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녘 들판에 서서

담담히 글을 그리다

by 태은


황혼녘 들판


종종 심장을 쿵쿵거리게 했던 것들이 저 멀리 눈앞에 펼쳐졌다.


아주 어릴적 부터 그랬던 그것들!

그건 여름 저녁 해거름이며, 사방을 제 심장 빛으로 온통 채우고 마는 황혼이며,

딱 그 시간에 제각기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다.


그것은 감히 누구도 시비할 수 없는 생의 충만함이며 온전한 자유였다.



딱 그러한 때에는 내 가슴도 뛴다.

나를 옭아맨 그물이 찢겨 나가고, 온갖 상념들로 가득한 마음 안으로 자연의 삶이 그대로 들어온다.

물 흐르듯 저절로 흐르는 삶.

받아들이고, 수용하면서 충만한 기쁨과 평안함에 때론 눈물이 맺힌다.

그리고 몸 안에서 뜨뜻한 뭔가가 흘러나와 땅속으로 깊이깊이 파고 내려간다.

내가 원래 대지의 일부였던 것처럼.


넓은 들판 사이를 달려 황혼과 가장 가까이 조우 할 수 있는 곳에 멈췄다.

점점 서늘해져 가는 바람이 불었고, 풀벌레가 마지막 날인 것처럼 울어댄다.

아무리 달려도 내가 저 황혼을 붙잡을 수는 없지.

두어 발자국 걸어가며 황금빛을 품어보는 것으로 마음을 달랬다.


논둑에 핀 코스모스가 바람에 하늘거리며 18살 소녀를 소환한다.

너무나 까마득해서 기억에서 멀어진 아이. 그럼에도 소녀의 설레는 심장 소리가 시공을 넘어 황혼 앞에서 쿵쾅거린다.

누군가를 향하는지도 모르는 아스라한 그리움 한 무더기도 손바닥 위에 올려졌다.


들판이 수줍게 물들었다.

멀리 그림같이 들어앉은 작은 농가에서 개가 짖는다.




작가의 이전글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