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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겨찾기 Mar 13. 2019

감싸 달라는 딸, 싸우자는 아들

딸과 아들은 다르다. 여자와 남자도 다르다.

  아내와 나는 아이들을 한 명씩 데리고 잔다. 아이들끼리 자면 좋겠지만, 아직은 어려서인지 밤이 무섭다고 한다. 침대 사정도 넉넉지 않아서 아이들을 따로따로 재우기도 어렵다. 처음에는 둘째인 아들과 함께 잠을 잤는데, 둘째가 엄마와 자고 싶다고 해서 일주일씩 번갈아 가며 잠자리를 바꾸었다.      


 딸은 잠잘 때 자기를 감싸 달라고 한다. 나는 옆으로 누워 한쪽 팔로 딸의 몸을 감싸 안는 자세를 취하고, 우리는 그런 자세로 잠을 청한다. 아이는 잠들기 전 팔이 조금이라도 풀어지면 앙탈을 부린다. 반면 아들은 잠자기 전에 꼭 싸움을 하자고 한다. 진짜 싸우는 것도 아니고 아이가 이기는 게 뻔한 레슬링이지만 생각보다 힘들다. 아들은 자신의 기력을 전부 소진시킨 후에야 만족해한다. 하지만 잠잘 때 몸이 닿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팔을 뻗어 몸을 감싸기라도 하면 불편하다고 난리다. 아이들은 나랑 잘 때와 엄마랑 잘 때의 행동이 다르다. 딸아이는 엄마와 조금 떨어져서 웅크린 채 잠을 청하고 아들은 잠들기 전 엄마랑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눈다.     

(참고 사진)

  잠잘 때만 다른 것이 아니다. 딸아이는 소위 말하는 ‘앵기는’ 행동을 엄마에게는 하지 않는다. 내가 소파에 앉아 있거나 침대에 누워 있으면 꼭 내 옆이나 위에 붙어 앉거나 눕지만, 엄마에게는 그러지 않는다. 투정이나 애교를 부리는 것 역시 엄마보다는 나에게 하고, 엄마에게는 짜증도 잘 내지 않는다.      


 아들은 나와 함께 걸어갈 때면 항상 나에게 질문 세례를 퍼붓는다.

 “아빠, 자전거가 왜 넘어져 있어요?”

 “어제 바람이 많이 불어서 넘어졌나 봐.”

 “아빠, 저 자전거는 왜 안 넘어졌어요?”

 “저 자전거는 바람을 별로 안 맞았거나, 주인이 다시 세워 놓았겠지.”

 “아빠, 자동차는 왜 넘어지지 않아요?”

 아들의 질문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아들이 엄마와 함께 걸어갈 때도 그러는 줄 알았는데, 전혀 달랐다. 엄마와 갈 때 아들은 자기가 먼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엄마, 자전거가 넘어져 있어요. 어제 바람이 많이 불어서 그런가 봐요.”

 “응, 그렇구나.”

 “엄마, 그런데 저 자전거는 안 넘어졌어요. 주인이 다시 세워 놓았나 봐요.”

 “그래, 그랬을 수도 있겠다.”

 “엄마, 자동차는요. 엄청 무겁고 바퀴가 4개라서 안 넘어져요. 강한  바람이 불거나 홍수가 나면 자동차가 뒤집어질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건 뒤집어지는 거지 넘어지는 건 아니에요.”

 나에게는 질문만 하는 아들이 엄마와 얘기할 때는 자기가 아는 것을 떠벌리면서 설명한다.     


 나는 여자와 남자의 유전적인 차이가 있다고 믿는다. 원래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을 기르면서 여자와 남자의 생물학적 차이를 인정하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은 생후 몇 개월부터 이미 성별의 특색이 드러난다고 여겨지는 행동을 했다. 전형적인 예시지만, 갓난아기 때부터 딸은 분홍색(핑크색)을, 아들은 파란색을 좋아했다. 커가면서 딸은 사람 모습으로 만들어진 인형을, 아들은 자동차를 비롯해 바퀴 달린 장난감을 가지고 싶어 했다.   

  

 많은 교육학자들과 어떤 사람들은 아이들의 이러한 특성이 교육의 결과라고 말한다. 아이를 기르는 사람의 가치관이나 생각이 아이들의 행동에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분홍색을 좋아하는 자신의 모습에 반응하는 양육자를 보고 여자 아이는 분홍색을 좋아하는 식으로 사회화가 되었다고 한다. 물론 사회화의 영향이 어느 정도 있기야 하겠지만 아이를 실제로 키우면서 나는 생물학적으로 타고나는 부분이 훨씬 더 많다고 믿게 되었다.     

 최근에 다시 읽고 있는 <아이의 사생활>(2009년)이란 책에 따르면, 여자와 남자는 뇌의 크기와 무게에 있어 차이가 나고 뇌의 발달 속도도 다르다. 여자 아이는 언어 능력이 먼저 발달하고 남자아이는 체계화 능력이 먼저 발달하는 식이다. 대체적으로 여자 아이는 여성형 뇌를, 남자아이는 남성형 뇌를 갖는다. - 하지만 전체 인구 중 17%가 반대 성의 뇌를 가졌다고 한다. - 성평등지수가 높은 국가 중의 하나인 독일이지만 어린이집 선생님과 간호사는 대부분 여자고, 환경미화원과 건설노동자는 거의 남자다. 성별에 따라 선호하는 직업과 잘할 수 있는 일이 나뉜다.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독일에 있으면서 발레 하는 남자 아이나, 축구 클럽에 다니는 여자 아이는 아직 보지 못했다.     


 아이들의 생물학적 성별의 차이는 좋아하는 것이나 주변의 사물에 대한 관심의 형태로도 드러나지만 이성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딸아이는 남자 친구들 앞에서 내숭을 떨고, 아들은 여자 친구들 앞에서 허세를 부린다. 딸이든 아들이든 동성과 있을 때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아이들이 내숭을 떨거나 허세를 부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쪼끄만 게 벌써부터...’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이의 사생활>에 의하면, 생후 12개월의 아이는 목소리와 성별을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만 3세 정도가 지나면서 남자와 여자의 신체적 차이를 이해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여자와 남자는 정말 다르다. 인간의 유형을 구분하는 수많은 방법이 있지만 생물학적인 성별로 구분하는 것보다 정확하고 자연스러운 방법은 없을 것이다. 아이들도 여자와 남자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상대에 따라 다르게 행동한다. 이처럼 다르게 행동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성에게 잘 보이고 싶은 본능이 있을 것이고, 혹은 이성과 함께 있는 것이 어색해서 일수도 있다. 아니면 이성과 함께 있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편해서일 수도 있다. 나는 마지막 이유가 꽤 설득력 있다고 생각한다. 딸의 내숭과 아들의 허세가 더 편하고 자연스러운 행동 방식일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딸은 여자 아이들과 있을 때 지나치게 내숭을 떨면 집단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거나 추방될 수 있다는 위험을 느껴서 본성을 감추는 것일 수도 있다. 아들도 마찬가지다.     


 이성에 대해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을 느끼는 것은 또래 집단 내부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딸이 나에게 안기면서 감싸 달라고 하는 것이나 아들이 엄마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 역시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이성에 대한 편안함의 발로라고 생각한다. - 물론 여러 가지 콤플렉스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 아내와 나는 식당에서 주인에게 무언가를 부탁할 때면 주인이 남자인지 여자인지에 따라 누가 부탁할지를 달리 한다. 이 방법은 실제로 꽤 효과가 있다. 함께 근무했던 남자 부장님들은 나와 이야기할 때면 정색을 하면서 나의 논리를 꼬치꼬치 따졌지만 여자 동료와 얘기할 때는 그녀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부분 수긍했다. 나와는 어떤 문제에 대해 논쟁을 하려 했지만 여자 동료에게는 지적보다는 가르침을 주려고 했다. 반대로 한 번은 여자 부장님과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여자 동료가 하는 말이 내가 부장님 방에 들어가면 웃음소리가 끊이지를 않는다고 했다. 그녀는 부장님과 단 둘이 얘기할 때면 왠지 어색해서 편하게 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여자와 남자는 적이 아니다. 동성보다 더 큰 아군이자 삶의 원동력이다. 여자들만 있거나 남자들만 있는 집단은 위계질서와 상하관계가 지나치게 강조되어 생활하기 힘들다. 병원의 간호사들 사이에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나, 군대에서 여러 가지 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그런 예이다. 이성과 함께 하는 것은 활기찬 생활의 윤활유이다. 


 언젠가 다시 바뀔지도 모르지만 한 달째 아내가 아들을, 내가 딸을 데리고 자고 있다. 아이들이 이런 방식을 원하는 것은 물론 아내와 나 역시 훨씬 편하다. 아직은 어린 나이여서 가능한 일이겠지만, 현재는 이것이 더 자연스러운 시스템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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