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

도란도란 프로젝트 - 아흔여덟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사람마다 만족의 무게가 다르다고 한다.

시간에따라 느끼는 행복감이 다르듯이

내가 느낀 100만큼의 만족감이

네게는 10만큼도 아닐수 있다는 걸.


아니 어쩌면 그 반대의 일도

꽤 빈번하게 일어난다는걸.


그런 무게의 차이는

감정의 골이 되버리곤 한다.


만족감이 그대로 전이되기를 기도하고

바라고 욕심내면서

스스로 초라해지고 아프고 상처받는다

만족의 무게가 다르면 그렇다.


너도 나도

한때는 잃을것 없이 편지 한 장에도

눈물 지을만큼 풍요롭고 중후한 감정이었는데

그래,

지나는 시간만큼 닳고 닳아서

나는 네게 100만큼의 여자가 아닐수도 있구나

그정도의 여자가 되었구나.


조금 슬픈 가을의 마지막 밤.



-Ram


예전에 경주에 여행가기 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라는 책을 읽어보고 가면 원래 보던 것도 다르게 보인다고.

그 당시 내가 책을 읽을 시간은 되지 않아 아직까지 못 읽고 있지만, 정말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내가 먹는 음식도 알고 먹으면 조금은 느끼는 것이 다르지 않을까 싶다.

아무 생각없이 매일 먹던 소고기, 돼지고기, 소세지, 닭고기, 달걀, 버터, 우유 등등.

FOOD INC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았다.

체르노빌의 아이들처럼 그런 정적인 다큐겠거니라고 생각했는데, 그 반대였다.

약간은 빈티지한 영상에, 중간중간 애니메이션을 접목시켜 적어도 내 집중력을 높혀 주었다.

미국 슈퍼마켓엔 계절이 없다고 한다. 이제 미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디든 그렇지 않을까.

과일은 하우스 등에서 인공적인 환경을 만들어 재배한 다음 에틸렌 가스로 숙성을 시킨다고 한다.

고기에는 적어도 어느 부분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뼈가 없는 덩어리만 있다.

그리고 수만 마리의 소, 돼지. 닭들이 키워지는 곳은 농장이 아니라 공장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호르몬주사, 먹는사료 등의 원인으로 살이 많이 쪄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닭들이 상당수다.

양계장 옆에는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는 공장이 있다.

근로자들은 그 곳에서 가축들을 죽이고, 손질하고, 포장한다.

거대한 식품회사 덕분에 계약농부들이 나타났다.

식품회사는 농부들에게 양계장 등 가축을 키울 장소와 비용을 빌려준다.

계약농부들은 그렇게 빚을 지면서 시작한다.

식품회사는 조금 더 빨리 이익을 보기위해 닭들에게 해를 보지 말게 하라는 등 조건들을 제시한다.

만약 농부가 신념 따위 등으로 이를 거부하면 계약은 해지되어버린다.

농부에겐 빚만 남게 된다.

소에게 E-coli 대장균증이 급증한다.

빨리 키우기 위해 옥수수를 먹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소고기를 소에게 먹인다.

이런 행위는 광우병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어버린다.

발육을 위해 계속해서 옥수수 요소를 먹이는 소들의 위에 E-Coli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초식동물이니만큼 일주일동안 풀만 먹이게 되면, 80%이상의 E-Coli이 사라진다고 한다.

하지만 먹기 위해 태어난 소는 풀 맛을 짧은 평생 모른다.

실제로 이런 소로 만든 패티를 먹은 7살짜리 남자아이의 변에서 E-Coli이 그대로 발견되었으며, 그 아이는 사망했다.

문제는 가축, 동물들 뿐만이 아니다. 사람들도 점점 소외되고 있다.

맥도날드가 세워지고, 그 기점으로 근로자들은 이제 한 가지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

빵 굽는 사람, 감자를 튀기는 사람, 빵 위에 야채를 올리는 사람, 패티를 굽는 사람 등등.

모든 것들을 표준화시켰고, 중간에 근로자 한 명이 빠지게되도 금방 그 자리를, 그 일을 할 사람을 채울 수 있다.

조지 리치 역시 이런 도구적 합리성이 일상화적으로 다가왔다고 이야기한다.

인간 소외가 발생하고 개성이 상실된다.

그렇다고 당장 지금부터 채식을 할 수는 없다. 물론 나도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하지만 인스턴트 음식들과 불투명한 가공식품들은 피하려고 노력하며, 이왕이면 건강식을 선호한다.

시간의 여유가 없어진 현대 생활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인스턴트, 간편식이지만, 편의점 음식을 최대한 멀리하고,

아침에 30분만 일찍 일어나서 집에서 밥을 먹고, 패스트푸드점에는 잘 가지 않는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도 이런 말이 나온다.

상업 자본주의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지구 온난화를 멈춰야하는 시기라고.

우리가 먹는 음식이 연결고리를 잘 타고 가다보면 우리가 숨쉬는 공기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며칠 전 편의점을 갔는데, 정말 예전보다 다양한 음식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었다.

이런 것까지 편의점에서 살 수 있어? 라고 생각될 정도로.

그렇게 고를 수 있는 종류가 많아졌다고 좋아만 하지말고, 우리의 식습관을 다시 한 번만 되돌아보았으면 좋겠다.



-Hee


"형, 요즘 잘 지내세요? 어디에 사세요?"

친하게 지냈던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다시 서울 올라왔어, 낙성대라고 봉천동 근처에 살아. 오랜만이다. 너는 요즘도 인천에 있는거지?"

2개월 뒤면 전역이라고 한다.


"네 형, 안그래도 집 궁금해서 연락드렸는데 강남에서 투룸 구해서 같이 살래요?"

강남이라니.. 사람많고 물가만 비싼 그 곳.


"같이 사는건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얼마짜리 방을 알아보고 있는데?"

월세 40이면 혼자 살만한 방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월50이면 혼자서는 넉넉한 집에서 살 수 있다고도 생각하는데, 저 동생은 얼마짜리 집을 본걸까.


"혼자 산다고해도 원룸이 50에서 80정도라고 하더라구요"

아차 싶었다. 혼자 살 집을 50에서 80짜리 방을 보고 있다니. 젊은 날에는 분수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곧이어 그저 나의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사실을 정정하였지만, 그래도 월세가 많이 나가는 것은 사실이다.


내가 앞으로 일하게 될 인턴의 월급이 128만원인 걸 생각해보면 학자금 대출 이자와 원금 거기에 통신료에 교통비까지 더하면 한달에 40만원이 빠지는 나에게는 상상도 못할 금액이다.


그런 것을 보면 젊어서 27만원짜리 한칸방에서 살아본다는 것이 의미가 있다.


지금의 나는 '멋진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도 나 자신의 '만족'이라는 것이 어떠한 부분에서부터 기인하게 되는지는 분명히 알게 되었으니까, 지금의 고생이 제법 그럴듯 하다.


80만원짜리 멋진 집에서 40만원짜리 소소한 집으로의 이동은 이만저만 불편하고 불만족스러운 것일 수 있다.


반대로 27만원짜리 집(집이라고 할 것도 없다, 그저 방 한 칸)에서의 시작은 온통 희망과 미래로 가득 차 있다.


어떻게 뻗어나갈 것인가?


어떻게 나 자신에게 만족하며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나갈 것인가?


뭐 그러한 희망과 치열한 내가 지금의 나를 부끄러이 여기지 않게 한다.


그렇게 살아본다. 치열하게.

아직은 작은 분수이지만 안분지족 할 줄 알며.



-Cheol


기록하고 싶은 게 전처럼 많지 않다. 머리를 감다가도 젖은 손으로 사진을 찍고 짧은 생각을 남기던 나는 말라 비틀어지고 없다. 무료한 일상과 무기력함의 탓이 큰 것 같다. 앞장만 너덜너덜한 메모장이 불현듯 내 인생과도 별 다를 것 없다 느껴진다. 무엇에든 염증을 잘 느끼는 나는 어쩌면 늙어서 천치가 되어있지는 않으려나.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써나갔던 도란 프로젝트의 글도 무기력의 영향을 여과 없이 받고 있다. 생각나는 내용을 즉각적으로 메모장에 써내려가던 나는 토요일 저녁을 먹고 나서부터야 겨우 자리에 앉아 글을 내리쓰고 있다. 나는 얼마만큼의 퀄리티있는 글을 쓸 수 있을 지, 또 혹시라도 글 쓰는 게 귀찮아지지는 않을 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걱정했던 문제가 이제서야 불거지고 있다. 쓰고나서 수십번을 다시 보고 고쳐써도 글에 좀처럼 만족을 하지 못하면서 요즘은 휙 써서 바로 메일로 보내버린다. 마감시간이라도 맞춰야겠다는 생각에 그랬지만 그렇게 보내진 글들을 자고 일어나서 다시 읽어보면-그런데다 말의 앞뒤가 안 맞기라도 하면- '차라리 이번 주는 보내지 말 걸 그랬나' 생각하며 후회하곤 했다.


얼마 전에 내가 여태껏 남겨온 기록들(도란 프로젝트를 포함한)을 처음부터 다시 봤다. 지난 시간들을 처음부터 천천히 보면서 기분 좋게 웃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흘러도 너저분한 글이, 사진이, 취향이 나아지는 것 하나 없이 그대로 늘어져 있었던 것이다. 정상적인 글쓰기 과정을 싹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쓰는 글이었으니 어쩌면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하려 해도 내가 여태 남겨온 것들이 이렇게까지 불유쾌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답답함과 분한 마음이 쉽게 가라앉질 않았다. 어쩌면 이게 요즘의 무기력함에 큰 기여를 한 것도 같다. 다른 것들에서 처럼 그냥저냥 넘어가면, 기록의 내용이야 어떻든 기록을 한다는 것 자체로 만족을 해버리면 이렇게 울분할 필요도 없겠지만, 아무래도 그래서는 안 되겠다. 그나마 몇 없는 좋아하는 것들에까지 이렇게 불성실해지지는 말아야겠다. 좀 잘 하자.



-Ho


2015년 11월 22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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