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의 소파를 망가뜨렸다. 과연 무사히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있을까.
우지끈, 쿵 하는 소리가 들려 거실로 달려갔다. 소파가 한쪽으로 주저앉아 있었다. 소파의 한쪽 다리가 부러진 것이었다. 아이들이 소파 위에서 뛸 때부터 느낌이 안 좋았는데, 설마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질 줄이야. 소파 위에 있는 둘째는 놀라고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으나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다.
우리는 가구가 갖추어져 있는 집을 단기 임대해서 살고 있었다. 소파를 비롯한 식탁, 냉장고 등의 가구, 가전과 찬장 속의 그릇과 포크까지 전부 우리 것이 아니었다. 우리에게 집을 1년간 임대하고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집주인 부부는 (독일인들답게) 검소하고 깐깐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2000년대식의 무겁고 투박한 청소기를 썼고, 1990년대에 만들어졌을 법한 브라운관 TV를 봤으며, 아마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보이는 오래된 장롱을 안방에 두었다. 부엌에는 주방용품과 식기들이, 다용도실에는 청소 도구와 공구들이, 침실에는 각종 서류들이 빠짐없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다. 깐깐한 집주인이 소파 다리가 부러진 사실을 알면 과도한 보상을 요구할 것 같아 염려되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럴 때를 대비해서 책임보험에 가입해 두었다. 집주인과 임대차 계약을 체결할 때 계약서에 특약사항으로 들어간 문구 중의 하나는 “임차인은 계약이 체결되는 즉시 책임보험에 가입한다.”는 것이었다. 책임보험은 피보험자인 우리 가족의 과실로 타인의 물건을 훼손한 경우 보험사가 대신해서 피해를 보상한다는 것이다. 보험료는 한 달에 6.9유로(한화 약 9,000원)였고, 최대 보험금은 50만 유로(한화 약 6억 5,000만 원)였다. - 보험업이 발달한 독일에는 다양한 종류의 책임보험이 있었는데, 우리가 상담을 했던 보험사들이 제시한 상품들 중 이것이 보험비용 대비 최대의 보험금을 지급하는 상품이었다.
집주인에게 소파 다리가 부러진 사실을 알리는 즉시 보험사에 이메일을 보냈다. 다리가 부러진 소파 사진 5장을 첨부했다. 하지만 집주인은 의외로 보상 얘기는 꺼내지 않으면서, 오래된 소파이고 그전에 이미 다리가 한번 부러진 적이 있다고만 대답했다. 걱정하지 말라면서 소파를 직접 고쳐보라고 했다! 보험사에서는 약 1주일 뒤에 등기우편으로 답장이 왔다. 보험사는 약관(약관은 수십 쪽이 넘었다)의 어느 조항을 들먹이며 이렇게 답했다.
“이 보험은 피보험자가 임차하여 사용하고 있는 물건에 대한 피해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임차한 물건에 대한 피해를 보상받기 위함이 우리가 그 보험에 가입한 목적이었다. 이 점은 책임보험 상품을 문의하고 상담하는 과정에서 계속 설명한 사항이다. 가구가 갖춰진 집을 임차했는데, 임차한 물건을 실수로 훼손하는 경우를 대비해서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보험회사의 답변에 짜증이 났다. 만약 앞으로도 이런 경우에 보상이 안 된다고 한다면 보험을 유지할 이유가 없었다. 서둘러 보험증서와 안내책자를 찾아보니 (보험이 언제나 그렇듯) 애매하게 기재되어 있기는 보상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되었다.
“호텔 등의 숙소에 있는 물건에 대한 훼손 및 기타 임차한 물건에 대한 훼손은 보상이 된다.”
또한 보험증서의 내용은 약관에 우선한다고 되어 있었다.
당장 보험회사에 조목조목 항의하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집주인이 지금은 아무 말도 안 하지만 나중에 딴소리를 할 수도 있으니 보험금을 받아 놓고 싶었다. 또한 보험금을 지급받아야지만 소파를 수리하거나 교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집주인의 태도는 부러진 다리 대신에 책이나 나무를 받혀서 사용하거나 나머지 다리를 떼어내어 앉은뱅이 소파로 사용하라는 것이었으나, 전자는 소파를 고정시킬 수가 없어서 불가능했고 후자는 소파가 너무 낮아져서 불편했다.
우리의 기대는 이참에 보험금을 지급받아서 소파를 새것으로 교체하는 것이었다. 망가진 소파는 어두운 갈색의 천으로 된 것이었는데 너무 낡고(뒤에 나오지만 이 소파는 10년 동안 사용한 것이었다) 지저분해서 – 섬유 사이에 작은 벌레들이 살고 있는지 앉거나 누웠다가 일어나면 몸이 간지러웠다 – 위에다 침대 시트를 깔아 놓아야 할 정도였다. 깨끗하고 예쁜, 조금 더 편한 소파로 바꾸고 싶었다.
다시 일주일 뒤에 우편으로 답장이 왔다. 보험금을 지급할 테니 물건 소유자의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보험금을 우리에게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에게 직접 지급한다고 했다. 보험사가 이전에 보였던 태도는 소비자를 우롱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역시 항의하기를 백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다음 문제는 집주인이 그들의 손해액을 어떻게 증명하느냐는 것이었다. 집주인의 말에 의하면 문제의 소파는 아주 오래전에 구입한 것으로 소파를 만든 회사가 없어졌다고 했다. 집주인이 보험금을 받으려면 소파를 구입한 가격 혹은 수리비용을 증명해야 할 텐데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다시 일주일 뒤에 집주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집주인은 보험회사로부터 200유로를 지급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보험회사로부터 받은 이메일을 전달해 주었는데, 거기에는 그가 보험회사에 제출한 영수증이 첨부되어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영수증은 무려 2007년에 발급된 것이었고 소파 가격은 700유로였다(원래 가격이 948유로인 소파를 할인된 가격인 700유로에 구입했다).
2007년도 영수증을 아직도 보관하다니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완전히 이사를 간 것도 아니고 잠시 프랑스에 살고 있는 것인데 그 영수증을 소지하고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2007년이면 내가 아직 파릇파릇하던 머나먼 시절이다. 나는 2011년 결혼할 때 구입했던 소파는 물론이고, 2016년에 이사하면서 산 소파의 영수증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아마 영수증을 보관할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집주인은 그 영수증 한 장 덕분에 10년 전에 700유로에 구입한 소파의 다리 하나가 부러진 것에 대한 보상금을 200유로나 지급받은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묘한 감정이 들었다. 집주인이 보상을 받은 것은 잘 된 일이고, 우리가 정당하게 소파의 수리를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질투심이랄지, 반감이랄지 그런 감정이 들었다. 집주인은 소파를 교체할 생각도 없는데, 고작 소파 다리 하나에 200유로나 받다니. 그건 어느 정도 우리가 가입한 보험 덕분이 아닌가. 아마도 보험회사는 더 이상 소파를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서 10년 동안 감가상각 된 소파 가격을 지급한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가 그동안 알아본 바에 의하면, 소파 다리 1개의 가격은 20-40유로 정도면 충분했다. 부러진 소파 다리와 같은 높이의 다리를 찾을 수만 있다면 약간의 수리만으로도 원상회복이 가능한 것인데, 그들은 그들이 입은 피해 이상의 이득을 얻은 것이 아닌가. 하지만 우리가 집주인에게 대놓고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어서, 서둘러 소파를 수리해 줄 것만을 요구했다.
며칠 뒤 집주인의 지인이라는 목공 업자가 찾아와 소파 다리의 높이를 측정했다. 그는 다시 일주일 뒤 직육면체 모양의 나무 조각을 가져와서는 소파를 수리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다시 소파를 쓸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왔지만 그 집의 소파를 생각할 때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독일의 보험 시스템은 깐깐하긴 했지만 보험금을 후하게 지급했고 그 덕분에 우리는 보상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검소하고 깐깐한 집주인은 10년 동안 보관한 영수증 덕분에 200유로를 받았지만(물론 약간의 수리비용을 지출했을 것이다), 오래된 소파를 바꾸지는 않았다. 우리는 보험의 혜택을 받았으나 낡고 지저분한 소파를 계속 사용해야만 했다. 나는 웃어야 될지 울어야 될지 망설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