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일 뿐일지라도, 따뜻한 구석을 내어주고 싶었다
[분량]
- 1분
[표현방식]
- 대사 없이 시각적인 이미지와 장면으로 구현
- 장면 + 음악 + 효과음
[작의]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죽으면 각자가 홀로 관속에 들어간다. 하지만 현생에서 유독 춥고 쓸쓸한 시간을 살아내야 했던 사람이라면, 적어도 이 현생의 마지막 순간만큼은 춥지 않기를 바랐다. 찰나일 뿐일지라도, 따뜻한 구석을 내어주고 싶었다.
[기획의도]
혼자 남아 버린, 홀로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유독 겨울을 춥고 길게 지나가야 하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
그들 중 한 남자를 떠올렸다.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가지 않아도 어느 누구도 찾지 않는 남자.
그가 오늘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남자.
추운 겨울의 새벽,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골목에 남자가 홀로 쓰러지게 된다면?
그는 과연 살 수 있을까?
모두가 남자의 죽음을 예상할 것이다. 적어도 눈이 달린 거대한 솜덩이가 남자 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 예상이 유효하다. 아직까지 세상에는 희망이 남아 있다고 믿고 싶기에 이를 남자와 솜덩이의 만남에서부터 찾아내려 한다.
[인물]
- 남자 (90세)
고요하고 차분하다. 왜소한 체격, 더위나 추위에 무감각하다. 본인의 상태를 자각하고 돌보는 것이 서툴다. 결국 제대로 외투를 챙겨 입지 않고 외출을 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쓰러지고 만다.
- 솜덩이 (만세)
추운 겨울, 남자가 죽어가는 순간에 흘린 눈물로 인해 생겨난다. 거대하고 따뜻하다. 남자가 필요로 하는 적절한 온도로 존재한다. 남자에게 붙어서 온기를 전해줄수록 거대한 몸집의 크기가 점차 줄어든다. 남자에게 모든 온기를 주고 사라지는 순간, 세상에는 봄이 왔다.
[시나리오]
#1 남자의 집 (늦은 저녁)
초록색 페인트가 반쯤 벗겨진 대문이 열리고 낡은 주택의 지하 방문이 열린다. 멍하니 방바닥에 앉아있던 남자가 일어나 옷장을 연다. 텅텅 빈 옷장에 얇은 외투 하나를 입고 집을 나선다.
#2 도시 + 대형마트 앞 (늦은 저녁)
고층 빌딩이 즐비한 도시 거리, 남자가 몸을 부르르 떨다가 팔짱을 끼고 몸을 움츠린 상태로 걷는다. 곳곳에 쌓인 눈 때문에 위태롭게 휘청거리다가 결국 넘어진다. 사람들이 길을 막아 번거로운 듯 무심한 눈길로 남자를 지나쳐 간다. 남자는 땅을 짚고 천천히 일어난다. 화기애애하게 대형마트 입구를 들어가는 사람들 틈에 남자는 고요히 홀로 들어간다.
#3 도시 + 시장 골목 (늦은 저녁~새벽)
남자는 검은색 비닐봉지를 들고 가로등 불빛으로 환한 빌딩 숲 사이를 걷다가 불이 꺼진 시장 골목 안으로 들어선다. 듬성듬성 켜져 있던 장식 전 구도 하나 둘 꺼지더니 완전히 암흑이 된다. 익숙한 듯 시장 안쪽 깊숙한 골목으로 들어서자 골목을 따라 가파른 돌계단이 나타난다. 천천히 뒷짐을 지고 걷다가 발을 헛디딘다. 넘어지지 않으려 팔을 뻗어 중심을 잡다가 들고 있던 봉투를 놓친다. 귤과 크림빵이 계단 아래로 빠르게 굴러 내려간다. 코 앞에 떨어진 것을 몇 개 줍다가 계단에 주저앉는다. 멍하니 계단 아래를 본다. 추워 몸이 떨린다. 웅크리고 앉아 두 다리를 감싸 안는다. 몸에 힘이 풀려 계단 옆에 몸을 기댄다. 하얀 눈이 내려 남자의 머리와 몸에 눈이 조금 쌓였을 즈음, 눈물이 흐른다. 눈물이 지나간 자리에 자국이 난다. 완전히 힘이 풀려 계단 아래로 떨어지려는 순간, 거대한 솜덩이가 남자를 뒤에서 감싸 안는다.
#4 골목 (새벽)
혈색이 없던 남자의 얼굴에 붉은 혈색이 돌기 시작한다. 천천히 다시 눈을 뜨는 남자. 온기에 놀라 뒤를 돌아본다. 솜덩이와 남자가 눈이 맞는다. 따뜻한 눈으로 남자를 보며 좀 더 끌어안는다. 남자가 잠시 놀라지만, 이내 따뜻한 눈빛과 포옹에 녹아 편안한 얼굴이 된다. 몸을 돌려 솜덩이를 함께 안는다.
#5 집 대문 + 골목 (겨울~봄)
남자가 초록색 대문을 열어 나오고 들어가는 여러 날이 반복된다. 언제나 남자의 몸에 붙어 있는 솜덩이. 남자의 얼굴이 환하다. 하지만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점차 줄어드는 솜덩이의 크기.
C.U.
대문에 쌓인 눈이 점차 녹아가는 모습.
CUT TO.
대문에 쌓여있는 눈이 완전히 녹았을 때, 솜덩이의 크기가 손톱만해져서 남자의 어깨에 붙어있다. 문을 열고 나와 어깨 위에 솜덩이를 걱정 어린 눈으로 빤히 본다. 걱정하지 말라는 듯 푸근하게 웃는 솜덩이. 옅은 바람이 불어 남자의 머리칼이 휘날리자 솜덩이가 완전히 사라진다. 남자는 놀라 주변을 둘러본다. 눈물이 고인다. 고인 눈물이 차올라 뚝뚝 떨어질 때 남자의 소매에 꽃씨 하나가 달라붙는다. 골목 곳곳에 색색의 들꽃들이 피어있다.
C.U.
남자의 눈동자에 꽃씨가 담겨있다. 따뜻한 해가 들자 투명해진 꽃씨가 솜덩이와 겹쳐 보인다.
F.O.
남자가 차분히 걷는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