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정리하기

미니멀 라이프

by 태은


수 십 년 아버지의 손때가 고스란히 묻어있고, 이어서 수 십 년 내 손때를 묻힌 두꺼운 한자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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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했어요, 고마워요!)



아버지는 취미인 분재와 조경 공부를 위해 거의 한자로 된 일본도서와 함께 이 사전을 들여왔다.


그리고 오랜 시간 같이 하다가 분가하며 억지로 떼거지를 쓰는 나에게 물려 주었다.


그때는 한글 뒤에 한문이 붙어 있을만큼 한자가 일상이었고, 그래서 웬만한 것은 읽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책과 신문을 옆구리에 끼고 살던 그 시절의 나는 웬만하지 않은 것들도 읽기 위해

반드시 사전이 필요했다.


그리고 하루도 빠짐없이 보물찾기 하듯 원하는 글자들을 찾아 이리저리 책장을 팔락거렸다.



세월이 흐르면서 한자의 필요성이 조금 덜 해졌다.


컴퓨터가 일상화 되면서는 아예 사전을 들여다 볼 일이 없어졌다.


한 사람의 생애만큼 긴 시간 동안 같이했던 이 두꺼운 사전은 그제서야 비로소

책장 한 구석에서 쉴 수 있었다.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수 없을 정도로 너덜너덜 해진채로.



책장의 책들이 수없이 바뀌고 정리가 되어도 이 사전이 놓여 있는 자리는 변함이 없었다.


늘 그 자리에서 바라 볼 때마다 생전의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짤막 짤막하게 찍혔으되 다양한 모습의 동영상 같은.


그러므로 이 사전은 아버지가 계시던 나의 과거와 강력한 유대를 맺고 있는 생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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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생물을, 과거와의 강력한 유대를 끊어냈다.


이렇게 몇장의 사진으로만 남긴 채,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종이 쓰레기 뭉치 속으로 던져졌다.


오랫동안 아버지와 나의 마음과 손때가 묻어 사념이 가득한채로.


언젠가 이렇게 될 일이지만, 그게 지금인게 잘 한 일일까?


오랫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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