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즐겨찾기 Mar 12. 2020

왜 하나를 보고 열을 알지 못할까

하나를 보고 하나를 제대로 알기도 어렵다.

어느 날 한국인과 결혼한 일본인 엄마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아이와 같은독일 초등학교(Grundschule)에 다니는 딸을 둔 사람이었는데, 한국말을 꽤 잘했다.  


“담임선생님 때문에 속상해 죽겠어요. 우리 애가 독일에 온 지 1년도 안 돼서 독일말도 잘 못하는데, 선생님이 준비물이나 숙제가 뭔지 잘 얘기해 주지 않아요.”  


“그래요? 이메일로 보내주지 않나요?”  


“아니요. 전혀요. 이메일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이상하네요. 저희 아이 반 담임선생님은 그때그때 이메일을 보내주는데...”  


“그래서 저는 다른 엄마들한테 물어봐야 해요. 그 뿐만이 아니에요. 선생님이 아이를 차별하는 것 같아요.”    

첫째의 담임선생님은 내가 겪었던 우리나라 선생님들과 달랐다. 일본인 엄마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나는 독일 선생님들이 모두 그런 줄 알았다.   

본문과 무관한 사진입니다만, 독일 선생님들이 엄격한 건 사실입니다

 독일 여군 같은 이미지의 담임선생님은 매주 금요일이면 일주일 동안 배운 내용을 정리해서 학부모들에게 이메일로 보내주었고, 알려야 하는 사항이 있을 때마다 이메일로 소통했다. 학부모들은 학급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들과 앞으로의 계획을 알 수 있었다.    

 

 독일에서는 학부모가 담임선생님을 개인적으로 접촉하기 어렵다. 선생님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연락을 할 수가 없고, 해서도 안 된다. 혹여 아이가 아파서 결석하는 경우에도 총괄 비서에게 전화해야 한다. 하지만 첫째의 담임선생님 덕분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아이의 선생님은 동양인, 혹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아이를 차별하지도 않았다. 다른 아이들과 동등하게 대해줄 뿐만 아니라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입학할 때만 해도 독일어가 미숙하던 아이였지만 담임선생님 덕분에 문제없이 학교생활을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내와 나는 독일 선생님들은 정말 훌륭하다는 얘기를 했다. 우리는 독일 선생님들이 모두 그럴 것이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일본인 엄마의 얘기에 따르면 첫째의 담임선생님이 극히 예외적인 경우로 학교에서 제일 좋은 선생님으로 손꼽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모든 독일 선생님들이 그럴 것이라는 생각은 완전한 오류였다. 한 사람만 보고 전체를 판단할 수는 없는 법이다.  


 11월 초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여행을 갔다. 겨울이 시작되는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하루 종일 비 내리는 날씨가 계속 되었다. 장마처럼 굵게 쏟아지는 비는 아니지만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하염없이 이어졌다.  


 어느 날 거리를 지나는데 비가 내리는 중에도 건물 공사가 한창이었다.

본문과 무관한 사진입니다

 내가 걸어가는 앞쪽에서 인부 두 명이 회색 벽돌을 옮기고 있었다. 벽돌은 30장 정도가 2층으로 쌓여 있었는데, 얼핏 보기에도 아주 무거워보였다.  


 그들은 벽돌이 쌓인 판자를 지게차 앞쪽에 두 갈래로 뻗은 포크처럼 생긴 부분에 올리려고 했다. 판자를 땅에 댄 채 한 사람은 앞쪽에서 당기고 다른 사람은 뒤쪽에서 밀었다. 하지만 벽돌이 무거운데다 잘못하면 떨어뜨릴 수도 있기 때문에 위에 올리기 쉽지 않아 보였다.   


 기계를 이용해 벽돌을 옮기거나, 얇은 판자 대신에 지게차로 들어 올릴 수 있는 파레트를 썼다면 쉽게 해결될 일이었는데 괜한 헛힘만 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내와 나는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독일이면 기계를 써서 금방 했을 텐데, 저렇게 힘들고 옮기고 있네. 저걸 언제 다 옮겨? 아니, 힘들어서 옮길 수나 있을까?”  


“그러게. 러시아 사람들은 참 비효율적으로 일하는구나. 이러니까 노동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    

 

그날 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러시아 인부 두 명이 일하는 것만 보고 러시아 근로자들의 생산성이 떨어진다고는 할 수 없지 않을까.’  


독일의 모든 담임선생님이 첫째 아이의 선생님과 같으리라 생각한 것에 대한 반성이었다. 실제 통계자료를 본다면 러시아가 독일보다 생산성이 떨어지기야 하겠지만, 한 가지만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것은 틀릴 확률이 높다. 다른 대부분의 러시아 공사 현장에서는 기계를 사용해서 일할 것이다. 


한국 나이로 3학년에 올라가는 첫째에게 시간과 거리의 개념을 가르쳤다.   

 <1. 어떤 사람이 1시간에 5km를 걷는다면 5시간 동안 몇 km를 갈 수 있는가>는 문제를 풀었다.    


내 설명을 들은 아이는 이해하는 듯 보였고, 문제를 쉽게 풀었다.   

A와 B는 몇 시간 후 어디에서 만날까요?

 어려움은 다음 단계부터였다.


 <2. 어떤 사람이 2시간에 10km를 간다면 5시간 동안 몇 km를 갈 수 있는가>

 <3. 어떤 사람이 10분에 1km를 간다면 5시간 동안 몇 km를 갈 수 있는가>

 <4. 어떤 나비가 1초에 5cm를 날아간다면 2분 30초 동안 몇 m를 날아가는가>  


 아이는 이런 문제들을 전혀 풀지 못했다. 1번 문제가나머지 문제들과 다른 것은 사실이지만, 기본 원리는 같다.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문제를 풀지 못하는 아이가 답답했다. 아이에게 "이건 똑 같은 문제나 마찬가지야. 잘 생각해봐."라고 아무리 말해봤자, 나만 더 힘들어졌다.  


 최근에 치과에 갔다. 의사선생님은 치아가 많이 썩었다면서 앞니가 조밀하게 붙어 있으니 치실을 반드시 사용하라고 말했다.  


 몇 년 동안 치과에 갈 때마다 치실을 사용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최소한 열 번쯤은 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때마다 흘려들었고 치아 상태는 점점 나빠졌다. 열 번을 가르쳐줘도몰랐던 것이다.

제 사진이 아닙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다. 나는 지금까지 이 말을 믿어 왔다. 마찬가지로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하나를 보면 열이 아니라 하나만 알면 된다. 하나를 배우면 그것만 알아도 충분하다.  

 

 그런데 실상은하나를 봐도제대로 보지보거나, 하나를 배운다 해도 그 한 가지조차 제대로 알기 어렵다. 기존의 고정관념과 편견, 습관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하고, 같은 내용을 열 번은 반복해야 비로소 이해를 하고 행동이 바뀐다. 기존의 사고체계 혹은 신념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정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아이는 오늘 또 다시 1번 유형의 문제를 푼다. 어제 배웠던 것이지만 다시 가르쳐 줘야 한다.시간과 거리처럼 아이들에게 생소한 개념은세네 번을 반복해도 잘 모른다. 이해하는 것 같아도주말만 지나면 잊어버린다.가르치고 잊어버리는과정을 몇 번 반복하면 이제 1번 문제는 풀 수 있게 된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2번유형의 문제 역시 그런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새로운 정보와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만큼 힘들다.


 반복적으로 학습해야지만 아이가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 역시 반복되는 경험을 통해알게 되었다.처음 겪었을 때는 어제 가르쳐 준 걸 오늘 잊어버리는 상황이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다.솔직한 심정으로 조금 지능이 부족한 게 아닐까 생각했을 정도였다.이제는 그것이 너무 당연하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나도 반복되는 학습을 통해 배운다. 이제야 비로소 하루에 한 번씩 치실을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친구들의 장난감을 갈취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