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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사진사 Jan 02. 2023

절대 감출 수 없는 세 가지

Travel 슬로베니아 01 

세상에는 감출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감기와 가난, 그리고 사랑이다. 이중 사랑은 시대와 민족,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심장을 가진 사람이라면 겪을 수밖에 없는 감정의 동요다. 어떤 사랑도 내 안에서 생겨나지만 때로 나를 떠나지 못하고 입술 안에서 빙빙 돌다가 가슴앓이로 끝나기도 하고, 누군가의 사랑과 만나 한 편의 영화처럼 뜨겁고 차갑기를 반복하며 정열적이고 화려한 꽃을 피워내기도 한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정의 내릴 수 없으며, 남에게는 쉽게 조언하지만 내게 찾아오면 쉬운 어떤 것 하나도 쉽지가 않은 것이 사랑이다.


난 여행을 사랑에 비유한다. 평범하게 살아왔고, 무엇 하나 필요한 것 없는 만족스러운 일상을 살다가 누군가의 여행 사진에, TV에 지나가는 낯선 도시 풍경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리고 여행의 가슴앓이가 시작된다. 누구나 그런 일을 거치지만 모두가 마음을 뺏기는 건 아니다. 또 마음을 뺏긴 사람이라도 모두가 여행을 떠나는 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의 사랑처럼 여행도 통하는 무언가에 반응한 사람이 실행에 옮기게 된다. 

여행과 사랑에 빠지는 사람에겐 특징이 있다. 처음의 한 번이 어렵지 그다음부터는 쉽다는 것이다. 세상 말로 금사빠(금세 사랑에 빠지는 사람)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빼앗겨 쉽게 사랑에 빠지는 경우와 정말 비슷하다. 여행에 빠져든 사람은 일상의 다양한 부분이 여행에 초점을 둔 삶으로 변한다. 여행과 관련한 책을 많이 읽게 되거나, 여행 사진에 관심을 갖고, 휴가나 방학에 맞춰 여행지를 찾아보기도 한다. 수입의 일정 부분은 여행을 위해 저축하기도 하고, 여행 동호회와 모임에 가입해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재미있는 건 여행과 사랑에 빠진 사람 중 이후 여행과 이별했거나 거리를 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마치 어둠의 세계처럼 발을 들이기는 쉽지만 빼기는 어려운 것이 여행과의 사랑이고, 여행의 맛이다. 



유럽과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

유럽은 여행과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진정한 로망이다. 파리의 에펠탑이나 로마의 콜로세움 사진을 보고 유럽으로 날아갈 계획을 세우는 사람을 많이 봤다. 일본이나 홍콩 여행을 시작으로 여행의 범위를 넓혀 유럽으로 떠나기도 하고, 오랜 기간 비용을 모으고 정보를 수집해 방학이나 긴 휴가를 얻어 유럽 나라들을 여행하기도 한다. 여행과 사랑에 빠졌다면 최소 파리와 로마는 다녀와야 어디 가서 척이라도 할 수 있는 정도랄까. 

유럽여행에 단계가 있다면 보통 처음엔 서유럽으로 시작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탈리아와 프랑스, 영국, 스페인,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 등이 이곳에 있는데 동선이 짧고 기차와 항공 같은 교통편이 잘 돼 있어 묶어서 여행하는 일이 많다. 초짜 사랑꾼들은 나라 별로 수도와 명소 위주로 동선을 짠다. 차츰 노하우가 생기면 기간이 길어져도 하나의 국가만 선택해 소도시 위주로 여행하기도 한다. 사랑도 해 본 사람이 더 잘하듯 여행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똑같았다. 10여 년 전 처음 유럽을 찾았을 때, 이탈리아와 스페인, 프랑스, 포르투갈 등의 명소를 다녔다. 첫사랑이 그렇듯 강렬했고, 낯설었으며, 짜릿했다. 가는 곳마다 평소 보지 못했던 이국적인 풍경에 마음을 쉽게 빼앗겼고, 쉼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이후 유럽의 동서남북 곳곳을 다녔지만, 사람과의 첫사랑처럼 그 시간, 그곳에서 가졌던 설렘과 떨림은 여전히 오롯하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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