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공철을 사용하는 독일인들의 습관, 기억을 저축하는 방법
어린이집에 등록할 때 받은 서류에는 준비해야 할 물건들의 품목이 적혀 있었다. 사진, 칫솔, 운동복, 갈아입을 옷, 비옷 등은 당연히 필요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의외의 물건이 있어 눈길이 멈췄다.
그것은 A3 크기의 서류철과 ‘5cm 두께에 측면에 표시판이 달려 있는’ A4 크기의 색깔 있는 서류철이었다(이렇게 구체적으로 품목을 지정해 주는 것도 놀라웠다). 전자는 보통의 스케치북 크기로 양쪽 귀퉁이에 달려 있는 고무줄을 이용해 여닫는 형태였는데,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보관하기 위한 용도였다. 후자는 둥그런 모양의 집게 3개 사이에 구멍이 뚫려 있는 비닐 속지를 끼워서 만든 서류철로 이것이 바로 삼공철이다. - 사실 삼공철이라는 명칭은 국어사전에 등록된 것은 아닌 듯하고 ‘3공 바인더’라는 이름으로 거래가 되긴 하지만, 여기서는 삼공철이라고 부르겠다.
독일에 와서 처음 살았던 집에는 삼공철이 수십 개 있었다. 집주인 가족은 1년 동안 남프랑스에 살게 되면서 우리에게 집을 임대한 후 대부분의 물건을 그대로 놔두고 떠났다. 삼공철 수십 개라는 것이 정확히 세어 본 것은 아니지만, 침실 한쪽 벽에 있는 폭 3m의 책꽂이 아래 칸을 완전히 채웠고, 천장의 한쪽 모서리 둘레에 못을 박아 설치한 받침대 위에도 삼공철이 늘어서 있었다. 실제로 세어 봤으면 100개가 넘었을 수도 있다.
이러한 삼공철들 측면의 글씨를 적을 수 있는 부분(표시판?)에는 간단한 제목이 적혀 있었다. 주로 학업이나 시험에 관한 것들이었지만, 여행지 혹은 취미와 관련된 사진과 자료를 모아 놓은 것들을 비롯해 각양각색이었다. 삼공철만 보아도 그들의 관심사와 인생 경로를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한국에 있을 때 간혹 삼공철을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벽면을 가득 채운 삼공철을 본 적은 없었다. 누군가 삼공철을 사용한다고 해도 학업의 용도로 기껏해야 5-6개 정도였을 뿐이었다. 그들이 어떻게 해서 이렇게 많은 삼공철을 만들고 보관하게 되었을까 궁금했다.
나이 많은 어학원 선생님의 얘기에서 한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어학원에서 나눠준 자료를 덜렁덜렁 들고 다니는 나를 볼 때마다 그 선생님이 말했다.
“삼공철을 쓰세요. 그렇게 들고 다니면 정리가 안 됩니다.”
그 선생님은 또한, 몇 번을 강조해서 말했다.
“독일인들 삶의 절반은 정리, 정돈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내가 만나보거나 접해 온 독일인들이 정리, 정돈에 각별한 신경을 쓴 건 사실이다. 오죽 하면 독일인들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의미로 일상 생활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말 중에 "Alles in Ordnung(모든 것이 질서정연하다. 즉 정리되어 있다)."는 말이 있겠는가? 집안이나 정원을 가꾸는 것뿐만 아니라 각종 서류와 사진과 책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것이 그들 삶의 막대한 부분을 차지했다. 독일 가정집의 다용도실에는 집안을 수리하거나 화초를 가꾸는 데 필요한, 나로서는 이름도 알 수 없는 다양하고 많은 도구들이 구비되어 있다. 정리, 정돈에 철저한 독일인들의 모습을 대표하는 물건 중 하나가 삼공철인 것 같다.
또 다른 단서는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찾을 수 있었다. 아이의 입학 준비물 중에 역시 삼공철이 들어 있었는데, 학기가 시작되고 보니 아이는 학교에서 공부한 것과 그날의 숙제를 삼공철에 차곡차곡 채워 나갔다.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삼공철을 습관적,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학창시절 내내 삼공철을 사용하는 데 길들여진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도 삼공철에 집착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
실례를 무릅쓰고 집주인들의 삼공철 중 하나를 잠시 펼쳐보았다. 그들 부부 중 아내의 것이었다. 그녀는 김나지움의 프랑스어 선생님이었는데, 2005년 무렵 파리에 있었던 것 같다. 그 안에는 사진들과 간단한 메모들,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은 것으로 보이는 편지들과 그녀가 쓴 길고 짧은 글들이 들어 있었다. 그곳에는 그녀의 2005년 파리에서의 기억들이 담겨 있었다.
2005년의 그녀를 보면서, 벽면을 가득 채운 한 해 한해의 기록들을 보면서 그녀가 과거의 그 시간들을 소중히 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한 시간들이 그녀의 현재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 그녀가 그 기록들을 언제든지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보관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 지금의 삶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기록들은 그녀가 쌓아온 기억의 폭과 깊이를 보여주었다. 하루하루의 기억들은 초라하고 보잘것없을지 몰라도 그러한 기억들이 쌓이면 현재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 된다.
독일인들처럼 삼공철을 사용해야 된다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삼공철이 아니라도 어떠한 방법으로든 삶의 기억을 의식적으로 쌓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기억을 정리하고 저축함으로써 현재를 더욱 충만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충만했던 시절은 아마도 가장 많은 기억들로 채워져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억을 쌓아가는 것이야말로 삶을 충만하게 할 것임이 분명하다. 그렇게 쌓인 기억들은 어려운 순간에도 우리를 살아가게 해 준다.
황현산 선생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음속에 기억을 쌓아”, “현재의 폭을 두껍게 만드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기억이 없는 삶은 서글프다. “그날의 기억밖에 없는 삶은 그날 벌어 그날 먹는 삶보다 더 슬프다”(2013, 밤이 선생이다).
10개월 뒤 이사를 가면서 아이들의 어린이집을 옮기게 되었다. 어린이집을 마지막으로 간 날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삼공철을 하나씩 건네주었다. 입학할 때 가져갔던 삼공철을 돌려준 것이었는데, 입학 때와 다르게 삼공철 안의 속지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런 것을 받으리라 생각하지 못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삼공철을 펼치고 한 장씩 넘기다 깜작 놀랐다.
첫 장은 입학하는 아이들에 대한 환영인사, 두 번째 장은 아이들의 손바닥 도장과 인상착의, 좋아하는 것들, 세 번째 장부터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들, 그다음에는 어린이집에서의 모습을 찍은 사진들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놀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뿐만 아니라 땅바닥의 개미를 유심히 바라보는 모습까지도 포함하였고, 옆이나 아래위의 여백에는 사진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뒷부분에는 어린이집에서 배웠던 노래들과 열 장이 넘는 분량의 발달상황 평가서(청력, 언어능력, 사회성, 감성 등 여러 가지 문항에 대한 사지선다형 평가와 필요한 경우 설명을 덧붙였다)가 첨부되어 있었다.
부모로서는 알 수 없는,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생활하는 모습의 면면을 볼 수 있어서 놀라웠을 뿐만 아니라 선생님들이 일일이 설명을 곁들인 종이를 출력해서 거기에 사진을 붙여가며 만들었다는 것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마움과 감동을 느꼈다.
마침내 아이들이 선생님들 한 명 한 명(독일 어린이집은 나이별로 반을 나누지 않고 한 반에 15명-20명 정도이며, 3-4명의 선생님이 함께 아이들을 돌본다)과 포옹하며 인사를 나눌 때 선생님들의 대부분은 눈시울을 붉혔고 실제로 눈물을 흘렸다. 아이들에 대한 격려와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10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그렇게 정이 들었던 것일까.
아마도 그 눈물은 그들이 그동안 아이들을 보살피고 관찰하면서 공들여 만들어 온 삼공철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속지들을 차곡차곡 채우면서 아이들에 대해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생각했을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에 대한 기억이 두텁게 쌓여 있음이 틀림없다. 그 덕분에 우리 역시 더 많은 기억을 저축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의 삶 역시 기억들을 저축하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