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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연이 Aug 18. 2017

행복하기 위해 버려할 것.

나에게 인생은 욕심과 함께 달리는 레이스

2017.8.14


집을 나서면서부터 달려 지하철 문이 닫히기 직전에야 겨우 뛰어내려온 계단 바로 앞의 칸에 타 다행이다 하며 가슴을 쓸어내려놓곤, 환승할 땐 아 이왕 타는거 환승 통로 칸 앞에서 타면 좋았을걸 하고 후회하는 것이 사람이다. 이 1분도 채 가지 않는 얻은 것으로부터의 행복은 늘 더 큰 욕심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나는 욕심이 많다. 더 많이 가지고 싶어서 발버둥치며 살아간다. 한 번 사는 삶, 이왕 사는 것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며 살아야 후회 없지 않겠나 생각하며 정작 뒤돌아보면 너무 조바심 내며 살았구나 후회할 짓을 하며 살아간다. 시간을 한정적인데 욕심은 무한하기에 빚어지는 비극 같은 것이다. 욕심으로 점철된 삶의 부작용에는 조바심 가득한 마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에는 이 급급함이 빚어낸 스트레스가 몸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늘 무엇에 좇기는 느낌이라 심장 박동은 본래의 페이스를 되찾을 틈이 없이 빠르고, 시도 때도 없이 열이 올라 이마와 손에는 식은 땀이 맺힌다. 늘 긴장하듯 살다보니 목 뒤 근육이 빳빳해져 어깨부터 머리까지 통증이 에스컬레이터처럼 오르락내리락거린다. 


최근엔 두통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6살 때보다 약먹기를 더 싫어하는 스물 여섯이라 약 대신 먕상을 시도하고 있다. 물론 그 정적에 익숙해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명상이라 함은 자고로 머리와 마음 속 번뇌를 비우는 것에서 시작하는 일이건만 명상을 시작한 지 1분도 되지 않아 교장선생님 훈화 시간으로 돌아간 초등학생처럼 몸을 이리저리 흔들고 머릿 속은 금세 잡생각으로 가득 채운다. 늘 '해야 할 것'에 좇기는 내게 생각을 지우는 일이란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10분 정도, 명상이 성공적으로 끝난다 해도 오래가지 않았다. 결국 욕심이란 열매의 뿌리를 뽑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소용이었다.





보다 근본적으로 욕심을 버리기 위해 마음을 고쳐먹어보기로 했다. 방법은 명상보다 간단했다. 그저 몇 가지 문장을 되뇌이며 세뇌시키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내 한계를 긍정적으로 인정하자.
타인과 비교하지 말자.
나는 아직 젊고 가능성은 무한하며 열정이 있다.
그러니 조바심 내지 말고, 주변 사람들을 믿고, 나의 길을 가자.





이 뻔하디 뻔한 주문은 진부하기 짝이 없어 이미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보면 비웃을 지도 모르는 말이지만 가끔 내 스스로에게 실망스럽고 타인과 비교하여 한없이 부족한 모습에 다시 욕심을 부리고 싶을 떄, 불끈 튀어오르는 조바심에 빨간 불을 번쩍거린다. 괜찮다고, 어차피 내가 원하는 걸 다 가질 수는 없다고. 한계를 긍정적으로 인정하고, 비교하려 들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하고 있는 것에 충실하면 된다고. 그럼 몸이 근질거리는 명상 없이도 폭풍우 치는 마음에 잔잔한 빛이 들어온다. 조바심과 함께 올라오던 구역질이 멈추고, 자신감으로 충만하여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물론 아직은 연습이 더 필요하다. 순간순간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능력 밖의 일을 벌이거나, 나의 죄책감 나의 부족함을 타인에게 풀어버린다. 하지만 완벽한 삶이 어디 있겠나. 이마저도 내가 인정해야 할 한계일 것이다. 욕심은 촛불과 달라 그 뜨겁게 피어올랐던 것이 한 번 휘 하고 불어버린다고 꺼질리 만무하다. 매일매일을 생일처럼, 매 순간 피어오르는 욕심을 나만의 주문으로 꺼버리곤 새로 태어난 듯한 기분을 느껴야 한다. 자기 혐오가 극한의 상황에 치달을 땐 주문을 외는 것조차 쉽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욕심에 져버리는 삶보다 이겨내보려는 삶을 선택하련다. 1년 후, 이 글을 보고 있는 나는 잠자는 순간까지 나를 옥죄어 온 조바심과 얼마나 멀어져있을까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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