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우리의 삶이 언제 끝날지 안다면 우리는 1분 1초를 소중하고 특별하게 쓰려고 노력할 겁니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무언가를 할 것이고, 언젠가 해보고 싶었던 그것도 하겠지요. 여행이 일상보다 특별할 수밖에 없는 건, 모든 여행은 시한부이고 끝나는 날짜를 정확히 알기 때문이 아닐까요. 늦은 밤, 숙소로 돌아와 잠들기 전에 잠시 속으로 세어보게 되지요. 한국으로 돌아가기까지 몇 밤이나 남았는지. 그리고 괜히 다짐도 하게 됩니다. 남을 날들을 더욱더 소중히 보내야겠다고.
회사를 그만두고 한번 놀아보자 결정함과 동시에 1년이라는 기간을 정해놓은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저라는 사람은 성실한 직장인이자 게으른 집순이라서 기약 없는 놂이 계속된다면 분명, 돈 안 벌고 이렇게 놀기만 해도 되나? 하며 슬슬 불안해하거나 아니면 세상만사 귀찮은 히키코모리가 되기 십상이거든요. 기왕 놀기로 결정한 거 맘 편히 즐기려면 기간을 한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6개월은 너무 짧아서 아쉬울 거 같고 2년은 너무 길어서 직장 세계로 복귀하기 어려울 거 같아서 1년으로 정했습니다.
그다음에 정할 건 예산이었죠. 대략 1년 간 외국에서 생활할 비용과 한국에 돌아와서 취직이 바로 안 될 경우를 대비해 여분의 두 달치 생활비까지 염두해서 예산을 짰습니다. 그리고 언제까지 돈을 모을 수 있을지 따져본 다음, 그 돈이 준비될 즈음을 퇴사 날짜로 정했습니다. 퇴사하기로 마음먹은 건 하루아침이었지만 사표를 제출한 건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나서였지요. 준비기간 동안 열심히 일을 했고, 저축을 했고, 수영을 배웠고, 영어공부를 했고, 운전연수를 받았고, 새 직장을 구할 때 쓸포트폴리오를 미리 만들었고, 일찌감치 가족들에게 백수 선언을 해 마음의 준비를 시켰습니다. 결심은 충동적이되 실행은 꼼꼼했지요.
오아후 카피올라니 파크(Kapiolani Park)
언제나 그렇듯 하루하루는 느리게 1년은 빠르게 지나갈 겁니다. 베짱이에서 일개미로 돌아갈 날도 반드시 오겠지요. 일을 취미가 아닌 생계로 하는 이상, 한창 일하기 좋은 나이니까요. 평생 놀고먹는 삶,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하지만 저는 유효기간이 있는 지금의 놂이 좋습니다.끝이 있는 걸 알기에, 하루에 딱 하나씩만 주어지는 오늘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더욱 소중하게 쓸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