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레에서 다시 찾은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
스리랑카 여행도 어느덧 마무리를 향해 가고 있었다.
갈레에서 다시 수도 콜롬보로 이동해야 할 시간이 찾아왔다.
기차와 버스 사이에서 잠시 고민하다가, 마지막 여정은 기차를 타기로 결정했다.
콜롬보행 기차에 몸을 싣고 남쪽 해안을 따라 달려 약 세 시간 만에 콜롬보 역에 도착했다.
콜롬보 역사는 현지인들과 여행객들로 북적이며 스리랑카의 활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무더운 날씨 탓에 툭툭이를 타고 예전에 묵었던 숙소로 돌아가 체크인을 했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낮잠으로 더위를 식힌 뒤, 숙소 근처에 있는 더치 병원(Dutch Hospital)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식민지 시절 병원이었던 이곳은 지금은 바와 레스토랑이 모인 복합 공간으로 변모해 있는 곳이다.
아직 해가 지기 전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많지 않아 조용히 둘러보기 좋았다.
기념품 가게도 몇 곳 눈에 띄었다.
해가 서서히 기울자 분위기도 함께 달라졌다.
하나둘 여행객들이 모여들며 더치 병원은 저녁의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더치 병원에서 나와 예전에 들렀던 숙소 바로 옆의 식당으로 향했다.
코코넛으로 만든 스리랑카식 위스키와 매콤한 데빌드 치킨(Deviled Chicken)을 주문했다.
음식을 기다리는 사이, 서양 여행객들이 단체로 들어왔다.
이들은 콜롬보 시티 투어 중 잠시 들른 사람들이었고, 현지 가이드의 안내로 코코넛 술을 시음하기 위해 이곳에 들렀다고 했다.
알고 보니 이 식당은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이어져 온 80년 역사의 노포로, 현지인들에게도 꽤나 유명한 곳이었다.
술과 음식이 나오고 한 잔을 마시고 있는데, 식당 자리가 부족해 스리랑카 젊은 현지인 한 분이 합석했다.
그는 콜롬보 항만에서 일하는 근로자로 퇴근 후 스리랑카의 국민 음식이라 할 수 있는 꼬뚜와 맥주 한 잔을 즐기기 위해 들렀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조심스럽게 월급을 물어보니, 우리 돈으로 약 40만 원 정도를 받는다고 했으며, 많지 않은 급여지만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고 했다.
가족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고, 가끔 이렇게 맥주 한 잔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현재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은 무척 담담하고 진심으로 보였다.
돈의 많고 적음이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행복이란 남의 것을 탐하지 않고, 부족함 속에서도 스스로 만족할 줄 알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아닐까?
콜롬보의 밤에 식당에서 만난 스리랑카 항만 노동자와 나눈 짧은 대화도 이번 스리랑카 여행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