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갈레 포트(Galle Fort)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건설한 스리랑카 갈레 포트

by 머슴농부


전날의 과음 탓에 늦은 아침을 먹고서야 숙소를 나섰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갈레 포트(Galle Fort)가 유명하다고 하여 발걸음을 옮겼다.


숙소에서 버스를 타고 갈레 기차역 앞에서 내린 뒤, 포트까지는 천천히 걸어갔다.

갈레는 포르투갈인들이 처음 도착해 항구를 건설한 곳이다.


이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The East India Company)가 포르투갈 세력을 몰아내고 갈레 포트를 본격적으로 확장·건설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갈레 포트는 “갈레 더치 포트(Galle Dutch Fort)”라고도 불린다.


멀리서부터 성벽이 보이기 시작했고, 넓은 공터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포트로 걸어가는 길에서는 열대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커다란 도마뱀도 마주쳤다.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을 가까이 가보니 크리켓 경기가 한창이었다.


크리켓은 영국 식민지 시절 전파된 스포츠로, 영국은 이를 “문명화된 스포츠”로 포장해 식민 지배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데 활용했다.

하지만 크리켓은 공과 방망이만 있으면 어디서든 즐길 수 있는 저비용 스포츠이기에 골목길이나 빈터에서도 경기가 가능해 자연스럽게 빈민가로까지 퍼져 나갔다.


오늘날 스리랑카에서 크리켓은 계층과 종교를 초월하는 소통의 도구가 되었다.

가난한 청소년이 크리켓을 통해 성공하는 이야기는 사회적 상승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크리켓은 어느새 국가적 정체성을 대표하는 스포츠가 되었다.


한동안 경기를 지켜보다가 갈레 포트 안으로 들어갔다.


성벽 위에는 포트를 지키던 군인의 조형물과 오래된 대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성벽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시원하게 트여 있었고, 발아래로 펼쳐진 바다는 인도양이었다.

성벽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니 날씨는 덥지만 간간이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더위를 조금이나마 식혀주었다.

무슨 행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곳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도 보였다.

성벽 아래에서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유독 스리랑카에는 서양인 여행객이 많다는 인상을 받았다.


설마 식민지의 추억을 떠올리기 위해 이곳을 찾은 것은 아닐 텐데, 그런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성벽의 끝자락에는 스리랑카 최초의 등대인 갈레 등대가 우뚝 서 있었다.

등대 아래 해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바다를 즐기고 있었다.

길을 걷다 사람들이 몰려 있는 건물이 있어 물어보니 법원이라고 했다.

법원을 지나 해안 쪽으로 가자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작은 항구가 나타났고, 그 근처에서는 소규모 피시 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미리사 피시 마켓에서 보았던 생선들이라 그런지 낯설지 않았다.

날씨가 너무 더워 갈레 포트를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만족하고, 길거리 카페에 들러 잠시 더위를 식혔다.

쉬엄쉬엄 거닐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스리랑카의 무더위는 여행자를 쉽게 지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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