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히 글을 그리다.
https://brunch.co.kr/@doramul/5(1편에서부터 이어집니다.)
철퍼덕!
남자를 붙잡으려던 내 손이 허공을 휘저음과 동시에 남자의 손에 들렸던 코팅된 하얀 종이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양쪽 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놀라 모두가 엉거주춤 일어나며 쓰러진 남자와 나를(혹은 그가 서 있었던 자리를)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는 제 앞으로 날아온 종이를 주워 들어 어째야 할지 눈치를 본다.
나란히 앉아 수다를 떨던 할머니들이 ‘동작 그만’인 상태로 멈췄고, 또 몇몇은 엉거주춤한 자세 그대로 의자 끝에 엉덩이를 걸친 채 쓰러진 남자를 주시했다. 마치 알 수 없는 어떤 마법의 개입으로 모두가 일시 정지된 것 같았다. 불과 몇 초, 정지됐던 시간이 다시 흘렀다.
가까이 앉았던 청년 둘이 그에게로 가서 괜찮은지 살폈다. 놀란 나도 엉겁결에 일어나다 그에게 다가가는 청년들을 보며 의자 끝에 엉덩이를 걸쳤다.
‘하필 내 앞에 서있다 쓰러지다니’. 잽싸게 붙잡지 못한 미안함, 쓰러진 그 남자에 대한 걱정과 동시에 내게 쏠렸던 사람들의 시선이 거슬렸다.
‘나 때문에 저 사람이 쓰러졌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그에게 호의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 그건 자기네들도 마찬가지고……, 근데 내가 붙잡았으면 안 쓰러졌을까? 아니, 진짜 붙잡았으면 그 힘에 끌려 같이 쓰러졌을 거야.’ 머릿속이 복잡한 가운데 남자를 부축하러 다가가는 청년들이 고마웠다.
그런데 남자가 일어나지 않는다. 얼굴을 바닥에 묻은 채 괜찮은지 물으며 일으키려던 청년의 손길을 단호히 거부했다. 머쓱해진 청년들은 엉거주춤한 채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짓다가 제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러자 종이를 줍던 다른 사람들도 머쓱해져 그대로 놔둔 채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쓰러진 남자를 가운데 둔 차 안에는 묘한 침묵이 흘렀다.
남자는 엎어진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울고 있는지도, 혹은 참담함을 삭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바닥에 납작 엎어진 채로 부축을 거부했던 남자를 다시 일으키려는 사람은 없었다.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할머니들도 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수다를 시작하지 못했고, 다른 이들도 조금 전까지 하던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휴대폰을 눈앞으로 들어 올렸지만, 남자를 흘깃거리는 시선에서, 의자 깊숙이 엉덩이를 들이밀지 못한 자세에서, 고개를 빼고 그 남자가 언제 움직일지 지켜보는 표정에서, 걱정스러움과 불편함이 뒤엉킨 복잡한 마음들이 보였다.
나 역시 걱정과 불편함이 뒤엉킨 복잡한 마음으로 그를 쳐다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쳤나? 부축하겠다는데 왜 거절하지?’
덜컹거리는 차 안. 바닥에는 다리가 꼬인 채 엎어진 남자와 그가 손에 들고 있다 놓쳐 널브러진 하얀 종이들과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침묵만이 가득했다. 불과 몇 분 안 되는 시간임에도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때 저쪽 먼 의자에 앉아 있던 아저씨가 성큼 다가오더니 구부려 앉아 그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괜찮으세요?”
남자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움직일 수 있겠어요? 괜찮으시면 인제 그만 일어납시다. 잡아 드릴게요.” 아저씨의 목소리가 다정했다. 남자가 아저씨의 가슴에 얼굴을 묻다시피 하며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괜찮아요. 그냥 일어나면 되는 거예요. 다친 데는 없으시죠? 그럼 된 거예요.”
아저씨는 몇 번이나 괜찮냐는 다독임과 질문으로 지극히 그 남자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래서인가. 보는 사람에게는 불편함일 수도, 그 남자에게는 무안함일 수 있었던 일이 마치 아주 안타까운 상황 속에 있는 것 같은 환영을 불러일으켰다.
그 남자도 이번엔 아저씨의 손길에 의지해 순순히 일어섰다.
다친 데는 없는 모양이다. 머쓱해서인지 자기를 부축해준 아저씨가 제자리로 돌아가는데 딱히 고맙다는 표시도 하지 않는다. 그저 제 옷을 툭툭 털더니 옆에 있던 사람들이 주워서 모아준 코팅된 종이를 정리했다. 진짜 별일 없었다는 듯이. 그제야 그를 흘끔거리던 사람들은 안심이 된 듯 걱정과 불편을 내려놓고 각자 하던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 남자가 다리를 끌듯 절며 천천히 걸어왔다. 그리고는 쓰러지기 전 멈춰 섰던 곳에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듯 내 앞에 딱 멈춰 섰다. 당황해서 자기를 올려다보는 내게 그 남자는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바닥의 차고 시린 기운이 가득한 그의 손바닥 위로 나는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올려놓았다. 시중에서 가장 값이 싼 두부 한모 값도 안 되는 돈이었다.
그 돈을 받고 남자는 천천히 다리를 끌며 다음 칸으로 사라져 갔다. 마치 나한테서 빚을 받아내 할 일을 마친 것처럼 다른 이들에게는 눈길 한번 안 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