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을 때까지 ‘철없다’ 소리 듣게 생겼다.

담담히 글을 그리다

by 태은


"죄송하지만 어머니란 호칭 대신 제 이름으로 불러 주시면 안 될까요?"



sticker sticker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계속해서 '어머니는' '어머니가' 하며 설명을 덧붙이는 의사에게 정중하게 부탁했다.

부탁하면서도 내 유난이 부담스러웠다. 친절하기 그지없는 의사는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세상의 모든 여자가 다 어머니는 아니잖아요. 이름으로 불러주시면 더 좋을 것 같아서요." 말하면서도

어머니가 아니어서 죄스러운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의사는 바로 이해했다. '죄송하다'며 금세 이름으로 호칭을 바꿨다. 하지만 아무래도 어머니란 소리가 몸에 베였나 보다. 계속되는 설명 중에 이름 대신 '어머ㄴ'가 나와 당황한다.




어멍: '엄마'의 제주어


어머니가 되지 못한 채로 나이를 먹어가는 동안, 마땅히 누구나 갖게 되는 걸 갖지 못한 불쌍한 취급을 받거나, 모자라거나(지성 혹은 지능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직무 유기한 채 인생을 날로 먹는 것 같은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


'아이를 낳고 키운 적 없으니 철딱서니도 없어!'


'아이들 키워 본 적 없으면서 뭘 안다고!'


'아이를 키워봐야 인생을 알지!'


다양한 곳에서 만난, 정말 이기적이거나, 배려가 없거나, 책임감이 뭔지 모르는 (아이 있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할 때마다 뒤에서 한 대씩 쳐주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한편, 엄마가 아닌 것이 나의 모든 아름다움을 덮어버릴 만큼 커다란 허물인 것처럼 주눅이 들기도 했다.







나는 가끔 나를 어머니라 부르는 이들(특히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비숫한 의사나 중개업자나 슈퍼 사장님 기타 등등 등)에게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었다.


‘세상의 모든 여자는 다 누군가의 딸이지만, 모든 여자가 다 누군가의 엄마는 아니라고요!’



주름이 깊어지고 흰머리가 생기면서 나를 불편하게 하던 호칭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지만

유독 '어머니'라는 호칭은 아직도 불편하다. 불려보고 싶었지만 진짜 그래 보지 못한 결핍감 때문이겠지.




나는 가끔 물리적 시간의 흐름을 놓친다. 옆에서 자라나 주는 아이가 없으니 시간의 흐름이 깊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어딘가에 써야 하는 내 나이의 숫자를 보며 그 숫자의 낯섦에 당황하고,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조카들을 보면서 그때서야 시간이 뭉텅이로 흘렀음을 느낀다.


마음이 쉬이 늙지 않으니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나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에 맞춰 심리적인 시간도 함께 흘러야 안과 밖이 조화로울 텐데,

나는 죽을 때까지 ‘철없다’ 소리 듣게 생겼다.


그러면 또 어떤가.

내가 가진 것이든 역할이든 결국 내 것이 아닌 것들을 나의 정체성으로 착각해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 없이, 오롯한 나로, 온전한 사람으로 곱게 잘 늙어가고 있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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