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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사진사 Jul 17. 2023

취함에 취함

고양이의 마음

술을 늦게 배웠다. 술 ‘따위’를 누구에게 배울 거리나 될까 싶기도 했는데, 술 때문에 망했다는 사람도 많고,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술이 사람을 마시면 위험하다는 말도 있어서 요즘은 배워야 한다는 말에 절반은 동조한다. 다만 어른한테 배워야 한다는 말은 수긍할 수 없다. 어른답지 못한 어른이 많고 그런 사람이 술은 더 잘하기 때문이다.

술에 배움이 있다면 개인적으론 취하지 않게 마시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술 때문에 생기는 모든 사건·사고와 다양한 문제가 취함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자신은 아직 괜찮다고 느끼는 지점까지 술을 마셨어도 그때까지 혈액으로 퍼지지 않았던 알코올이 몸에서 뒤늦게 발현되면 문제가 일어난다. 자신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배움의 방법도 여럿이겠지만 자신이 이성과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느냐의 영역이 중요하다. 술 마시면 없던 용기가 난다거나 운동능력이 급증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조심해야 한다. 술을 마셔야 가능한 행동과 용기라면 마시지 않고도 할 수 있도록 길러야 진정 자신의 것이기도 하다.

술에서 깨면 기억하지 못할 정도의 취함은 곤란하다. 그걸 ‘필름이 끊겼다’고 하는데 아무도 자른 적 없는 자신의 필름을 스스로 끊어내면서까지 술을 마시는 건 위험하다. 한두 번은 우스갯소리나 무용담으로 치부한다고 쳐도 어느 순간 본인은 기억도 못하는 상황에서 되돌리기에 쉽지 않은 사건·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다. 통제가 안 되는 사람이라면 사실 한 번도 안 된다.


술을 늦게 배웠다. 서른일곱이 돼서야 제대로 술을 마셨는데, 그나마도 맥주 몇 잔 정도였다. 그 전에는 술을 마실 마음도 없었고, 술자리에 가지도 않았다. 종교 때문이냐는 말과 지병이 있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술을 마시는 게 전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유럽을 다니면서 식사나 좋은 대화에 술을 곁들이는 걸 보면서 인식을 바꿨다. 그때까지 술은 내게 맛도 없고 마시기 어려운 액체였다. 하지만 사람은 학습이 되고 반복을 통해 진화한다. 어느 순간 자연스레 맥주 한두 잔은 마실 수 있었고, 심지어 더운 날엔 맥주가 생각날 정도로 즐기기도 했다.

필름이 끊긴 적도 여럿이다. 얼마나 마셔서 끊겼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제법 마셨으니 끊겼을 거고 어느 지점에서부터 끊겼는지도 모른다. 다만 깨었을 때 두려움이 너무 컸다. 함께 있었던 사람들은 “필름이 끊겼다고? 전혀 몰랐는데? 우리 그냥 잘 애기하고 헤어졌어.”라고 말했지만, 내 기억에 없는 “잘 얘기”한 내용과 헤어져서 어찌 돌아왔을지 모를 귀가 시간이 두려웠다.

여전히 술을 마신다. 이제 생각은 달라졌다. ‘마시지 않는 것보다 마시는 것이 좋을 때’라야 마신다. 굳이 술을 안 마셔도 좋은 거 아닌가 할 수도 있는데, 술을 마시게 된 거라면 안 마신 것보다는 좋은 결과를 만들겠다는 마음이 먼저여야 한다. 그 자리의 분위기도,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혹은 함께 하려는 일도. 술자리에서 나누었기 때문에 보다 술술 넘어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적당하지 않은 선까지 마신다. ‘아직 괜찮은데?’라는 생각이 들었을 땐 이미 늦었을 수도 있으니까. 부족하다고 느낄 때 멈춘다. “주량이 어떻게 되나요?”라고 묻는 질문에도 “잘 모르겠어요.”라고 답한다. 컨디션에 따라서 맥주 한 잔에도 알딸딸한 날이 있고, 자리를 바꾸면서 여러 잔을 마셔도 괜찮은 날이 있기 때문이다. 절대 술에 자신감을 갖지 않는다.

술을 마셔서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이 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시는 술이 그렇고, 좋아하는 장소에서 혹은 아끼던 음악과 함께 하는 경우가 그렇다. 가끔은 지친 하루를 보내고 혼자 마시는 캔맥주도 좋다. 그 순간의 알딸딸함은 취해서 좋은 취함이다. 몸과 마음이 느슨해져도 좋을 시간과 장소에서 마시는 술. 그럼에도 정도와 절제가 동반되는. 취함이 좋은 취함에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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