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묘미는 우리가 모르고 있던 사실을 발견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독일에 온 직후 지인의 가족과 함께 자동차 여행을 가게 되었다. 한국에 있을 때 다른 가족들과 하루 이틀 동행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다른 가족과 일주일을 함께 여행하는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8월의 해질 무렵, 타는 듯한 열기가 남은 프랑크푸르트의 중앙역 광장에서 우리는 반가움의 인사를 나눴다. 가벼운 의논 끝에 가까운 곳에 있는 이탈리아 음식점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우연히 들른 곳임에도 기대를 뛰어넘는 맛에 기분이 즐거워졌다. 하지만 그 사람(남자일 수도 있고 여자일 수도 있다. 사실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은 음식에 거의 손대지 않았다.
향기 좋은 와인도 딱 한 모금만 마실 뿐이었다. 나는 의아했지만 오랜 비행을 마친 다음 날이라 입맛이 별로인가 보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여행이 미세하게 어긋나기 시작한 것은 다음 날 저녁이었다. 낮에는 가족끼리 따로 떨어져서 프랑크푸르트 시내 관광을 다녔다. 뒤셀도르프에 도착한 후 저녁식사를 위해 다시 모였다.
나와 아내는 독일 가정식이나 전통 음식을 먹고 싶다고 얘기했다. 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우리의 의견에 내키지 않아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에게 어떤 종류의 음식이 먹고 싶냐고 물었더니, 자신은 아무거나 괜찮다는 애매한 대답만 돌아왔다. 아무래도 그의 의중을 알 수 없었다.
그의 배우자가 말했다.
"한식을 먹으러 가는 게 어때요? 여행을 시작한 이후 쌀밥을 제대로 못 먹었거든요."
나와 아내는 여행지에서 한식을 먹는 것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지만, 우리의 뜻을 고집할 수만은 없었기에 그 제안에 응했다.
우리는 시내에 있는 한국식당으로 가서 비빔밥과 비빔국수, 불고기를 먹었다. 하지만 그 사람의 표정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비빔밥과 비빔국수는 거의 손대지 않고 불고기만 깨작거렸다.
그에게 음식이 입에 맞지 않냐고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아니에요. 속이 조금 안 좋아서요. 음식이 좀 맵네요."
나중에 알고 보니 한식을 먹으러 가길 원했던 사람은 배우자가 아니라 그 사람이었고, 그는 매운 음식은 잘 못 먹는다고 했다.
그 후에도 우리의 여행은 조금씩 계속해서 어긋났다. 서로 감정이 상할 만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작은 부분에서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그 사람은 여행지를 걸어서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걷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지만 햇빛이 너무 뜨겁고 날씨가 덥다고 불평했다), 이국에서의 새로운 음식을 먹는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식사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곁들이는 가벼운 반주도 하지 않았고, 여행지의 문화에 대해 말하는 경우도 없었다.
그의 대화 주제는 한정적이었고, 그 마저도 "도시들이 다 비슷하다."거나 "한국이 더 낫다."와 같은 부정적인 한 두 마디에 그칠 뿐이었다.
그 사람은 관광명소의 사진을 열심히 찍었으며, 중심가에 있는 백화점과 도시 외곽에 있는 아웃렛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그 사람이 무엇을 위하여 머나먼 유럽까지 와서 힘들게 자동차 여행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 사람에게 여행은 무엇이고 여행을 통해 얻으려는 것은 어떤 것이었을까. 솔직히 말하면, 그 사람이 여행 온 이유를 알 것 같았지만,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면 내가 추구하는 여행의 즐거움과 묘미는 점점 사그라들었다. 여행을 마치면서 나와 아내는 다른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은 당분간 하지 않기로 입을 모았다.
그 사람의 여행 스타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 여행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고, 자신이 추구하는 여행의 목적에 최선을 다했다.
다만 나와는 여행 스타일이 달랐고, 내가 그 사람의 방식을 완전히 수용하기는 어려웠다. 그 사람에게 맞추려고 노력했지만 내키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쩌면 우리는 각자의 스타일을 포기할 수 없을 정도로 취향이나 기호가 굳은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와의 동행에 불편함을 느꼈지만, 그는 나와의 동행에 불편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아마도 내가 불편함을 느꼈다거나 그에게 맞추려 노력했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 사람의 그와 같은 비감수성과 무신경함이 불편하게 느껴졌나보다.
그 사람과의 여행 전까지는, 여행이나 인생에 있어서의 ‘동반자’라는 말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잘 맞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환상이고, 서로 의논하고 조금씩 양보하면서 맞춰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어느 누구와 여행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평균적인 즐거움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어느 누구를 만나더라도 맞춰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사람과의 여행을 통해서 여행을 함께 다닐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내와 함께 그 많은 여행을 다녔던 것은 그녀가 연인이었고 배우자여서가 아니다. 그녀가 같이 여행을 즐겁게 다닐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중학교 동창인 S군과 친한 친구이기 때문에 학창 시절 매년 여행을 다닌 것이 아니다. 여행을 함께 다닐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친한 친구가 된 것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평소에는 보기 어렵거나 감춰 온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다. 긴 기간이 아니라도 일상을 벗어난 곳에서 생활을 하다 보면 서로 잘 맞는지, 잘 맞지 않아도 맞출 수 있는지, 아니면 잘 맞지도 않고 맞출 수도 없는지 알 수 있고, 아마도 그것이 그 관계의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
함께 즐겁게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사람과는 인생을 함께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사람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여행의 묘미 중 하나이다.
뮌헨에서 그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밤베르크라는 곳에서 이틀을 지냈다. 원래 계획에는 없던 일정이었지만 이틀이라도 우리만의 여행을 즐기고 싶어서 내린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밤베르크는 뉘른베르크 근처에 있는 소도시이다. 이른바 로맨틱 가도에 있는 도시들 중 하나다. 관광객들이 반드시 찾는 곳은 아니지만 큰 기대 없이 이틀을 쉬어간다는 마음으로 들렀다.
늦은 저녁 입성하게 된 밤베르크는 조용했고 이렇다 할 특색이 없었다.
하지만 다음 날 도심을 돌아다니면서 그 도시만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밤베르크는 1000년 전 과거에 번성했던 도시로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구도심의 입구에 있는 시청사는 폭이 좁은 강 위에 지어졌다. 외벽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어 독특한 인상을 주었다. 산 자락에 만들어진 도심은 중세 분위기의 아기자기한 목조 건물들과 골목길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를 더욱 매료시킨 것은 도시를 관통하고 있는 강과 그 주변의 산책로였다. 도시 중심에 있어 접근성이 좋은 그 강변과 산책로는 여유와 즐거움이 공존했다. 밤베르크에 숨을 불어넣어 주는 허파 같은 장소였다. 강변의 놀이터에 앉아 아이들이 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그곳에 계속 머물고 싶었다.
한 가지 더 있다. 도심에 가는 길에 우연히 들른 제과점의 프레첼이 그것이다. 다른 제과류와 함께 구입한 하트 모양의 그 빵은 내가 지금까지 그 진정한 맛을 –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는 건지 몰랐다 – 모르고 있었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밤베르크에서 우연히 발견한 프레첼에서 나는 여행의 작은 묘미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여행의 묘미는 우리가 모르고 있던 사실을 발견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지금까지 몰랐던 자신의 모습이나 가까운 사람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다. 미처 느끼지 못했던 음식의 맛이나 아름다움에 대해서 깨닫게 된다.
짧은 독일 유람에서 나는 아내와 내가 함께 여행할 수 있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그런 깨달음은 우리의 관계를 더욱 두텁게 해주었다.
이번 여행을 통햐 밤베르크라는 매력적인 도시를 발견했다. 어디론가 여행할 때마다 한 가지씩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다면 우리 삶은 점점 더 풍성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