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걸음의 이유는 살랑거릴 사랑이야

깨깨는 빼빼가

by 도라해


*



깨깨는

새파란 천을 어깨에 둘러메고

집을 나서는 일을 합니다



발을 떼어

한 발짝씩 문턱을 넘어서서 걷다 보면

천은 점점 길어져 무게가 실려요


살랑살랑 쫓아오는 것이야


미처 둘러지지 못한 것들은

붙잡아야만 해요


느린 걸음의 이유는

살랑거릴 사랑이야



*



뜨겁게 달아올랐다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식어가는 아스팔트 위에

언덕이 솟아나요


높은 꼭대기를 만들기 위해

빼빼가 그 위에 서야 했지요


터진 입술 위에

보라색 립스틱을 발라서

마른 각질들이 부드득부드득

예쁘게 만들어주세요


차게 얼어버린

아스팔트 틈으로 부드득부드득

빼빼의 부러진 손가락은

자꾸만 그 사이를 헤맸어요


까맣게 벌어진 사이에

꽃이 피어나야만 했을까요



*



언덕 아래에 선 깨깨는

보이지 않는 꼭대기를

끝없이 눈으로 좇아,

올랐어요


새파란 천은

틈을 메우느라

모두 써버렸지요

빼빼의 손가락은

갈 곳을 잃고

허공을 휘적거리다가

깨깨의 빈 어깨와 만났습니다



*



꽃은 남은 틈을 노랗게 노란,

파란 것 까만 것 틈에 핀


무게를 잃고

공중으로 떠오르는 깨깨의 몸은

뿌리가 썩은 앞니를 드러낸 빼빼의 웃음으로

잡을 수 있을 거예요

유일한 그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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