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하노이에서 경험했던 여행 에피소드
여행을 다니다 보면 가끔씩 예상치 못한 에피소드를 겪곤 한다.
이러한 예기치 않은 만남과 이야기들이 여행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오래도록 기억으로 남는다.
베트남 하노이의 단골 호스텔 입구에서의 일이었다.
늦지 않은 밤,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나이가 들었지만 우아하고 화사한 미모의 서양 할머니가 다가와 모바일 메신저인 “WhatsApp”을 아느냐며 물어보았다.
통화를 하고 싶은데 전화가 되지 않는다며 도움을 청하며 스마트폰을 건넸다.
스마트폰을 살펴보니 인터넷이 끊어져 있기에 호스텔 와이파이를 연결해 주었다.
곧이어 할머니는 누군가와 프랑스어로 한동안 통화를 마치고 나서는 고맙다며 맥주 한 병을 사주며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미모의 할머니는 그 당시 71살의 프랑스 국적으로 베트남을 혼자 여행 중이고 프랑스어 교사로 알제리와 브라질, 아르헨티나에서 오래 살았으며 자식과 손자와 손녀도 있으며 오래전에 남편과 사별 후 프랑스 소도시에서 홀로 연금 생활자로 살고 있다 하였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는 그다음에 이어졌다.
통화를 했던 사람은 바로 38살의 유부남 남자친구였다는 것이다.
아들뻘 남자친구라는 이야기에 속으로 깜짝 놀랐으며, 아무 말도 하질 못하고 조용히 듣기만 하였다.
그리고 할머니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남자친구의 아내도 할머니의 존재를 알고 있으며, 오히려 남편의 여자 친구로서 할머니를 인정하고 친하게 지낸다고 했으며, 남자친구는 매년 휴가의 절반은 가족과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할머니와 보낸다고도 말했다.
할머니는 수줍은 미소로 남자친구와의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남자친구가 통화 중에 “Thousand kiss my love”라고 수차례 말한 것을 행복해하며 소녀처럼 기뻐하곤 하였다.
하지만 그 모습은 전혀 이상하지 않고, 오히려 그녀의 진심이 느껴졌다.
할머니는 자신의 인생 이야기와 남자친구 이야기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뒷모습이 활기차고 씩씩해 보였다.
와이파이가 끊어진 줄도 모른 채 통화를 시도하며 애타는 마음을 갖고 있다가, 드디어 연결된 통화에서 쏟아낸 그녀의 이야기는 솔직하고 진심 그 자체였다.
낯선 이에게 자신의 삶과 마음을 털어놓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나이 많은 할머니가 아들뻘되는 젊은 남자친구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더욱 그렇다.
그녀는 비독점적 다자연애, 즉 Polyamory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남자친구와 그의 아내 또한 이 관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Polyamory를 실천하는 사람들은 사랑의 본질이 독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진정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지지해 주는 것이라 믿는다.
배우자나 연인이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상황에서 질투심을 이겨내고, 상대방의 행복을 바라며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그들의 철학이다.
할머니와 남자친구, 그리고 남자친구의 부인은 이런 성숙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할머니에게 남자친구는 삶의 활력소였고, 남자친구는 어머니 같은 사랑을 받고 있는 듯했다.
폴리아모리는 나의 동양적 사고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지만 할머니를 주책없게 여기거나 불편한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무튼 그녀의 순수한 사랑과 그로 인한 문화적 다양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운 건 사실이다.
남자친구 이야기를 하며 소녀처럼 수줍어하고 활력이 넘치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사랑의 형태는 참으로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Polyamory라는 관계는 할머니의 삶에 깊은 의미와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