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은 기억도 못하면서 다시 만나길 기다리는 이유

횡단보도 게임

by 도라해


오빠와 내가 사는 집은 작은 도로 앞에 일렬로 지어진 차가운 건물들 중 하나였다. 우리가 사는 상가건물 위 옥탑 방문을 열면, 짧은 나의 다리로 내려가기에는 가파른 계단이 나왔다. 이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5살 많은 오빠와 손을 잡았다. 오빠에게 나를 싣고 안전하게 계단을 모두 내려오면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좁은 인도가 보였다. 그 뒤로 좁은 도로가 나타났다.


우리 집 앞 도로에 그려진 하얀 페인트 줄 3개. 사람들은 그곳을 횡단보도라고 불렀지만 우리들에게 그곳은 놀이터이자 우리들의 자리였다.


빵빵. 우리 집 앞 횡단보도를 지나서 구멍가게로 향하는 트럭 소리가 들리면 분홍색 내복을 입은 내가 먼저 일어났다.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오빠를 흔들어 깨웠다. 오빠는 내가 깨우면 항상 왜 깨웠냐는 식의 눈빛을 보내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오빠의 눈에 띄기 위해서 총총걸음으로 문을 향해 걸어가 짧은 다리로 문을 열기 위해 애썼다. 문을 반쯤 열었을 때 오빠는 천천히 일어나 겉옷을 챙겨 입혀 주었다.


밖으로 나갈 모든 준비는 끝났다. 우리는 사이좋게 두꺼운 잠바 아래로 내복을 입은 파란 다리와 분홍 다리를 내놓고 집을 나섰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갈 때까지 꼭 잡고 있던 오빠의 차가운 손을 횡단보도가 보이면 곧장 놓아버렸다. 오빠보다 먼저 횡단보도를 건너가기 위해 뛰어갔다.


검고 딱딱한 아스팔트를 밟지 않으면서 하얀 줄만 밟고 먼저 건너가는 사람이 이기는 놀이를 시작했다. 이 놀이는 처음엔 오빠가 먼저 제안했지만 나중에는 집 밖을 나오면 내가 먼저 습관처럼 으레 시작하곤 했다. 언제나 처음엔 내가 오빠를 앞질러 달려갔다. 오빠는 천천히 걸어와 나보다 먼저 건너편에 도착했다. 나의 짧은 다리로 하얀 선만을 밟기 위해 두 다리를 동시에 들어서 점프하는 동안에 오빠는 두 다리를 교차로 사용하며 가볍게 횡단보도를 건너갔으니까.


오빠보다 짧은 다리로 지는 놀이를 계속했던 이유는 지든 이기든 상관없었다. 그곳을 건너가면 차가운 오빠의 손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 손을 잡고 걸어가면 오빠와 오랜 시간 놀 수 있는 놀이터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겐 그저 몇 번 건너가는 길이었지만 우리에겐 오랜 시간 함께 걸어간 우리들의 자리였다. 그렇기에 그곳을 수십 번, 수백 번을 걸어도 질리지 않았다.


당연히 존재하는 곳, 당연히 존재하는 사람, 당연한 것인 줄로만 알았기에 우리의 처음과 만남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오빠가 꼬불꼬불 돼지꼬리만큼이나 뒤틀린 골목길 어딘가의 할머니 집에서 살게 된 때부터 헤어짐을 알았다. 동시에 우리의 첫 만남은 기억도 못하면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고 기다렸다. 끝없이.


차가운 건물 안에 밤이 찾아오면 나는 항상 먼저 잠이 들었다. 오빠는 잠든 나를 지키며 우두커니 앉아 텔레비전을 보면서 엄마와 아빠를 기다렸다. 오빠가 사라지고 난 후부터는 내가 그 역할을 했다. 오빠는 잠든 나 때문에 형광등을 켜지 않고, 볼륨을 아주 작게 줄인 텔레비전으로 밤을 버텼다. 오빠와 달리 나는 형광등을 켜고 볼륨을 키운 텔레비전을 보며 그들을 기다렸다.


오빠가 사라진 밤부터 나와 그들은 별다른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서로 각자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는 날들이 반복 됐다. 그들에게 오빠 얘기를 꺼내며 울 수도 없었다. 오빠 얘기를 꺼낼 때마다 그들의 표정은 나의 감정과 너무도 닮았다는 걸 느꼈기에 오빠에 관한 많은 말들을 속으로 그만두었다.


오빠 집 앞에는 … 횡단보도가 없지? … 가파른 계단이 없지? … 시끄러운 트럭이 없지?


실은 무지 보고 싶지?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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