃든 가치관이나 신념.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 세계관, 가치관을 글로 표현하는 걸 즐기기도 하고 누군가가 그런 내용을 담아 쓴 글이나 표현들이 나의 것과 비슷할 때 친해지고 싶다는 매력을 느낀다. 겉으로 보이는 외모와 스타일도 비슷하다. 한번 봐도 호감 가는 사람들이 있고 자주 봐도 썩 정감이 느껴지지 않거나 반사적으로 거리를 두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나를 꾸미거나 또 굳이 꾸미지 않는다.


실제 대화를 나눴을 때의 느낌도 중요하다. 글과 외모만 봤을 때 친해지고 싶다고 느꼈다가 막상 대화를 나누면 곁에 두고 싶어 지지 않아 질 때가 있다. 이 역시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친한 친구와 어색한 친구 앞에서의 말투가, 엄마와 다른 어른들 앞에서의 말투가 달라지는 거겠지. 나는 이러한 요소들이 브랜딩에도 고스란히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브랜드는 사람, 브랜딩은 자기표현이니까!






브랜드의 코어, 철학


앞서 이야기한 3가지 중 가장 핵심은 바로 내면에 깃든 생각이다. 이 생각, 가치관, 신념에서 나만의 스타일이 탄생하고 나만의 말투가 만들어질 수 있다. 계란찜의 메인 재료가 계란이듯, 브랜딩의 메인 재료는 내면 속 철학인 것이다.


브랜드 철학은 브랜드의 탄생 이유일 수도, 브랜드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일 수도, 브랜드가 이루고자 하는 미션일 수도 있다. 브랜드 초기 철학을 고스란히 실천하고 있는 대표 사례로는 역시 파타고니아다. 파타고니아의 창업가 이본 쉬나드의 이야기는 이미 유명하다. 그는 등산과 서핑을 사랑하는 자연 러버답게 군대 제대 후 등산 장비 회사를 만들었다. (그는 1960년대 주한미군으로 한국에서 군 시절을 보냈다! 그때도 등산을 좋아해서 북한산을 자주 등반했는데, 그때 그가 개척한 길이 그의 이름을 따 쉬나드 길로 불린다고 한다 와우)

 

당시 회사 주력 제품은 피톤이라는 암벽등반용 쇠못이었는데 쉬나드는 등반을 하던 중 이 피톤의 치명적인 단점을 발견했다. 강철로 만든 피톤 때문에 암벽에 균열이 생기고 파괴되는 모습을 본 것이다. 쉬나드는 피톤 생산을 중단했다. 대신 바위에 박을 필요 없이 암벽에 이미 나있는 홈 사이에 끼울 수 있는 알루미늄 초크를 만들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피톤 대신 만든 암벽 사이에 끼우는 알루미늄 초크


초크는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친환경 제품으로 비즈니스의 성공을 맛본 쉬나드는 본격적으로 친환경 아웃도어 브랜드인 파타고니아를 만들었다. 매출의 1%를 환경을 위해 기부하고, 오직 유기농/친환경 원단으로만 옷을 만든다. 새 옷을 사 입지 말고 입던 옷을 수선해서 입으라고 바느질 세트를 만들고, Don't Buy This Jacket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우리 옷 사 입지 말라고 광고한다.


이들의 뚜렷한 브랜드 철학이 소비자들을 매료시키고, 이들이 내보내는 메시지에 만들어내는 제품에 열광하게 만든 것이다. 주변에서 이렇게 신념이나 가치관이 뚜렷한 사람들을 본 적이 있나?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이 국회를 바라보면 이해할 수 있다. 옳고 그름을 떠나 하나의 메시지를 뚜렷하게 전달하는 사람들 곁에는 늘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다. 그들은 항상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존재가 된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철학을 아무도 모르게 간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일관성을 잃어버려선 안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면 알아줄 사람이 없고,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사람 역시 신뢰를 잃기 십상이다. 하나의 브랜드 철학을 진득하게 퍼뜨리다 보면 조금 늦을지라도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줄 청중이 생긴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디자인


즉 이미지란 감각 기관을 통해서 외부로부터 들어온 자극과 그에 의해서 재생되는 과거의 기억이 두뇌 속에서 복합, 연계된 것이다. 디자인이라는 행위는 이와 같은 복합적인 이미지의 생성을 전제로 하여 적극적으로 그 과정에 참여한다.

- 하라 켄야, <디자인의 디자인>


며칠 전,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데 길가에 보라색 의자가 놓여 있었다. 불현듯 마켓 컬리가 떠올랐다. 그건 CU 편의점의 의자였다. 또 다른 날은 길을 가다가 갖고 싶은 옷을 입은 분을 봤다.  그가 들고 있던 쇼핑백의 로고로 눈이 향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광고에서 그 로고를 만났다. 괜히 반가워서 바로 클릭해봤다.


이렇게 시각적으로 받아들여진 이미지는 머릿속에서 정보화된다. 이후 하나의 디자인으로 각인되어 브랜드와의 연결고리가 된다. 보라색을 보면 컬리가 떠오르고, 캐릭터를 보면 카카오가 생각나는 이유. 디자인만 봐도 브라운 거구나! 폰트만 봐도 배민에서 만들었나? 느끼게 하는 힘. 이게 디자인의 힘이다. 잘 디자인된 시각물이 구구절절한 백 마디보다 훨씬 큰 임팩트를 줄 수 있다.


나는 디자이너가 아니라서 무엇이 좋은 브랜드 디자인인지 말하긴 어렵지만 디자인으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공고히 만든 브랜드들을 좋아한다. 애플, 나이키, 이솝 등 많지만 그중 가장 정감 가는 건 단연 프릳츠. 커피 맛도 맛이지만 고유한 디자인으로도 정평이 난 이 브랜드는 여러 가지 면모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할 만한 브랜드의 자격을 갖췄다고 생각한다. 한옥의 아늑함이 물씬 풍기는 공간과 잘 어울리는 레트로 한 디자인에 귀여운 물개 마스코트, 옛 한글의 느낌을 담은 프릳츠라는 브랜드명까지. 여기만 가면 커피에, 가방에, 모자에, 티셔츠에 사고 싶은 게 한둘이 아니라서 드릉드릉 시동 거는 카드를 재우기 바쁘다.



뒷구르기 하면서 봐도 프릳츠 (출처 : 프릳츠 인스타그램)


이 브랜드의 디자인 아이덴티티에 놀랐던 것은 파리바게뜨를 지나가던 어느 날에 생긴 일 때문이었다. 골목 앞을 지나다가 파리바게뜨를 봤는데 창문에 <합격 기원 선물> 포스터가 붙어 있던 거다. 근데 보자마자 '응? 이거 프릳츠 껀데?'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대기업이 이렇게 당당하게 표절하나 싶어 찾아봤더니 프릳츠 디자인 디렉터의 작품이었다. 오해할 뻔. 어찌 되었든 감탄했다. 다른 브랜드의 디자인에서 내 브랜드를 떠올리게 하다니. 실로 대단한 아이덴티티라고 할 수 있다. 이게 바로 일관성 있는 브랜드 디자인의 힘이구나. 여실히 느낀 순간이었다.


최근에 본 디자인 중에서는 더현대 서울의 웹 디자인이 인상적이었다. 기존의 백화점 웹사이트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꾸었다. 얼핏 갤러리 같기도 한 페이지 내부는 계층이 확실하게 분리되어 있어 살펴보기 편했다. 마냥 트렌디해 보이게 구성한 게 아니라 정보 전달과 브랜드 경험,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깊이 고려한 티가 역력히 드러나는 디자인이었다. 이처럼 디자인은 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곳에 적용된다. 컬러, 로고, 캐릭터, 폰트, 웹/앱, 제품, 광고, 콘텐츠까지.




디자인은 지능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을 찾아내는 감성과 통찰력이다.
따라서 디자이너의 의식은 사회에 대해서
항상 민감하게 각성하고 있어야 한다.

하라 켄야, <디자인의 디자인>




브랜드 디자인에서는 앞서 말한 브랜드의 철학에서 이 브랜드를 정확하고 매력적으로 알릴 수 있는 정수를 제대로 뽑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디자인을 갖춘 브랜드에는 하나의 요소만으로도 우리 브랜드를 떠올리게 하는 힘, 브랜드를 사용하고 싶게 하는 힘, 브랜드로 나를 표현하고 싶게 하는 힘이 깃든다.





브랜드의 인상을 좌우하는 커뮤니케이션 톤 앤 매너


한때 우리 팀의 핫이슈는 피식대학 비대면 데이트였다. 연기자들이 직업군마다 포인트를 잡아서 살벌하게 표현하는데 올라오는 콘텐츠마다 조회수가 폭발한다. 구독자들은 '진짜 싫은데 계속 보게 된다'라고 말한다. 이들이 말하는 '진짜 싫음'과 그럼에도 '계속 보게 하는' 포인트는 무엇일까. 계속 보게 하는 포인트는 그간 보지 못했던 색다른 아이디어의 콘텐츠, 여기에 달리는 댓글의 재미, 경이로운 연기자들의 표현력인 것 같고, 진짜 싫게 만드는 포인트는 봐도 봐도 닭살 돋는 말투가 아닐까 생각했다.



연기천재들 (출처 : 유튜브 피식대학)


죽을 때까지 한 번이라도 들어볼 일이 있을까 싶은 '어? 예쁘다'를 비롯해 차마 귀 열고 듣기 힘든 느끼한 말을 껌먹듯 하는 최준과 소음 공해 수준으로 비속어를 남발하는 임플란트 키드, 저 사람 회사 다니다가 개그맨 한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현실 본부장 느낌인 이호창까지. 이들은 말만 안 하면 정말 카페 사장, 래퍼, 본부장처럼 보이는데 입을 열자마자 캐릭터별로 뚜렷하게 나타나는 고유한 말투가 웃음 포인트이자 소름 포인트였다.


그만큼 대화할 때 드러나는 말투, 즉 커뮤니케이션 톤 앤 매너가 상대방의 인상을 결정하는데 아주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계속 대화를 이어가고 싶은 사람인지 감각적으로 판단하게 하는 요소. 커뮤니케이션 톤 앤 매너도 디자인만큼이나 다양한 영역에서 실감할 수 있다. 광고 카피, 앱 서비스 영역이나 오프라인 안내문, 종업원 또는 CS 직원의 응대가 대표적이다.  



나는 당근마켓이 이 커뮤니케이션 톤 앤 매너의 힘을 잘 알고 있는 브랜드라는 생각이 든다. 당근마켓 서비스를 둘러보면 어려운 단어가 거의 없다. 유치원생부터 나이 많은 노인까지 이해하기 쉽게 마냥 어려운 단어나 특정 세대만 사용하는 유행어를 찾기 힘들다. 편안하고 친근한 말투로 쉽게 설명해주니 '이게 무슨 뜻이지? 어떻게 쓰는 거지?' 혼란스럽지 않다. 전반적으로 친절하고 따뜻한 이웃 같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당근마켓 커뮤니케이션


최근 <놀면 뭐하니?>에서 다룬 당근마켓 역시 앱에서 느낀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다. <놀면 뭐하니?>는 MBC 제작진 측에서 당근마켓에 먼저 제안해서 만들어진 콘텐츠인데, 그간 당근마켓이 그들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이러한 요소들로 잘 잡아두었기에 외부 제작자들이 만들었어도 비슷한 결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소유욕을 자극하는 카피 (출처 : 애플 홈페이지)


이 분야 갑이라고 할 수 있는 애플을 빼놓을 수 없다. 나는 이제 애플의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이번에는 무슨 카피를 썼을까가 더 궁금해진다. 과하게 창의적이지도, 티 안 나게 무난하지도 않다. 공급자 입장에서 새로 추가한 기능을 자랑하기보다 명확하게 소비자향의 말투를 구사하여 매력을 끌어올린다.'속도가 빨라졌습니다.' 대신 '스피드 그 이상의 스피드'로, '혈중 산소 포화도와 심전도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를 '건강의 미래, 이미 손목 위에'로 표현하는 이 혁신적인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따라잡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 커뮤니케이션 톤 앤 매너는 오프라인 공간에도 적용할 수 있다. 무인양품, 디앤디파트먼트처럼 훌륭한 공간이 많은데 개인적으로 문우당서림을 예시로 꼽고 싶다. 문우당서림은 '책과 사람의 공간을 지향한다'는 철학으로 1984년, 속초에 둥지를 튼 서점이다. 아버지 어머니 자녀가 함께 운영하는 서점인데 공간 곳곳에 사람의 이야기가 묻어나 있다. 평대에 놓인 책에는 서림인이 직접 읽고 남긴 감상 메모가 붙어있고, 도서 카테고리를 구분하는 표식에도 서림인의 글귀를 담았다.



곳곳에 사람에 대한 친절과 사랑이 넘치는 문우당서림


덕분에 관심 없는 분야의 책에도 절로 눈길이 가게 된다. 덕분에 중간중간 다양한 주제로 큐레이션 된 책 코너도 그냥 지나치기가 힘들다. 덕분에 중간중간 다양한 주제로 큐레이션 된 책 코너도 그냥 지나치기가 힘들다. 책을 계산할 때 마음에 드는 책 속 글귀를 고르면 쇼핑백에 태그를 붙여주시고 스티커도 챙겨주신다.


서점을 둘러보다 어떤 고객이 무심코 던진 말이 귀에 꽂혔다. "여기 오면 책을 안 살 수가 없겠다." 문우당서림의 커뮤니케이션 톤 앤 매너가 고객에게 가닿은 순간이었다. 아무리 상대방이 마음에 들어도 나와 대화하려는 노력과 성의가 보이지 않는다면, 대화 방식이 맞지 않는다면 결코 마음을 열 수 없다. 나의 생각을 전하고 관계를 탄탄히 쌓을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톤 앤 매너에 마음을 다해야 하는 단 하나의 이유다.







브랜드 철학,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톤 앤 매너. 이렇게 3가지 요소를 브랜딩의 기본 재료라고 소개했다. 물론 재료가 될 수 있는 것들은 이것보다 훨씬 다양하다. 세상엔 정말이지 다양한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소비자가 있지 않나! 당연히 복잡한 배경에 의해 만들어진 하나의 브랜드를 제대로 정의하고 소비자에게 매력적으로 표현하는 일은 절대 만만하지 않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랬고, 모든 일에는 기초를 다져야 하는 작업이 필수다. 이 3가지 요소를 탄탄하게 다지는 것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나아가 보자! 깊이 고민하며 한 발자국씩 나아가다보면 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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