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두려워질 때

미치지 않기 위해서는 뻐꾸기시계가 필요하다

by 도라해

# 빈자리는 할머니가 채웠다


엄마가 사라진 뒤로 지하실 우리 집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매일 저녁 집에 와서 잠을 자던 아빠는 주말이면 가끔 얼굴을 비쳤다. 엄마의 빈자리는 갑자기 나타난 할머니가 채웠다. 아빠는 할머니를 알아보지 못하는 내게 말했다.


"아주 갓난아기 때 보고, 10년 이상 보지 못해서 그래."


할머니를 처음 봤을 때부터 할머니의 모든 것이 싫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집안에 발을 딛는 할머니의 몸에서 나는 퀴퀴하고 시큼한 냄새에 잠깐 숨을 참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할머니가 자연스럽게 안방에 가지 않고, 나의 방에 들어와서 짐을 풀면서부터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또 당연하게 안방에서 베개를 들고 와 나의 옆에 누워 코를 고는 할머니의 코와 입마저 신경 써야 했다.


할머니의 모든 것이 싫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할머니가 며칠 뒤 사온 뻐꾸기시계 덕뿐이었다. 뻐꾸기시계는 한 시간마다 온 집안이 떠나가라 규칙적으로 울렸고, 할머니는 그 틈을 비집고 규칙적으로 코를 골았다. 종종 입에서는 뻐꾸기시계에 버금가는 카악 커억컥컥 알 수 없는 큰 소리를 냈다. 이 둘은 저녁 시간에 내가 잘 수 있는 잠깐의 틈도 주지 않았다.


드르렁 드르렁 카악 커억컥컥 뻐꾹뻐꾹 드르렁드르렁 카악 커억컥컥컥 뻐꾹뻐꾹….



# 너희와 멀어졌지만 새로운 우리가 되었다


내가 사는 곳은 언제나 자식들이 결정했다. 영감이 죽고 오랫동안 딸아이 집에서 살았다. 딸아이의 결정으로 갑작스레 나는 아들네 집으로 옮겨졌다. 딸아이가 제 오빠와 전화통을 붙들고 종종 소리 지르는 모습을 본 터라 말없이 따랐다.


도착한 곳은 쾌쾌한 지하실 방이었다. 집 안의 불을 모두 환하게 켰지만 지하의 어둠이 느껴졌다. 그곳에는 14년 만에 보는 손녀 지영이가 서있었다. 우두커니 나를 맞는 손녀와 어둠이 동시에 가슴으로 밀려들어왔다. 무표정한 손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쓸려 벗겨진 장판 위를 지영이가 걸어 다니고 있었다. 나는 아이가 들어가는 방을 따라 들어갔다. 그곳에 짐을 풀고 아이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말이 없는 아이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 싶었다. 잘 지냈느냐고 묻기엔 14년의 시간은 너무 길었다.


‘오랜만이구나. 예뻐졌네. 학교는 어떠니.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


많은 말을 생각했지만 14년의 시간을 채우기에는 부족한 말들이었다. 내가 말을 건네지 못하고, 손녀가 나에게 말을 하지 않는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작은 시계가 돌아가는 희미한 소리만 집안을 채우고 있었다. 나의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작은 소리. 문득 나의 귀가 완전히 먹어버린 것은 아닐까 두려워졌다. 이 집에는 전화도 울리지 않는 것일까 원망스러워졌다. 그 핑계로 나는 누워서 핸드폰을 바라보는 지영이에게 처음으로 말을 건넸다.


“지영아! 여기는 전화기 없냐?”


지영이가 미간을 찌푸렸다. 나의 딸아이가 내가 말을 건넬 때마다 짓던 표정과 똑같았다. 그리고 이어지던 딸아이의 말이 떠올랐다.


‘엄마! 나 귀 안 먹었어!! 좀 조용히 말해요!’


아이에게 미안해졌다. 내 목소리가 또 컸구나. 아이는 말없이 번호가 흐릿하게 보이는 제 핸드폰을 건넸다. 아이 손에 올려진 핸드폰 속에 숫자들을 속으로 세다가 식은땀이 났다. 나도 모르게 아이 손을 거칠게 밀쳐내고 있었다.


# 미치지 않기 위해서는 뻐꾸기시계가 필요하다


소리 없는 이 집에서 계속 살다가는 미쳐버릴 것이 분명했다. 특히 아이가 학교를 나가고 혼자 남은 집에 소리가 없으면 문득문득 두려움이 밀려왔다. 나의 무서움 때문에 그때만큼은 아이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렵게 큰 소리가 나는 뻐꾸기시계를 구하고,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그 소리에 하루하루 안심하기 바빴다.


평소처럼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창밖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신발을 쳐다보았다. 손녀의 회색 신발이 보였고 현관문을 열었다. 손녀는 불을 끄기 전까지는 평소와 같았다. 누워서 하루 종일 핸드폰을 들여다보았으니까. 같이 있으면서도 한 마디 말도 없는 아이라 그 모습에 익숙해져 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하는 손녀 곁에 불을 끄고 누웠고, 손녀의 등이 보였다. 손녀의 등을 보고 눈을 감으려는 찰나에 손녀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할머니! 너무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겠어요!”


아이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내 귀가 아플 정도로 큰 목소리였다. 나의 가슴이 작게 콩캉콩캉 뛰었다. 아이의 눈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나는 아이를 가슴에 품었다. 아이의 눈물을 전부 나의 가슴께 옷으로 흡수할 때까지 가만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뻐꾸기의 건전지를 빼버렸다. 이제 시계와 관계 맺는 일은 그만두기로 했다. 나만큼 이 어둠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하나 더 있었음을 알았으니. 안방으로 가지 않고 시끄러운 내 옆에 가만히 누워 있던 아이, 지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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