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즐겨찾기 Apr 08. 2019

영화 같은 여행을 꿈꾼다면 - 생 트로페만의 가생

남프랑스 푸른 해안의 생 트로페 만과 가생에서의 여행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순전히 여행 장소에 관한 것이다. 여기는 정말 꿈만 같은 곳이었어, 라고 말하고 싶은 여행지다. 하지만 부가적인 설명과 정보를 더해도 좋을 것 같다.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장소이고, 앞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남프랑스의 해안을 따라 여행하는 것만으로도 꿈같은 일이다. 어느 곳을 가도 풍요로움과 낭만과 여유로움이 가득하다. 그중에서도 오늘 소개할 곳은 생 트로페(Saint Tropez) 만과 그 근처에 있는 가생(Gassin, 정확한 프랑스 발음이 가상, 가싱, 가생 중 어느 것에 가까운지 모르겠으나, 위키피디아의 표기에 따라 ‘가생’이라고 하겠다)이라는 정말 작은 마을이다.      

표시된 부분이 생 트로페 만이다.

 남프랑스의 툴롱(Toulon)에서 칸느와 니스를 지나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경계에 있는 망통(Menton)까지 이르는 해안을 프렌치 리비에라(the French Riviera, 프랑스 피한지) 혹은 코트다쥐르(Côte d'Azur, ‘푸른 해안’이라는 의미)라고 부른다. ‘피한지’라는 말은 과거 이곳이 추위를 피하기 위한 겨울 휴양지였기 때문인데, 최근에는 여름 휴양지로 더 유명하다.      


 이 푸른 해안의 도시들은 1864년 니스에 기찻길이 놓이면서부터 부호와 유명인들의 휴양지가 되었다. 모네, 뭉크, 르누아르와 피카소 같은 화가뿐만 아니라 여러 왕족들이 이 지역을 찾았고, 세계 1차 대전이 끝난 이후 미국인들도 이곳을 찾기 시작했다. 스콧 피츠제럴드 같은 미국 작가들 역시 남프랑스의 해안에서 여름을 보냈고, 1946년 시작된 칸느 영화제 이후에는 할리우드 스타들과 팝 스타들도 이 지역을 찾기 시작했다.      


 우리가 원래 가려고 했던 곳은 생 트로페였다. 이곳은 니스에서 남서쪽으로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데, 그 앞바다는 움푹 파여 있는 형태로 그 부근 일대를 생 트로페 만이라고 부른다. 생 트로페는 프랑스의 영화배우 브리짓 바르도가 주연한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가 촬영된 장소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한 어촌 마을에서 최고급 휴양지로 변모했다. 저명인사들과 스타들의 최고급 요트가 정박되어 있는 지중해의 작은 휴양지, 이것이 생 트로페의 이미지이다. 해변의 작은 카페에서 디카프리오와 잭 니콜슨이 이야기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고급 휴양지답게 숙박비가 만만치 않았다. 가면 좋기야 하겠지만 굳이 비싼 돈을 주고 갈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래서 주변 지역에서 숙소를 알아보던 중 발견한 곳이 가생이었다. 가생은 생 트로페 만에서 4km 떨어진 내륙의 산지에 있었다. 생 트로페 만의 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수많은 리조트와 캠핑장, 자동차와 사람들로 북적이는 해안 도로를 벗어나 산길을 올라야 했다. 애초에 이곳으로 가는 목적은 오로지 숙박이었고, 아주 작은 마을이므로 우리 일행은 아무런 기대가 없었다. 한산하고 좁은 산길을 올라갈 때만 해도 역시 니스에서 몇 밤을 더 보냈어야 했다거나, 비싼 숙박비를 지불해서라도 생 트로페로 갔어야 했다는 후회마저 들었다. 구불구불한 길을 올라 해발 150m가 조금 넘는 곳에 있는 도시 입구로 들어설 때까지도 같은 생각이었다.     

가생에서 본 생 트로페 만

 하지만 주차를 하고, 마침내 뒤를 돌아보았을 때 우리의 생각은 코페르니쿠스적으로 전환되었다. 작은 마을의 성벽 너머로 생 트로페 만이 한눈에 들어왔다. 일부만이 아니라, 만의 저쪽 끝에서부터 이쪽 끝까지 전부 손에 잡힐 듯했다. 성벽과 바다 사이에는 숲과 와인 밭이 자리 잡고 있었다. 생 트로페 만 뒤로는 눈이 쌓여 있는 알프스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디 멋진 경치가 한 둘인가. 그래 봤자 산과 바다에 불과하지 않은가. 우리는 어디까지나 생 트로페에 가려고 했던 것이었고, 실제로 다음날 오전 생 트로페의 해변으로 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짐을 풀고 주변을 둘러보고, 저녁이 되어 해가 지고 마을의 조명이 하나둘씩 켜지면서 우리의 계획도 조금씩 변해갔다.     


 어둠이 내린 마을의 한 구석은 영화의 세트장처럼 변해 있었다. 주차장에서 100m 정도만 더 걸어가면 5-6곳의 식당이 늘어선 거리가 있었는데, 밝은 노란색 조명 아래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불빛 아래에 갖가지 꽃과 갈색의 테이블과 나무들과 사람들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처음 얼핏 보았을 때 나는 그곳에서 마을 축제를 하는 줄 알았다. 예사롭지 않은 조명과 음악이 흘렀고 조용했던 마을이 뜬금없이 시끌벅적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매일 밤 그런 축제가 벌어졌다.     

가생의 식당들

 우리는 그 축제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코스 요리가 30-40유로 정도였으므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식사를 하지 않고서 칵테일이나 와인을 마실 수도 있었다. 야외의 테이블에 자리 잡으니 생 트로페 만의 아련한 해안선과 점멸하는 불빛이 보였다. 생 트로페 만과 남프랑스를 모두 가진 듯했다. 이런 식의 호사스러움을 그리 즐기지는 않지만, 하루 이틀쯤 낭만적인 밤을 만끽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가생에서 이틀을 머물면서 지켜본 결과 저녁 무렵이면 사람들이 몰려와 주차장이 가득 찼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에서 온 차들도 꽤 있었다. 실제로 이곳에서 생일잔치 등의 각종 파티가 열려서 화려한 드레스와 깔끔한 정장을 입고 오는 사람도 많았다. 손님이 많기 때문에 예약을 하는 게 좋고, 예약을 하지 않으면 차라리 늦은 시간에 가는 것이 나았다.     

 

 다음 날 우리는 결국 생 트로페에는 가지 않았다. 그곳에 가지 않아도 넘칠 만큼의 즐거움과 여유로움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바다는 가까운 곳에 있는 마리나 해변(beach Marina)으로 충분했다. 자동차로 10분 정도면 갈 수 있었는데, 사람들은 적당히 많았고, 백사장의 크기와 질, 바닷물의 온도와 높이는 아이들이 해수욕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근처에 대형 마트가 있어서 물이나 과일 같은 물건을 구입할 수도 있었다. 우리는 해변에서 낮 시간을 보내고, 가생으로 와서 저녁을 즐겼다.      

숙소 앞 시청과 작은 광장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겠다. 우리 일행의 숙소는 가생의 시청 앞 광장에 있는 단독 채의 3층 건물이었다. 1층은 주방 겸 식당이고, 2층과 3층에는 각각 방 2개와 그에 딸린 화장실과 샤워 시설이 구비되어 있는 곳이다. 가족 당 하루에 80유로 정도였으니 가성비가 괜찮았다. 숙소 앞은 사실 광장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공간이었다. 가로 세로 10m쯤 되는 사각형 모양의 장소다. 밤이 되면 마을 안쪽은 어두웠지만 이곳만은 시청의 조명이 비추고 있었다. 그 조명은 유독 강렬해서 광장을 뮤지컬이나 연극의 무대처럼 만들었다. 아내와 나는 늦은 밤 이곳에서 <A Lovely Night>을 조용하게 틀어 놓고 춤을 추었다. 훈훈한 공기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고, 설령 누가 본다 해도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라라랜드>의 주인공들처럼.    

  

 아직 남프랑스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여행지가 아니다. 니스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한국에서 니스로 오는 직항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었다. 그래서인지 유럽의 다른 도시들보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적은 것은 물론 단체 관광객들이 전혀 없었다. 간혹 남프랑스를 찾는 사람들이 있어도, 그들의 여행지 목록에 생 트로페 만이 있는 경우는 드물 것이고, 가생은 더욱 드물 것이다. 그래도 혹시 남프랑스에 가거든, 아니면 니스나 칸느를 가는 길, 아를이나 아비뇽을 가는 길에 하루 저녁쯤 생 트로페 만 근처의 이곳을 들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참고한 사이트>

https://en.wikipedia.org/wiki/Gassin

https://en.wikipedia.org/wiki/French_Riviera

https://en.wikipedia.org/wiki/Saint-Tropez

https://www.seesainttropez.com/news/top-celebrities-to-look-out-for-this-summer-in-saint-tropez-693829

http://www.map-france.com/Gassin-83580/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의 묘미 - 밤베르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