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라 Dora Jul 26. 2023

운동, 휴식, 성장

근성장을 포함한, 좀 더 근본적인 성장에 관하여


휘리릭 휘리릭, 일정한 리듬으로 줄이 허공을 가르고 순식간에 땅을 두번 내치는 소리가 들린다. 서두르지 않고 공중으로 가볍게 도약한다. 최대한 높이, 그리고 가볍게, 오래. 줄을 휘두르다보면 얼마 안가 줄이 때려야할 곳 대신 내 몸뚱이 어딘가를 때릴만도 한데 이번에는 일정한 리듬으로 꽤 오래 간다. 쉬지 않고 한 번에 스무여 번, 크로스핏 시작 이후 더블언더(우리가 아는 줄넘기 용어로 하면 '쌩쌩이'를 말한다) 최대 기록치 달성이다. 오가며 눈 마주치면 어색하게 인사하는 것 정도가 전부였던 동료 크로스피터들 몇 명이 박수를 쳐준다. 100개씩 쉬지않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정도에 박수를 받자니 좀 머쓱하긴 하지만 내가 한 개도 겨우겨우 할 때부터 본 사람들이라 그런지 이만큼의 성장을 축하해주는 마음이겠거니 해서 뿌듯하면서도 가슴이 따듯해졌다.


몸이 안 좋아 주말 포함해서 사흘을 내리 쉬고 오랜만에 운동을 하러 간 오늘, 더블언더 스무개뿐 아니라 또 다른 성과도 냈다. 역도 동작인 '클린'에서 역대 최대 무게를 든 것이다. 그래봤자 95파운드(약 43키로)라고 하면 아직 크로스핏 세계에서는 갈 길이 멀기는 하지만, 불과 2월 말경 운동을 시작할 즈음 35파운드짜리 바벨도 제대로 못 가눠서 25파운드 짜리 '애기'바벨을 들고 시작했던 것을 떠올리면 정말 눈물 날 만큼 뿌듯한 성과다.


더블언더 20개, 클린 95파운드로 우쭐해져서 글까지 썼냐 하면, 반은 맞다. 다만 좀 더 본질적으로 말하자면 휴식과 성장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다. 그리하여 땡볕이 내리쬐는 무더위에 땀 뻘뻘 흘리며 남천동의 가장 좋아하는 카페까지 노트북을 가져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늑골에 금이 간 것 같네요. 최소 3주는 쉬셔야 해요.


나의 첫번째 부상은 늑골이었다. 등산을 좋아하는 나는 산중에서도 특히 바위산을 좋아했는데 흙산보다 훨씬 다이나믹한 재미가 있어서다. 같은 해발고도라도 암릉으로 이루어진 산이 더 좋았다. 2022년 6월의 무더운 초여름, 바위를 좋아한다면 꼭 한번 가보라는 추천을 받고 관악산의 육팔봉 능선으로 향했다. 조금 무리해서, 그리고 고수분의 도움을 받아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던 릿지구간을 무사히 넘겼다. 그때 난 조금 들떴고 우쭐했다. 같이 갔던 일행 모두가 우회길로 돌아갔는데 나 혼자 그 어마어마한 릿지코스를 다 마쳤다는 우쭐함이었던 것 같다.


그런 기분으로 신나게 남은 길을 걷다가 허무하게도, 흔하디 흔한 평지길에서 앞으로 철퍼덕 넘어져버렸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앞으로 넘어지면서 손으로 짚는 반사신경이 발휘하지 않아, 팔다리를 쫙 벌린 형상으로 넘어졌다. 살갗이 까진것은 물론이요, 이상하게 왼쪽 갈비뼈 부근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말하기 힘들고 숨쉬기 힘들고 웃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조심조심 하산해서 고기까지 구워먹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다친 부분이 심상치 않았다. 다음날 정형외과에 가서 보니 늑골에 금이 간 것 같다는 소견이었다. 당연히 운동은 하면 안 됐다.


그래도 하체운동은 늑골과 상관없을테니까 해도 되지 않을까하여 무리하게 웨이트 수업에 갔다. 그러나 하체운동이라 하더라도 하체만 쓸수 있는 운동은 별로 없었다. 담당 트레이너는 내가 하는 걸 얼마간 지켜보더니 "오늘 거 차감 안 하고 그냥 정지해줄 테니까 제발 집에 가서 쉬세요. 원래 잘 하던 사람인데 이렇게 제 힘도 발휘 못하고, 이렇게 운동하면서 한 회차 까먹기는 너무 아까운데 본인도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하고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트레이너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니 조금 머리가 띵해졌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못하게 하니까 좀 억울하기도 하고 나는 왜이리 덜렁거려서 자꾸만 다치는 걸까 속상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눈물이 찔끔 났지만 그대로 옷을 갈아입고 집에 가서 쉬었다. 우울했다. 같이 운동하는 친구들은 매일 뛰고, 산에 가고, 웨이트 하는데 나만 집에 누워있어서 자괴감이 들었다.


그렇게 늑골 부상으로 3주간 쉬었다. 이런저런 자세를 해봤을 때 늑골이 아프지 않고 멀쩡한 것 같아서 바로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달리러 갔다. 북악산-인왕산-북악산을 뛰고 걷고 뛰고 하는 코스였다. 3주간 충분히 잘 쉬었는지 몸은 가볍고 가뿐하고 개운했다. 역시 휴식도 운동의 일부라고 하였던가. 친구들이 놀랄 정도로 가볍게 잘 뛰었다. 계속 선두를 유지했다. 주구장창 쉬지않고 운동만 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쉬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라 억지로라도 쉬게 하기 위해 다치게 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슬개건염이네요. 무릎 많이 쓰는 사람들이 잘 걸려요.


그렇지만 왜 깨달음은 오래가지 않는 걸까.


<사건이 발생, 깨달음, 잠시간 깨달음을 되새기며 자중하기, 그리고 다시 원상복귀> 패턴의 반복.

 

더욱 좋아진 운동 수행 능력으로 더 신나게 운동을 시작했고 그러다가 또 슬개건염에 걸렸다.('다시 뛰어볼까 한강에 갔다'편에 등장하는 사건이므로 짧게만 언급하겠다.) 운동은 더 잘 하고 싶고, 그런데 마음은 급하고. 생각해보면 모든 일에 그런 식인 것이다. 성격이 급해서 뭘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질 때가 있다. 진득하니 때를 기다리고 차근차근 꾸준히 성실히 하는 것? 가장 자신없다. 그래서인지 뭐든 얼른 이루고 싶어서 아등바등 목을 매는 것이다.


   

대퇴직근 손상으로 보입니다. 3주 이상은 쉬세요.



부산으로 이사 오면서는 근처에 달릴 데가 없다는 핑계로 러닝을 오래 쉬었고, 또 같이 산 탈 친구 없다고 등산도 오래 쉬었다. 그러면서 재미 붙인 종목은 크로스핏이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땐 매번 트레이너에게 칭찬도 더러 받았고, 센터 여성 회원들 중에선 제일 운동능력이 좋은 축에 속했는데 크로스핏을 시작하니 세상에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단 것을 매번 깨달았다. 무게도 무게고, 할 줄 알아야하는 묘기는 왜 이리도 많은지(정말로 묘기라고밖에 표현할 수가 없는 동작들도 많다)


이제 막 새로운 운동을 시작한 초심자로서, 조금 자존심 상하지만 미니(?) 바벨(25파운드)을 들고 운동을 시작했다. 그래도 1~2주 후에는 빈 바벨이긴 하지만 35파운드 바벨을 들 수 있었다(보통 우리 박스에서 여성은 35파운드, 남성은 45파운드 바벨을 든다) 그 후로는 무게도 차근차근 늘려가며 운동할 수 있었다. 다른 건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하면 했는데 역도 동작들은 도무지 늘지 않았다. 내가 절대로 몸치는 아닌데(나름대로 댄스동아리 출신이다) 코치가 보여주는 동작을 따라하면 세상에 몸치도 그런 몸치가 없다. 삐걱이는 고장난 로보트가 된 기분이다. 나를 가장 좌절하게 한 것이 바로 역도동작들(특히나 스내치 동작)이었다. 그래도 원체 힘이 나쁜 편은 아니라서 기술보다는 힘으로 무식하게 무게를 증량해가며 역도 동작들을 했다. 그러다가 또 무리를 해 버렸다.(이쯤 되면 무리하기는 나의 특기일까? 오죽하면 주변 모두가 "제발 적당히..."이라고 할 정도다)


처음으로 가장 높은 무게를 들고 와드를 진행하는데 그게 역시 무리였던 나머지 원판 몇 장이 꽂힌 바벨을 내리다가 허벅지를 그대로 찍어 버린 것이다. 그래도 그날 운동은 어떻게든 마쳤다. 육안으로는 멍이 들거나 하지 않았으나 그게 더 무서웠다. 차라리 멍이 든 거라면 '멍 들었네, 빠지겠지 뭐' 하고 넘길 수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다음날 서울에서 친구들이 놀러오기로 했고 그 친구들과 등산 및 마라톤 참가 약속까지 있는 타이밍이라 속이 탔다. 정확한 진단이 내려지길 원치 않아서(그것은 내 운동에 대한 무기징역 선고처럼 느껴진다) 병원은 조금 미뤘다. 약속한 대로 친구들이 왔고, 나는 발을 질질 끌면서도 친구들을 데리고 술도 마시러 가고, 등산도 했다. 하산 길에는 통증이 더 심해 거의 한 발로 깡총깡총 뛰며 내려왔지만 어쨌든 등산은 마쳤다. 그때까지만 해도 등산까지 그럭저럭 할 정도니까 마라톤도 나갈 수 있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하며.


물론, 다음날 다리는 더 악화됐다. 마라톤은 당연히 못 나갔다. 해운대와 광안리 일대의 바다를 보며 뛸 수 있는 인생 첫 마라톤의 기회였는데 날려서 아쉽지만 참가했어도 걷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월요일엔 정형외과에 갔다. "3주간의 휴식을 요함" 대퇴직근 손상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심각한 것은 아니나 대퇴직근은 근육 자체가 커서 회복에도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울면서 크로스핏 회원권을 정지했다. 3주간 운동은커녕 평지를 걷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렇지만 조급한 내 맘과 달리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그래도 흐르기는 흘러서 3주가 지났다. 약속된 3주가 지나자마자 다시 박스에 나갔다. 아직 특정 동작을 하면 다친 부위가 아팠으나 그 동작들을 피하며 운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식어있던 근육들에 슬슬 시동을 걸어주며 지난 3주간의 괴로움을 곱씹으며 절대로 무리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3주간의 휴식 후에 돌아가니 안 되던 동작들이 술술 잘 되는 마법이 일어났다. 풀업이 힘들었는데 밴드의 개수도 줄어들고 스쿼트, 역도 등 운동에서 무게도 더 올릴 수 있었다.


일을 쉬는 날이면 제주도에도 가고 서울에도 가느라 운동에 빠질 때가 많은데 오히려 조금 쉬고 운동하러 가면 안 되던 동작들이 더 잘 될 때가 많았다. 역시 어느 정도의 휴식은 필요한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안되던 동작들이 되고, 최대 무게를 들고 하다보면 또 신이 나버리는 게 문제였다. 신나게 운동을 하니 쉬는게 너무 억울하고 싫고 조급증이 드는 것이다.


무리해서 운동함-> 그로 인한 부상 -> 쉬고 돌아오니 운동이 더 잘됨 -> 신나게 무리해서 운동함


이 패턴의 반복인 것이다.


오늘은 며칠간을 쉬고 운동을 하러 간 날이다. 운동을 하다 다친 것은 아니고 뒤늦게 코로나에 걸려 지옥에 들어갔다 나온지라 운동을 못 갔다. 아침에 일어나면 늘 오늘 운동할 수 있는 컨디션인지를 체크한다. 어제는 좀 애매해서 쉬었고(쉬길 잘했다) 오늘은 어제와는 확연히 다른 몸컨디션에 바로 운동을 하러 갔다. 안 되던 더블언더도 20개 넘게 되고, 클린도 최대 무게를 들었고, 트레드밀 30분 달리기의 페이스도 더 좋아졌다.


영광(?)의 상처들



모든 일엔 휴식이 필요하다


물론 휴식 이전에 꾸준히 열심히 했기 때문에 휴식을 갖고 도약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쉼 없이 달리기만 한다면 다치고 만다. 나는 왜 더 못하지? 하는 생각에 조급증만 갖고 나를 다그치며 쉬지 않고 달리면 오히려 독이 된다. 휴식이 중요한 이유이다. 물론 휴식만 계속된다면 그것은 애초에 휴식이라고 할 수도 없을 뿐더러 쌓인 게 없으니 도약할 수도 없다. 물론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다그치기 전에 다시 한 번 마인드 컨트롤을 할 필요는 있는 것이다.


책에서 보고 남들이 하는 말을 듣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직접 경험하는 것이 맞는 것이, 전부터 성장이나 발전은 완만하게 올라가는 그래프가 아니라 계단식으로 올라가는 그래프 같은 것이란 말을 많이 들었다. 그 말을 듣기만 했을 땐 와닿는 게 없었는데 막상 내가 그 그래프 위에 올라타고 보니 그보다 더 잘 맞는 말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체력을 얻기 위해, 혹은 다이어트를 위해 시작한 운동인데 운동을 하며 근성장을 하는 동시에 삶을 꿰뚫는 통찰력까지 얻은 것같다. 나도 지금까지 쉬면 안되고 계속해서 일해야한다는 조급증을 가지고, 휴식하며 성장할 기회를 놓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 15년도부터 일을 시작해서 22년도에 퇴사를 했는데 두어달 쉬고 또 바로 이사를 하고 일을 시작했다. 운동은 고작 몇 달 운동하고 몇 주 쉬는 것인데 이에 비하면 일은 몇 년이나 쉬지 않고 했는데 두어달 쉬는 게 너무 짧은 휴식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 사실 일을 하면서 성장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쉬지 않으면 내가 얼만큼 성장했는지 돌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이번달을 마지막으로 부산에서 시작한 일을 관두고 조금 쉬어보려 한다. 일을 그만두게 된 데에는 이러저러한 복잡한 사정이 있지만 그런 일때문에 그만둔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러므로 나의 휴식과 성장을 위해서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조급하지 않게.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말이다. 내 몸으로 부딪혀가며 배운 교훈을 잊지 않고 싶다. 조급증이 들 때마다 운동을 하며 깨달은 교훈을 곱씹으며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꿰하고자 한다. 이 휴식기간 동안 이루게 될 성장을 기대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퇴사 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냐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