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을 존중하는 것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너무 뻔한 이야기임을 알고 있다. 아마도 먼나라 이웃나라 같은 책에도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당연한 이야기라도 언젠가 해야 할 것이라면 먼저 하는 게 낫겠다.
불법주차를 지적하는 독일인들의 태도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독일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나 역시 그러한 지식이나 고정관념에 근거하여 운전이나 주차에 있어 규칙을 어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에 온 지 처음 2-3달 동안 계속해서 규칙 위반을 지적받았다. 독일 생활에 적응해하는 과정에서 으레 있을 법한 경험이긴 해도, 그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장애인 주차구역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주차를 했다가 지나가는 아주머니에게 지적 받는 건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적을 받은 후 자동차를 옮기는 동안 연이어서 두 사람으로부터 더 지적을 받은 것은 조금 덜 흔한 경험이었다. 그중 한 청년은 나에게 엄지와 검지로 작은 하트를 날렸는데, 처음에는 나를 조롱하는 것 같았으나 생각해보니 그것은 작은 X 표시였다.
독일에 살다 보면 이런 경험을 쉽게 할 수 있다. 처음 방문하는 주택단지나 상점 근처에 주차를 해도 되는지 긴가민가하면서 차를 세우면 누군가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 느낌은 어김없이 잘못된 주차에 대한 지적으로 이어진다.
아이들의 예전 어린이집은 교외의 작은 마을에 있었다. 주변에 논밭이 많은 한가로운 곳으로 어린이집 앞은 넓은 주차장이었고, 아무런 제한 없이 주차할 수 있었다.
언젠가 하루는 텅 빈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잠시 서 있었는데, 강아지를 끌고 산책을 나가던 할아버지가 나를 부르더니 여기에 주차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자세히 보니 내 차가 서 있는 곳에는 주차구역을 표시하는 선이 그어져 있지 않았다(하지만 그 주차장은 주차선 자체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미하게 그어져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내가 주차한 곳은 주차장 사이에 있는 보행자 통로였다.
장애인 주차구역 문제는 그럴 수 있다지만 이것은 상당히 놀라웠다. 주차할 곳은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보행자 통로라고 해도, 그 통로 자체가 넓어서 내 차가 있더라도 사람들의 통행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았다.
주차구역을 표시하는 선조차 명확하지 않아서 어디가 주차구역인지 쉽게 분간할 수 없었다. 거기에 주차를 한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고, 그 정도는 충분히 넘어가도 될 것 같았다. 아마도 이런 상황이라면 한국에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규칙 위반을 적극적으로 저지하는 독일인들의 태도가 어디에서 연유하는지 궁금했다. 작은 규칙도 어기지 않으려는 성숙한 시민의식인지, 규칙을 위반했을 경우 단속에 걸릴 수 있으니 서로 조심하자는 의미인지, 나만 규칙을 지킬 수 없으니 너도 지켜야 한다는 견제와 감시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태도가 규칙이나 제도에 대한 존중을 의미하는 것만은 분명했다.
한국의 부모님이 사는 곳은 서울의 어느 주택가였다. 좁은 골목길에는 주차구역을 나타내는 흰색의 네모난 선이 군데군데 그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자동차들은 그런 표시가 없는 곳에도 적당하게 주차되어 있었다. 주차구역과 상관없이 다른 차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곳에 주차를 한 것이었다.
독일에 오기 전 살던 동네에는 왕복 8차선의 큰 도로가 있었다. 가장 오른쪽의 4차선 도로는 평일 낮에는 주차가 안 되는 곳이었다. 하지만 주변에 있는 병원이나 음식점들을 이용하는 차량들이 항상 늘어서 있었다. 나 역시 그곳에 종종 주차를 하곤 했다. 불법주차임을 알았음에도 그렇게 한 이유는 ‘다른 사람도 했으니까’였다.
물론 모든 한국인들이 나처럼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규칙에 대해 어느 정도 자신만의 해석을 부여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어쩌면 규칙보다는 관습이나 사회적 통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독일인들 역시 모두가 규칙을 잘 지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독일에서 행동의 기준이 되는 것은 규칙 자체인 것으로 보인다. 다른 차량의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는지, 다른 사람이 그곳에 주차를 했는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규칙으로 정해져 있으니까 지켜야 하는 것이고, 거기에 나의 판단이 개입될 여지는 없다.
독일인들이 규칙을 존중하는 이유에는 두 가지 요소가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하나는 규칙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규칙을 적용하는 엄정함에 관한 것이다.
후자에 관하여 먼저 이야기하자면, 어쩌다 한번 지하철을 무임승차 한 적 있는데, 승차표 검사를 당할까 봐 목적지로 가던 10여 분 내내 가슴을 졸였다. 혹시나 걸리면 큰 과태료를 물기 때문이었다. 마음을 졸일 바에야 차라리 지하철 표를 사는 게 낫겠다 싶었다. 위반했을 경우의 제재가 엄격할수록 규칙을 존중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규칙을 만드는 과정이다. 지난 9월 초등학교 1학년인 첫째 아이의 학급에서 학부모 회의가 열렸다. 담임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는 형식적인 행사일 것이라 생각하고 참석하였으나, 그리 간단하게 끝나지 않았다.
학생 24명의 부모들이 모여 앞으로 1년 동안 어떤 행사를 할 것인지, 그것을 위해 어떻게 예산을 마련하며, 어떤 방식으로 집행할 것인지를 의논했다. 학부모 대표를 뽑았고 서기 역할을 맡은 사람은 정해진 내용을 종이에 기록하였다. 회의가 진행되는 내내 그들은 진지하고 성실했다. 누구도 회의를 급하게 진행하려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지 않고 안건 하나하나를 차분하게 논의했다.
오랜 토론과 투표 끝에 10월 중순과 12월 초를 비롯해서 총 4번의 반 모임을 갖고, 1년 예산으로 각자 40유로를 내는 것으로 정했다. 모임의 준비는 그때마다 지원자를 받기로 했다. 오후 7시에 시작된 회의는 10시까지 이어졌다. 나는 그들의 대화를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고 지루하고 힘들었지만, 회의를 마쳤을 때는 약간의 뿌듯함을 느꼈다.
이렇게 정해진 규칙을 누가 존중하지 않겠는가? 규칙을 만드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앞으로 1년 동안 그와 관련된 잡음은 없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사회의 작은 한 부분에 불과하다. 하지만 작은 한 부분이 전체를 대변한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당사자들의 참여와 동의에 따른 사회적 합의를 거쳐 규칙을 만든다. 그 규칙을 존중하지 않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독일 사회의 분위기는 기계적이고 답답한 측면이 있다. 나의 작은 잘못된 행동에도 감시의 눈길이 번뜩이는 풍경이 달갑지만은 않다. 규칙을 만들거나 적용함에 있어 때로는 유연함과 두리뭉실함이 그립다. 하지만 독일이었다면 불법주차로 인한 지역 주민들 사이의 갈등이나 화재 진압의 어려움에 따른 대형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