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성사진사 Jan 02. 2023

고양이의 마음

고양이의 마음 01

엄마는 산고양이들에게 밥을 줬다. 아침이면 산고양이 전용 그릇에 맛있는 음식을 담아 집 마당 잘 보이는 곳에 놓아두곤 하셨다. 우리 집은 신림동 산 62번지. 진짜 관악산에 있어서 우체부 말곤 택배 아저씨가 찾아온 적이 거의 없었다. 매번 전화로 찾아오는 방법을 묻다가 택배를 근처 슈퍼에 맡겨놓고 간다. 그럼 외출했다가 집에 올라오면서 찾아왔다. 엄마는 고양이를 좋아했다. 그 맘을 아는지 산고양이들도 엄마를 잘 따랐다. 매번 밥시간에만 얼굴을 내밀더니 언젠가부터 엄마가 집 마당에 나와 찬송가를 부르시면 용케 알고 찾아와 엄마 손에 머리를 들이밀며 애교를 부렸다. 


엄마는 고양이들을 "나나"라고 불렀다. 왜 그리 부르냐고 물으니 이름 없는 고양이를 모두 나비라고 부르니 이 녀석들도 이름 없는 고양이 같아서 나나라고 이름을 지어주셨다고 한다. "그럼 더 예쁜 이름으로 지어주지." 했더니, "나나가 얼마나 예뻐" 하신다. 일본어로 나나(なな)는 숫자 일곱을 뜻한다. 신기하게 엄마의 나나들은 처음엔 두서넛이더니 나중엔 정말 일곱 마리가 됐다. 더도 덜도 아닌 일곱 마리가 백설공주의 난쟁이들처럼 살뜰히도 함께 다녔다. 그 모습이 얼마나 예뻤는지 나나들이 우리 집 마당을 활보할 때면 엄마는 거실 창밖으로 어린 자식 지켜보듯 보시며 “저거 봐라. 애들이 어찌나 예쁜지 모르겠다.” 하셨다. 엄마는 때로 집에서는 무뚝뚝하기 이를 데 없는 아들보다 더없이 살갑게 구는 나나가 낫다고 하기도 했다. 




2007년 1월. 새로운 1년짜리 달력을 벽에 걸고 얼마 안돼 엄마가 하늘나라로 긴 여행을 떠나셨다. 흔한 제주도 한 번 못가 본 우리 엄마 김정숙 씨. 사랑하는 남편이, 못난 아들이 눈물로 꼭 잡은 손을 맥없이 놓고 편안한 얼굴로 그렇게 잠에 드셨다. 

장례를 치르고 집에 돌아와 보니 마당 한 편에 벌써 먼지가 잔뜩 묻은 나나의 밥그릇이 눈에 들어왔다. 깨끗하게 씻어서 따뜻한 음식을 담아 내놨는데 다음날 보니 입을 대지 않았는지 그대로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나들은 다시 우리 집을 찾지 않았다. 사실은 한두 마리가 마당에 출몰하곤 했는데 그게 엄마의 나나인지 그냥 들고양이인지 나는 구별이 안 됐다. 

“나나야~ 나나야~" 불러봐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마치 울면서 애원해도 떠났던 엄마처럼. 몇 달인가 지나 비 오는 날 밖에서 고양이가 사람 소리를 내며 울었다. 얼마나 애절하던지 진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몇 마리가 따라서 운다. 영역표시나 세력다툼,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한 울음이라고 하기엔 너무 슬피 울었다. 나는 그날 무방비상태에서 그 울음소리를 따라 실컷 울었다. 나나를 핑계로 울었고, 비가 와서 울었고, 왜인지 엄마에게 미안해서 울었다. 

마당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제법 굵었지만, 고양이의 울음은 쉬 끊이지 않았다. 난 내 멋대로 엄마의 나나들임에 틀림없다고 믿었다. 이 녀석들도 비가 오니 엄마의 손길이, 정다웠던 목소리가, 따뜻하게 내놓았던 음식이, 녀석들에 대한 진심 어린 마음이 그리웠을 게다. 확인할 수 없는 그 마음이 난 고마웠다. 그날 난 한참을 울었다. 꼭 그날이 원인은 아닌데 ‘고양이의 마음’이란 시작도 정해지지 않은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고양이 사진을 찍었다. 


겉은 차갑지만 속은 여린, 허공에 던져놓아도 안전하게 착지하지만, 겁은 사실 많은 고양이. 현대인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와 비슷하다고. 하지만 사람보다 짧은 고양이의 한평생도 지켜보지 않고 고양이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게 우스웠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쓰지 않았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꼭 15년. 그 글을 올해 다시 써보려고 한다. 고양이에 대한 혹은 상처를 안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가는 나와 당신에 대한. 평범한 게 가장 좋은 거라면서 어떤 게 평범한 삶인지 몰라 차도에 뛰어들고도 위험을 모르는 고양이처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엄마가 그랬듯 ‘다 괜찮다’며 친구가 되어주는 글을 써보고 싶어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