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어린이집 행사의 소박함, 선행의 소박함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지 한 달이 조금 더 지난 작년 11월 초 생각지도 못한 초대를 받았다. 상트 마틴(Sankt Martin)의 날 행사에 참석하라는 것이었다. 어린이집 현관문에 붙어 있는 안내문에는 막대와 소형 전구를 준비하라고 적혀 있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상트 마틴의 날에는 아이들이 등불(램프)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는 행사가 열린다고 했다.
상트 마틴이 어떤 행사인지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져보다가 유튜브에서 상트 마틴 노래를 찾았다.
영상만 봐도 알 수는 있지만, 노래 가사의 내용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눈이 쌓여 있고 바람이 부는 추운 겨울날이었다. 군인이던 젊은 날의 상트 마틴이 말을 타고 길을 가고 있었다. 상트 마틴은 망토를 두르고 있었는데, 그 덕분에 따뜻하고 안락했다. 그는 길을 가던 중 추위에 떨고 있는 거지 한 명을 보았다. 거지는 상트 마틴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기를 간청했다. 상트 마틴은 칼을 꺼내 두르고 있던 망토를 반으로 잘라 거지에게 주었다. 거지는 고마워했고 상트 마틴은 절반의 망토만 두른 채 서둘러 떠났다.
어떠한가? 상트 마틴이 훌륭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상트 마틴이 행한 선행의 소박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망토를 포함한 가진 재산의 전부를 준 것도 아니고, 거지를 말에 태워 집으로 데려가 따뜻하게 보살펴 준 것도 아니고, 단지 망토의 절반을 잘라주었을 뿐이다. 물론 상트 마틴이 노래에 나온 일화만으로 성인이 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가 이 일을 한 것은 15살 때이고, 그 후 그는 어느 지방의 주교가 되어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많이 도왔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700년 후의 사람들이 기리고 있는 성인에 관하여 두고두고 전해지고, 노래로 불리는 일화라기에는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상트 마틴 행사 날 오후 5시 반쯤 아이들과 함께 어린이집으로 갔다. 11월의 짧은 해는 이미 져서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사람들은 벌써 도착해서 어린이집 밖에 서 있었다. 어린이집 원장의 간단한 인사말이 끝난 뒤 곧바로 행진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팔 길이 정도의 막대에 소형 전구를 매단 후 자신들이 만든 갓을 씌워 등불을 만들었다.
행진은 실로 간단했다. 아니, 행사 자체가 소박하기 그지없었다. 행진은 등불을 들고 노래를 부르며 어린이집 주변 동네를 한 바퀴 도는 것이었는데, 15분 정도 걸렸다. 한 선생님이 하모니카 같은 작은 악기로 반주를 하고 아이들과 가족들은 상트 마틴에 관한 노래들을 불렀다. 운율이 소박하면서도 따뜻했다.
행진이 끝난 후에는 어린이집 뒷마당의 놀이터에 모였다. 간단한 마실 거리와 먹을거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와인에 과일을 넣어서 따뜻하게 끓인 글뤼바인(Glühwein)이라는 음료와 파이프를 물고 있는 사람 모양의 쿠키(Weckmann)가 인상적이었지만, 한 두 종료의 음료 및 빵 외에는 별다른 음식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앉을자리가 없어서 사람들은 선 채로 접시를 들고 빵과 음료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음식을 먹고 있는 도중에 아이들 두 명이 나와 짧은 소극을 보여주었다. 상트 마틴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이었는데, 공연 시간은 1분도 채 되지 않았다. 한 아이는 말을 타는 것처럼 무대를 빙글빙글 돌았고 다른 아이는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아이들이 뭔가 대단한 것을 준비했으리라 기대했던 건 아니지만, 적어도 멋진 대사 몇 마디는 할 것이라 기대한 게 무색해졌다.
일정이나 계획에 대한 안내가 없었기 때문에 행사가 언제 끝나는 것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은 필요 없는 것임이 이내 드러났다. 다과 시간이 조금 지나자 사람들 중 한두 가족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떠났다. 각자 알아서 가고 싶은 때에 돌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얼마 후 우리 가족은 선생님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조금 일찍 자리를 떠났다. 행사가 시작된 지 한 시간 정도 지난 6시 반 무렵이었다. 그 무렵 남아 있는 사람은 절반이 조금 넘었다.
독일에서 참석한 첫 번째 어린이집 행사는 너무 싱겁게 끝났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상트 마틴의 날은 12월 말의 크리스마스, 2월 중순의 카니발, 7월 중순의 졸업과 더불어 가장 큰 행사들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처럼 간단한 것이다. 나는 약간의 문화적 충격에 휩싸여 집으로 돌아왔다. 어린이집 행사가 이처럼 소박하고 부담 없이 열릴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 후 알게 된 것이지만 독일 어린이집에서 열리는 행사는 정말 별 게 없었다. 아이들이 준비한 것들 이래 봐야 평균대 위에서 걷기, 앞구르기, 다 같이 노래 부르기 정도의 집안 장기자랑 수준이었다. 어린이집에서 준비한 장식이나 차림도 격식 없고 검소하기 그지없었다. 일정은 짧았고 오고 가는 것은 자유로웠으며 부모가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도 없었다. 모임이 주말이 아닌 평일 저녁에 진행된다는 것도 색다르게 느껴졌다. 물론 어린이집마다 다르고 해마다 다르겠지만, 한국에 있을 때 반가나 휴가를 내고 어린이집 행사에 참석해야 했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었다.
얼마 전 첫째 아이의 학교에서 상트 마틴의 행사가 열렸다. 전체 학생 수가 많다 보니 작년의 어린이집 행사에 비하여 규모가 컸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 지역 주민들이 등불을 들고 길가에 서서 맞이해준다는 점이 달랐지만(그러므로 학교만의 행사라기보다는 마을 축제에 가까웠다), 전체적인 틀은 다르지 않았다. 행사는 소박했고, 한 시간 반 가량이 소요되었다.
아내와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거리를 행진하면서 상트 마틴의 일화를 다시금 떠올렸다. 자기가 가진 것의 절반을 주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눈이 쌓여 있는 추운 겨울날이었고 그는 머무를 곳 없이 먼길을 가고 있었던 것일지 모른다. 내가 그런 상황에 있다면 망토의 절반을 잘라줄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상트 마틴이 한 행동이 대단하지 않게 보일지 몰라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보다 나은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말도 못 할 기적이나 선행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것의 일부를 내어 주는 것으로 충분하고도 넘치리라. 상트 마틴을 떠올리면서, 독일 어린이집 행사가 소박하게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내가 선행을 너무 거창한 것으로 생각한 게 아니었나 반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