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2)

담담히 글을 그리다.

by 태은


https://brunch.co.kr/@doramul/5(1편에서부터 이어집니다.)




철퍼덕!



남자를 붙잡으려던 내 손이 허공을 휘저음과 동시에 남자의 손에 들렸던 코팅된 하얀 종이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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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 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놀라 모두가 엉거주춤 일어나며 쓰러진 남자와 나를(혹은 그가 서 있었던 자리를)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는 제 앞으로 날아온 종이를 주워 들어 어째야 할지 눈치를 본다.
나란히 앉아 수다를 떨던 할머니들이 ‘동작 그만’인 상태로 멈췄고, 또 몇몇은 엉거주춤한 자세 그대로 의자 끝에 엉덩이를 걸친 채 쓰러진 남자를 주시했다. 마치 알 수 없는 어떤 마법의 개입으로 모두가 일시 정지된 것 같았다. 불과 몇 초, 정지됐던 시간이 다시 흘렀다.
가까이 앉았던 청년 둘이 그에게로 가서 괜찮은지 살폈다. 놀란 나도 엉겁결에 일어나다 그에게 다가가는 청년들을 보며 의자 끝에 엉덩이를 걸쳤다.
‘하필 내 앞에 서있다 쓰러지다니’. 잽싸게 붙잡지 못한 미안함, 쓰러진 그 남자에 대한 걱정과 동시에 내게 쏠렸던 사람들의 시선이 거슬렸다.
‘나 때문에 저 사람이 쓰러졌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그에게 호의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 그건 자기네들도 마찬가지고……, 근데 내가 붙잡았으면 안 쓰러졌을까? 아니, 진짜 붙잡았으면 그 힘에 끌려 같이 쓰러졌을 거야.’ 머릿속이 복잡한 가운데 남자를 부축하러 다가가는 청년들이 고마웠다.


그런데 남자가 일어나지 않는다. 얼굴을 바닥에 묻은 채 괜찮은지 물으며 일으키려던 청년의 손길을 단호히 거부했다. 머쓱해진 청년들은 엉거주춤한 채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짓다가 제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러자 종이를 줍던 다른 사람들도 머쓱해져 그대로 놔둔 채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쓰러진 남자를 가운데 둔 차 안에는 묘한 침묵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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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엎어진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울고 있는지도, 혹은 참담함을 삭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바닥에 납작 엎어진 채로 부축을 거부했던 남자를 다시 일으키려는 사람은 없었다.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할머니들도 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수다를 시작하지 못했고, 다른 이들도 조금 전까지 하던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휴대폰을 눈앞으로 들어 올렸지만, 남자를 흘깃거리는 시선에서, 의자 깊숙이 엉덩이를 들이밀지 못한 자세에서, 고개를 빼고 그 남자가 언제 움직일지 지켜보는 표정에서, 걱정스러움과 불편함이 뒤엉킨 복잡한 마음들이 보였다.
나 역시 걱정과 불편함이 뒤엉킨 복잡한 마음으로 그를 쳐다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쳤나? 부축하겠다는데 왜 거절하지?’
덜컹거리는 차 안. 바닥에는 다리가 꼬인 채 엎어진 남자와 그가 손에 들고 있다 놓쳐 널브러진 하얀 종이들과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침묵만이 가득했다. 불과 몇 분 안 되는 시간임에도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때 저쪽 먼 의자에 앉아 있던 아저씨가 성큼 다가오더니 구부려 앉아 그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괜찮으세요?”
남자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움직일 수 있겠어요? 괜찮으시면 인제 그만 일어납시다. 잡아 드릴게요.” 아저씨의 목소리가 다정했다. 남자가 아저씨의 가슴에 얼굴을 묻다시피 하며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괜찮아요. 그냥 일어나면 되는 거예요. 다친 데는 없으시죠? 그럼 된 거예요.”
아저씨는 몇 번이나 괜찮냐는 다독임과 질문으로 지극히 그 남자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래서인가. 보는 사람에게는 불편함일 수도, 그 남자에게는 무안함일 수 있었던 일이 마치 아주 안타까운 상황 속에 있는 것 같은 환영을 불러일으켰다.
그 남자도 이번엔 아저씨의 손길에 의지해 순순히 일어섰다.
다친 데는 없는 모양이다. 머쓱해서인지 자기를 부축해준 아저씨가 제자리로 돌아가는데 딱히 고맙다는 표시도 하지 않는다. 그저 제 옷을 툭툭 털더니 옆에 있던 사람들이 주워서 모아준 코팅된 종이를 정리했다. 진짜 별일 없었다는 듯이. 그제야 그를 흘끔거리던 사람들은 안심이 된 듯 걱정과 불편을 내려놓고 각자 하던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 남자가 다리를 끌듯 절며 천천히 걸어왔다. 그리고는 쓰러지기 전 멈춰 섰던 곳에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듯 내 앞에 딱 멈춰 섰다. 당황해서 자기를 올려다보는 내게 그 남자는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바닥의 차고 시린 기운이 가득한 그의 손바닥 위로 나는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올려놓았다. 시중에서 가장 값이 싼 두부 한모 값도 안 되는 돈이었다.
그 돈을 받고 남자는 천천히 다리를 끌며 다음 칸으로 사라져 갔다. 마치 나한테서 빚을 받아내 할 일을 마친 것처럼 다른 이들에게는 눈길 한번 안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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