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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사진사 Jan 02. 2023

슬로베니아라는 짝사랑

Travel 슬로베니아 02

여느 짝사랑과 다르지 않았다. 우연히 마주한 사진 한 장. 유리알처럼 투명한 호수 한가운데 떠 있는 작은 섬, 섬과 맞춤이라도 한 듯 예쁜 교회 하나가 그 위에 올라앉아 있다. 사진은 고요히도 멈춰 있는데 사진을 보고 있는 나는 더 없이 설렜다. 마음은 동요했고 욕심이 생겼다. “가고 싶다.”

처음 블레드 호수의 풍경을 사진으로 만났을 때 일이다. 슬로베니아가 정확히 지도 어디에 있는지, 어떤 나라인지도 자세히 몰랐다. 그저 아름다운 풍경 사진 한 장은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꿈꾸게 하기에 충분했다. 

짝사랑은 대상과의 실제 사랑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가슴앓이로 끝나기도 한다. 사실 후자가 더 많다. 혼자 하는 사랑이라고 아쉽고 부족한 것만은 아니다. 마음에 담은 상대를 멀리서 지켜보고, 배려하고, 알아가는 것마저도 때로는 아름답다. 여행 역시 실제로 떠나지 못 하는 일이 많다. 하지만 여행지에 관한 역사와 문화 등을 공부하고 여행 코스와 숙소, 비용 등을 알아보며 실제로 떠났을 때를 상상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이런 짝사랑의 과정은 실제 여행으로 이뤄졌을 때 정해진 시간과 비용으로 더 높은 만족을 얻기도 한다. 

슬로베니아를 마음에 품고 정보를 찾아봤다. 우리나라 전라남북도 면적과 비슷한 작은 나라, 수많은 외세의 침략과 지배, 오래되지 않은 독립. 많지 않은 정보에도 사진 한 장으로 시작된 관심은 점점 더 커갔다. 사실 마음을 빼앗긴 사람은 자기의 관심사의 넓이와 깊이를 마음대로 정하지 못한다. 그저 이끌리는 대로, 마음이 흐르는 대로 따를 뿐이다. 

그즈음 슬로베니아로의 여행 기회가 찾아왔다.     


국기에 담긴 역사 이야기

슬로베니아라는 이름은 남슬라브어로 ‘슬라브인의 땅’을 뜻한다. 정식으로 슬로베니아라는 이름을 얻은 건 1991년 독립하면서다. 슬로베니아의 국토는 시대를 거쳐오며 수많은 대국 영토에 속해 있었고 다양한 민족이 이곳에 머물고 떠나기를 반복했다. 

국기만 봐도 슬로베니아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현재의 국기는 과거 이 땅에 머물던 신성로마제국과 오스트리아 제국,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의 지배를 받던 크라인 공국에서 유래했다. 공국은 왕이나 군주가 아닌 공작이 통치하는 작은 나라로 당시 크라인 공국은 백,청,적색의 삼색기를 사용했다.

오늘날 슬로베니아를 상징하는 깃발로 사용된 건 1948년 혁명 당시 슬로베니아 민족주의자인 로브로 토만이 류블랴나 시내 곳곳에 이 깃발을 세우면서부터다. 혁명은 아쉽게도 실패로 돌아갔지만 통치국이었던 오스트리아 제국은 이 깃발을 슬라브 민족의 상징이 아닌 이 지역의 깃발로 인정했다. 

이후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이 와해되면서 여러 국가로 분리됐지만, 이때도 슬로베니아는 독립하지 못했고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일부로 귀속된다. 그리고 얼마 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이때 독일이 슬로베니아 전역을 점령했는데, 반나치 저항군들이 크라인 공국의 백청적 삼색기를 사용했다고 한다. 

대전 이후 국토가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이후 유고슬라비아)으로 편입되면서 백청적 깃발 안에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붉은 별이 붙게 된다. 이때부터 유고슬라비아의 구성국인 슬로베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었고 이 깃발을 공식으로 사용하게 됐다.

현재 국기에는 붉은 별을 빼고 왼쪽 한 편에 산 모양의 국장을 붙여 넣었다. 이 국기가 사용된 것은 1991년부터다. 1991년 6월 25일 슬로베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이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을 선포하면서 비로소 슬로베니아 공화국이 수립됐다. 

현재 국기에 들어 있는 산은 슬로베니아의 최고봉인 트리글라브산이다. 높이 2,864미터로 슬로베니아는 물론 이탈리아에서부터 이어져 온 율리안알프스 산맥의 최고봉이다. 슬로베니아는 독립과 함께 국가의 높은 기상을 상징하며 최고봉 트리글라브산을 국기에 디자인했다.   

세 개의 봉우리 아래엔 두 개의 물줄기도 넣었는데 슬로베니아의 강과 바다를 상징한다. 봉우리 위에 떠 있는 3개의 별은 14~15세기 슬로베니아 왕조의 원조라고 여기는 첼례 지방 영주의 군대 휘장에서 따왔다고 한다. 디자인은 단순하지만, 국기 안에 슬로베니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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