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이 곧 나의 방패인 모든 이들에게.
완벽이 곧 나의 방패인 모든 이들에게.
한국 나이로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는 연도가 되니 내가 살아왔던 시간을 곱씹어 보는 일이 잦아졌다.
'후회 없이 잘 살아왔는가'라는 기준 없는 기준으로 시작해서, '나는 왜 치열하게 살지 못한 것 같지?'라는 생각까지.
중학생 때 나의 꿈은 작가로 3년간 꿈에 대한 확신을 가졌었다. 공부할 시간에 인터넷 소설을 짬짬이 읽어 내려가던 일탈로 국내에서 출판된 소설들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고, 혼자 틈틈이 써 내려간 나만의 소설은 친했던 친구들에게 인기도 얻을 수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에는 담임선생님께서 감사하게도 내가 제출했던 보고서나 감상문을 보시고서 나의 글이 좋다며 꿈을 지지해 주셨다. 그러다 열여섯 살이 되던 해에 제일 친했던 친구가 미술을 시작하게 되었고 친구의 꼬임과 나의 호기심,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부모님께 말씀드려 자연스레 그길로 미대 입시까지 치르게 된다.
3년을 꽉 채운 나의 입시 생활은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짧은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뼈를 깎는 노력'을 했었던 시간이었다. 수백 장의 그림을 완성하고 버리길 반복하며 매일같이 평가와 비교가 난무하는 시간들 속에서 많이도 웃고 울며 '내가 얘보단 잘해야지, 적어도 쟤는 이겨야지'했던 승부욕이 나를 성장시키기도 했다. 비록 병행해왔던 성적이 이도 저도 아니어서 남들이 말하는 소위 좋은 대학교에 진학은 못했지만 사실 그때에도 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아쉬움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 이후로 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서 그런지 실패가 너무 두렵다는 이유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만 골라 하기 시작했다. 대학생 때도 좋아하고 잘하는 과목이 A+ 이면 싫어하는 과목은 C-를 받아도 그냥 합리화했다. 잘 하는 것만 잘해도 된다고. 내가 낸 성과에 칭찬을 받지 못하거나 순위에서 밀려나게 되면 나는 스스로 쓸모 없어졌다고 느낌과 동시에 무기력감 또한 쉽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보다 낫다고 생각되는 타인에 대한 비난도 마음속에선 훨씬 쉬웠다.
실패가 두려워서라고 말을 시작했지만 사실 그 실패를 겪었을 때 타인에게 받는 시선과 대우로 인해 내가 무조건 상처를 받는다고 생각한 것 같다.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는 타인이 나를 바라볼 때 허점이 없고 완벽에 가까우며, 그들이 부러워하는 대상이 되어야 했지만 반대로 나의 허점과 부족함이 보이게 된다면 나는 그들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평가했기 때문에 그것을 곧바로 나 자체에 대한 거절과 비난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내가 타인에게 거절 의사를 내비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인데도 말이다.
(얼마전엔 점심 같이 드실래요? 라고 말을 꺼내는 것 조차 힘들어서 손발에 땀까지 흘려갔던 일도 있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원인을 알려면 앞으로 나에 대한 많은 공부가 필요하겠지만 오랜 시간 동안 난 결국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곤 '완벽함'하나뿐이라는 생각을 무의식에 항상 담아두고 살아왔었던 것이다.(그래서 내 인생에서 실패는 독약이고 성공만이 살 길이라 생각하니 나는 시도라는 게 정말 힘든 사람 같다. 신중에 신중을 더해도 실천이 어렵긴 매한가지다.)
어쩌면 난 '결국엔 완벽하지 못할 나'뒤에 숨어서만 살아오고 있는 건 아닐까. 용기가 없어서 모든 걸 회피하는 사람처럼, 거절과 같은 것들은 맞고 틀리고 좋고 싫음만 있다는 이분법적 사고에 빠져서 말이다.
그런 내가 정말 지질하고 쿨하지 못한 것 같지만 그럼에도 난 나에게서 긍정적인 면을 찾고, 부정도 수용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만큼 세심하고 예민하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것이고, 이런 점들이 나를 발전시킨 부분도 있을 테니 말이다. 내가 힘든건, 내가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많은 것에 도움을 받고 있는 지금, 나는 나를 위해 나만의 유연한 방패를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