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의 도시이자 “터키의 모나리자”가 있는 가지안테프
튀르키예의 가지안테프(Gaziantep, 현지에서는 주로 ‘안테프’라 불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이미 수메르 시대부터 도시가 형성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또한 실크로드가 지나던 중심지로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고도(古都)이다.
하지만 2023년 튀르키예와 시리아 대지진은 가지안테프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도시 전체가 큰 피해를 입었고, 수많은 사상자와 이재민이 발생했기에 이곳을 여행했던 한 사람으로서 가슴 아프다.
가지안테프에는 세계적인 문화유산들이 존재하는데 대표적으로 제우그마 모자이크 박물관(Zeugma Mozaik Museum)이 있다.
이곳은 고대 로마 시대의 모자이크 예술을 집대성한 곳으로, 그중에서도 “집시 소녀” 모자이크는 박물관의 상징이자 ‘터키의 모나리자’라 불리는 걸작이다.
약 2,300년 전 로마 시대에 제작된 집시 소녀 모자이크는 그리스 신화의 주신(酒神) 디오니소스를 따르는 여성 추종자 ‘마에나드(Maenad)’를 묘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물관에서는 집시 소녀를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해 방안의 조명을 완전히 끄고 오직 모자이크에만 빛을 비추는 특별한 연출을 사용하는데, 어두운 방 안에서 그녀의 눈빛을 마주하면 마치 시간이 멈추고 2,300년 전 그녀의 생생한 시선과 마주하는 듯한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다.
전시실 입구의 설명에 따르면, 집시 소녀의 얼굴에는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담겨 있으며, 헬레니즘 시대의 초상화 기법인 3/4 시각(Three-Quarter View) 기법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3/4 시각 기법은 후대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릴 때 활용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어, 이 작품이 “터키의 모나리자”라 불리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제우그마 박물관에는 집시 소녀 외에도 수많은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가 전시되어 있어 가지안테프를 방문한다면 꼭 들러야 할 장소이다.
박물관을 둘러본 후, 밖으로 나서면 도로 중앙 분리대에는 옛 실크로드를 떠올리게 하는 대상(隊商)의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어, 이 도시가 지닌 역사적 정취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2,300년 전 고대 예술이 지금도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가지안테프는 단순히 과거를 돌아보는 것을 넘어 인류 문화의 위대함을 다시금 깨닫게 하는 곳이다.
시리아 요리의 영향을 받은 가지안테프는 튀르키예에서도 가장 종류가 다양하고, 맛있기로 유명한 요리를 자랑하는 미식의 도시다.
한국을 포함한 해외 튀르키예 음식점에서 주력으로 내는 요리들 대부분이 가지안테프 요리라 할 수 있다.
수십 종류의 케밥들과 바클라바 등이 이 지역에서 탄생하였다.
참고로 가지안테프 전통요리는 유네스코 세계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가지안테프는 미식의 도시 이름에 걸맞게 아침 조식도 다른 도시에서 묵었던 숙소와는 차이가 있었다.
생소하고 다양한 치즈들과 잼 종류들이 제품으로 나온 것도 있지만 다양한 수제잼들이 별도로 나왔다.
튀르키예에서 치즈와 올리브, 토마토는 빠지지 않는 식재료이다.
가지안테프는 과거 실크로드가 지나던 곳으로 아직도 남아 있는 수많은 시장들과 상인들의 숙소에서 과거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가지안테프의 대중적인 음식인 베이란(Beyran)은 보통 레몬을 쳐서 먹으며 빵과 함께 먹는 매운맛이 나는 피망과 생양파를 곁들여 먹는데, 먹기 전에 레몬즙을 넣는다는 것만 빼면 우리네 육개장 맛이 난다.
라흐마준은 서양의 피자와 비슷하다.
먼저 밀가루를 반죽하여 피자 빵처럼 얇고 둥글게 민다.
고기는 주로 양고기를 사용하며, 토마토·고추·파슬리 다진 것 등을 넣은 뒤, 소금·후춧가루·레몬즙 등으로 양념을 하여 오븐이나 화덕에서 구워내는데 가지안테프가 역시 원조이다.
가지안테프의 허름한 골목에서 케밥을 사먹어었다.
갓 구워 낸 양고기를 빵에 싸서 샐러드와 함께 나왔다.
따뜻한 양고기가 부드럽고 정말 맛있다.
다른 도시에서 먹는 것과는 다르게 아주 맛있었다.
튀르키예는 세계최대의 피스타치오 생산국이며, 그중에서도 가지안테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된다고 한다.
피스타치오를 넣어서 만든 튀르키예의 가장 대표적인 디저트가 바클라바(Baklava)이며, 현재의 바클라바는 18세기경 오스만 제국시기에 가지안테프에서 완성되었다고 한다.
가지안테프 시내를 걷다 보면 바클라바 가게들이 참 많이 보인다.
가지안테프에서는 닭고기나 소고기는 고기로 취급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로지 양고기만이 고기다.
식당에서 메뉴를 보면 Meat는 양고기를 의미하며, 어쩌다 치킨이 보였고 소고기는 아예 없었다.
가지안테프를 비롯한 튀르키예 동남부 도시는 시리아와 가까운 곳으로 예전에는 시리아의 과격 무슬림과 충돌이 있었고, 시리아 난민들도 많이 유입되는 곳이라 우리나라 외교부에서는 여행자제 지역 혹은 철수 권고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하지만 가지안테프는 너무나 평화스럽고 조용하였으며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맛있는 도시였다.
미식의 도시에서 많은 음식들을 접하지 못한 것이 오히려 아쉬울 따름이다.
나에게 가지안테프는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더 꼭 방문해보고 싶은 튀르키예에서도 특별한 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