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순조로운 나날이었다. 작년만큼 업무가 과하지도 않았고 요즘따라 브랜드로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람들과의 만남도 잦아서 외로울 틈이 없었다. 손 닿는 곳, 발 딛는 곳마다 인사이트 투성이어서 이삭 줍는 아낙네처럼 도처에 깔린 배움들을 주워 담기 바빴다. 그런데 묘한 갈증이 가시질 않았다. 수상했다. 날씨 좋은 사막을 걷는 사람처럼 별탈없이 답답했다. 그래도 멈춰 서서 고민하기보단 계속 움직였다. 잡스가 말한 Connecting the dots를 떠올리며 뭐라도 하다 보면 길이 나겠지 하는 심정으로.
계속 질문했다. 뭐가 고민이야. 뭐가 답답해. 뭐가 잘 안 풀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와 인터뷰했다. 저녁엔 집 근처를, 아침엔 판교역에서 회사까지 버스를 타고 오던 길을 걸었다. 이렇게 복잡한 현대 문명을 이룩하고도 인간은 여전히 단순한 동물인 건지 걸으면 걸을수록 생각에도 길이 났다. 질문의 종착지는 내 일이었다. 5년 간의 업무를 정리한 포트폴리오를 쓰고 난 뒤에 시작된 갈증이었다. 그때 내가 일을 하는 이유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고 생각했는데 부족했던 거다. 본질을 꿰뚫지 못했다. 그건 일하는 이유기보다 이 회사에, 스타트업에 다니는 이유에 가까웠다. 그래서 다시 질문했다.
계속 걸었다. 내가 마케팅을 하는 이유를 고민하고, 이 일을 좋아하고 즐기는지를 물으면서. 지난날을 반추하고 앞으로의 시간들을 상상해봤을 때 그래 이건 명백히 사랑이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리니까. 잘해주고 싶고, 잘 보이고 싶으니까. 더 잘할 방법을 고민하는 시간이 즐거우니까. 같이 있을 땐 밤을 새도, 주말을 바쳐도 밉지 않으니까. 평생 함께 할 수 있을까 고민할 때 짜릿하니까. 사랑이 아닐 리가.
이 사랑은 어떻게 시작된 걸까. 어린 시절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당찬 소녀였다. 내가 자란 섬에서 매일 보던 파도처럼 부조리와 불평등이 넘실거리는 현실에 눈을 뜬 건 17살 무렵이었다. 도서관에서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 게 선하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이면서 타인에서 피해를 끼치는 사람들이 끔찍하게 싫었다. 그들에게선 어떤 신념도, 양심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긍정적이고 올바른 생각과 뚜렷한 목적을 갖고 다른 사람들과 연대하기 위해 공감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좋았다. 함께 하고 싶었고, 힘과 목소리를 보태고 싶었고, 내 주변에 이들의 멋짐을 더 널리 알리고 싶었다.
내 인생의 첫 브랜드라고 꼽을 수 있는 리버풀을 이렇게 오래 좋아할 수 있었던 것도 유스부터 캡틴까지 원클럽맨으로 필드를 지킨 스티브 제라드 그리고 You'll Never Walk Alone이라는 메시지 때문이었다. 펭귄북스에 관심을 가진 것도 '지식의 대중화'를 위해 처음으로 문고판을 만들었다는 창업가의 이야기 때문이었고, 지금 밑미라는 서비스를 계속 이용하고 있는 이유도 서비스를 만든 이들과 그 안에서 노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와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브랜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글을 쓸 때마다 브랜드는 메이커, 만드는 사람과 같다고 한다. (내가 생각한 브랜드, 브랜딩, 브랜드 마케팅의 정의가 궁금하다면 여기로) 한 사람의 생각, 신념, 가치관이 담긴 산물. 그러니까 내가 브랜드를 좋아하게 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브랜드는, 그리고 브랜드를 만들어나가는 사람은 그들의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주변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친다. 비슷한 공감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확신과 희망을 줄 수도 있고,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불쾌감과 불편함을 줄 수도 있다. 이 양날의 검을 늘 명심하며 더 긍정적인 방향, 더 확실한 방향으로 나아가면 이 세상 전체는 아니지만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우리 주변의 세상만큼은 좀 더 아름답게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일인가.
지금의 나에게는 직업인으로서의 나와 자연인으로서의 나, 2개의 자아가 있다. 직업인으로서의 나는 훌륭한 코어, 본질을 갖고 있는 브랜드를 알리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what이나 why를 고민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why에서 how로, how에서 what으로 탄탄히 나아가며 지속 가능한 발전을 꿈꾸는 브랜드를 참신한 방법으로 진정성 있게 알려 공감하는 팬을 모으는 사람.
며칠 전에 회사에서 태니지먼트 진단을 받았다. 내 강점과 욕구를 찾아주는 검사였는데 나는 '창조형 설계자' 유형이었다. 이 유형은 상상력을 발휘해 새로운 것을 제안하여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고정관념을 깨고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을 즐기는 창조와 많은 사람을 연결하여 어려운 문제를 쉽게 풀어가는 외교가 주요 강점으로 나온 거다. 하고 싶은 일과 강점에 연결고리가 있다는 건 생각보다 더 신비했다. 일이 생계유지를 위한 밥줄이나 적성과 능력 개발의 수단이 아닌 소명으로 느껴진 순간이었다.
최근에 브랜딩과 브랜드 마케팅을 주제로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주어진 시간이 바투 했고, 내가 이런 말을 할 만한 깜냥이 될까 싶어 고사할까 했는데 지금껏 내가 배운 것들을 정리하고 나와 이 일의 궁합을 알아볼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도전했다. 주말 내내 그동안 짧게 짧게 써뒀던 내용들을 정리하고 책과 아티클, 영상들을 찾았다. 그런데 할수록 개운했다. 대청소를 한 기분이랄까. 시간이 부족해서 미처 말하지 못한 것들이 많아 아쉬울 따름이었다. 이야기를 끝내고 시원함 반, 아쉬움 반을 품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내 이야기를 들어주신 분께 이런 문자가 와있었다.
오늘 연이님께서 강의하시는 거 보고 뭔가 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느껴졌어요. 사실 요즘 제가 하는 일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진짜 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고맙습니다.
이때 다시 알았다. 내가 일을 사랑하면, 일도 나를 사랑한다는 걸. 그리고 그 에너지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진다는 걸. 사랑하는 마음에 비해 실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그래서 지치지 않고 부단히 경험을 쌓고, 좋은 결과물을 위한 고민을 게을리하지 않고, 훌륭한 브랜드와 마케터들의 레퍼런스를 흡수해야 한다. 가는 길이 멀고도 험할 게 분명한데 눈밭을 만난 강아지처럼 달려가고 싶다. 무모한 건 내 단점이기도 하지만 이럴 땐 참 근사한 장점이 되기도 한다. 너무 열심히 뛰다 보면 여기저기 치이다 사랑이 식을 때도 올 거다. 바로 그때 이 글을 들춰보아야겠다. 이런 마음으로 일을 사랑했다. 다시 봤을 때 질색하기보다 애틋함이 더 크다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출발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