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 이야기는 짜내지 말고 우려내라

글쓰기가 막히면 글쓰기를 멈춰라.

by 도파민

제7장 - 이야기를 짜내지 말고 우려내라

“글쓰기가 막히면 글쓰기를 멈춰라.”


나는 작가 지망생들과 오랜 시간 함께해 왔다.

대학 강단에서, 문화센터 강의실에서, 또는 소규모 워크숍에서.

그들과 마주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듣는 질문이 있다.


“선생님, 글을 쓰다가 막히면 어떻게 해요?”
“아이디어나 영감은 어디서 얻으세요?”


아마 모든 작가가 평생 동안 반복해서 듣는 질문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 질문에 대해 매번 하는 대답은 단순하다.


“그럴 땐 글을 쓰지 않습니다.”


이 대답을 듣는 순간, 대부분의 수강생은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어떤 이는 실망하고, 어떤 이는 얼떨떨해한다.


창작이란 ‘고통’이라는 환상이 우리 사회에는 너무 깊게 뿌리내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작가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사람’이라 정의한다.

고뇌에 찬 표정으로 원고지 앞에 앉아 있는 이미지, 머리를 쥐어뜯으며 영감을 기다리는 모습.

그런 모습이야말로 진짜 작가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말한다.


“창작은 고통스러워서는 안 된다.”


물론 마감의 압박, 체력적인 고단함, 피드백을 받을 때의 자괴감 같은 것은 있다.

하지만 그건 ‘작가의 삶’ 이 힘든 것일 뿐, ‘창작’ 그 자체가 고통스러운 건 아니다.


진짜 창작이란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

이미 내 안에 머물고 있었던 기억과 감정을 꺼내어 재구성하는 일이다.

창작은, 결국 ‘우려내는 작업’이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다는 착각

창작을 ‘짜낸다’고 말할 때, 우리는 마치 마른행주를 비틀어 짜듯 머릿속에서 억지로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느낀다.
하지만 진짜 좋은 이야기는 그런 식으로 탄생하지 않는다.

진짜 창작은, 작가가 지금까지 읽고, 듣고, 보고, 느끼고, 겪어온 모든 것들이 작가의 의식과 무의식에 축적되어 있다가-

훗날 작가가 독자로 하여금 '어떠한 감정'을 유발하게 하거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 따라 다시 가공되어 재창조되는 것이다.

작가가 살아오면서 경험한 그 모든 직간접경험을 '무(無)'라고 말할 수 있는가?

작가는 항상 '재창조'할 뿐,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진 못한다.


그러니 만약 여러분이 지금 글을 쓰다가 막혔다면, 그건 창작력의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재료가 모자란 상태에서 요리를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입력(input)이 없는데 출력(output)만 하려고 했던 것이다.


‘창작의 고통’에 빠진 당신에게

나는 창작의 고통을 호소하는 작가 지망생에게 늘 이렇게 조언한다.


“작가의 두뇌는 섬세한 붓처럼 써야 합니다.

붓이 마르면, 물감에 다시 적셔야지,
마른 붓을 억지로 종이에 문질러봐야 소중한 붓만 망가집니다.”


우리는 종종 너무 조급하다. ‘내가 지금 아무것도 못 쓰고 있다’는 사실이 불안하고 부끄럽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요리사라도, 장보기를 하지 않았다면 요리를 할 수 없다.
그럴 땐 텅 빈 냉장고를 들여다보며 먹을 만한 게 없다며 한숨만 쉴 것이 아니라, 장을 보러 마트에 가야 할 때인 것이다.


자서전을 쓰다가 막힌 당신에게

자서전을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서전을 쓰다가 문득 멈추게 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뭘 더 써야 하지?”

그럴 때는 절대로 억지로 글을 쓰지 말고, 기억을 자극할 수 있는 ‘의식의 여행’을 떠나보자.

오래된 앨범을 꺼내어 사진을 들여다보기

예전에 살던 동네를 산책하며 기억을 되살리기

다녔던 학교, 회사, 단골 식당에 들러보기

그 시절 즐겨 듣던 음악을 다시 들어보기

오랜 친구와 만나 술 한잔 하며 그 시절 이야기를 나눠보기


이렇게 하면 우리의 감각이 다시 깨어난다.
기억은 한 조각만 되살아나도 연결되어 줄줄이 끌려 나온다.
때로는 냄새 하나, 음악 한 소절이 수십 년 전의 그 장면으로 우리를 데려가 주기도 한다.

그 순간, 이야기는 ‘짜내지는’ 것이 아니라 ‘스며 나오게’ 된다.


글이 막힐 때는, 조급해하지 말고 글쓰기를 멈춰라.
그건 '창작의 고통'이 아니라 '재료가 부족하다'는 알림일 뿐이니까.
그럴 땐 의도적으로 입력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당신의 삶을 천천히 다시 들여다보고, 기억의 우물에서 한 바가지씩 퍼 올리자.
곰탕을 끓이듯, 천천히. 깊고 진하게.

이야기를 짜내지 말고, 우려내자.
그 우려낸 이야기에는 당신의 시간이 담겨 있고, 당신만의 깊은 향기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향기는 분명 누군가에게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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