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의 이방인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우리 집은 유치원이었다. 언제나 엄마 품 안에는 많은 아이들이 안겨있었고, 나도 그중 하나였다.
7살 때까지는 엄마가 다정하게 안는 아이들을 질투했지만 내 나이 12살,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왜냐하면 저녁만 되면 엄마와 나는 항상 유치원 불을 같이 끄고 유치원 구석 창고 방에서 같이 자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의 많은 아이들과는 다른 엄마의 진짜 딸인 나만의 특별함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이들과 재밌게 놀아주었다. 가끔 시시할 때도 있었지만 나의 특별함을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아이들과 놀아주는 일이 엄마를 돕는 일이었다.
엄마가 우리가 생활하는 창고 안에 장롱에서 이불을 꺼내 피는 동안, 나는 엄마가 틀어놓은 작고 뚱뚱한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아이들이 있는 유치원에는 언제나 만화 캐릭터들이 나왔지만, 나만 남은 유치원에는 엄마가 좋아하는 드라마 인물들이 나왔다. 한동안 생각 없이 지켜보고 있는데 어느 틈에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그만 자자.”
나는 그 소리에 맞춰 엄마 옆에 꼭 붙어 누웠다. 그리고 땀이 말라가는 엄마의 시원한 머리칼을 손에 쥐고 잠이 들었다. 엄마의 머리칼을 꼭 붙잡고 있으면 매끈한 머릿결이 손가락 사이사이에 닿는 간지러운 기분이 내 몸을 포근하게 했다. 그 포근함은 잠결에 들리는 드라마 속 인물들이 싸우는 소리마저 달콤하게 했다.
오늘도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친구들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학교에만 가면 모든 것들이 너무 크고 낯설게 느껴졌을 뿐이었다. 학교가 끝나고 유치원으로 돌아왔다. 엄마와 아이들과 장난감이 있었다. 기분이 좋아져서 알록달록한 유치원 가방들 틈에 얼른 나의 베이지색 책가방을 끼워 넣었다. 호랑이 장난감을 들고 아이들 틈에 들어갔다.
“어흥, 호랑이가 돌아왔다.”
모여서 레고 블록을 만지던 아이들은 “꺅” 소리를 지르면서 도망 다녔다. 우리는 한참을 뛰어다니다가 폭신한 매트 위에 벌러덩 누웠다. 나의 발만 매트 밖으로 튀어나왔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서로서로 쳐다보며 누워있는데 앙칼진 아줌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애는 누구예요? 만날 올 때마다 있네. 처음엔 동생 데리러 오는 앤 줄 알았는데 아닌가 봐.”
나는 그 소리에 아줌마가 있는 쪽을 쳐다봤다. 아줌마와 엄마가 나란히 서서 내가 있는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엄마와 아줌마 사이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 엄마는 아줌마의 질문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하지만 곧 슬며시 웃다가 내가 들리지 않게 소곤소곤 짧게 대답했다. ‘저 애는 내 딸이에요.’라고 대답해 주었으리라고 찰나에 짐작해 보았다.
하지만 엄마의 대답을 듣고 난 후, 아줌마가 고개를 갸우뚱한 걸로 봐서 나의 기대와는 다른 대답을 한 것 같았다. 나는 갑자기 매트 위에 비쭉 나와 버린 나의 다리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나는 다리를 조용히 접어 매트 안으로 구겨 넣었다. 식어가던 얼굴이 다시 새빨개지는 것이 느껴졌다. 더 이상 그들이 있는 쪽을 바라볼 수 없었다. 구부린 나의 다리만을 한참 바라봤다. 그들이 계속 나의 다리와 나의 키를 쳐다보는 것만 같은 기분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고개를 숙이고 그들을 지나쳐 창고로 들어갔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저녁이 되기 전에 창고에 들어온 것은.
저녁이 아닌 창고는 작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만큼만 밝았다. 햇빛 때문에 먼지가 둥둥 떠다니는 것이 보였다. 먼지만을 가만 들여다보고 있자니 코가 간지러운 것 같고, 눈이 따가운 것처럼 느껴졌다. 눈을 비볐다. 눈에서 눈물이 나왔다. 코를 비볐다. 코에서 코딱지가 물에 불어 굴러다녔다.
창고를 채운 빛의 색깔이 점차 희미해져 갈 때, 창고 문이 무섭게 흔들렸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창고 문을 불규칙적으로 두드리고 있는 소리였다. 아이들이었다. 나는 벌름거리는 코와 빨개진 눈을 진정시키느라 한참을 문이 흔들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문을 벌컥 열고, ‘어흥 호랑이가 또 돌아왔다.’라고 소리치면 다시 아이들 틈에 아무렇지 않게 섞여 놀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문고리를 돌렸다. 내가 문을 여는 소리만을 듣고, 아이들은 크게 소리 지르며 도망갔다.
내가 어흥 소리치지도 않았는데 도망갔다. 호랑이 표정을 짓지도 않았는데 아이들은 발 빠르게 뛰어가고 있었다. 내가 호랑이가 되기도 전에 그들에게 나는 호랑이였다.
문을 활짝 열고 보니 소란스러워진 아이들을 끌고 엄마가 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엄마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다.
엄마는 내가 있는 창고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저녁에 이불이 있고, 드라마가 있는 창고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나는 그걸 너무 늦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