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아흔아홉 번째 주제
우리집 가족들은 대부분 개성이 강한 식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 둘째가 생선 비린내만 맡아도 질색팔색을 하는 바람에
가족 외식에서 해물탕이나 횟집은 빠진지 오래 되었다.
그래서 내가 성인이 된 이후에서야
가끔씩 부모님과 나만 두런두런 횟집을 찾거나
이따금 해물탕을 먹기도 했다.
(엄마도 해물탕 같은 음식은 잘 안드시니까)
알게모르게 아빠랑 나는 그러한 입맛이 많이 닮아있어서인지
두어달에 한 번 즈음 고향 집에 내려가면
아빠도 좋고 나도 좋은 외식을 하게 된다.
뭐, 이전의 글에서도 간간히 언급했지만
우리 아빠는 유난히도 표현력이 약한 분이신데
어느정도라고 굳이 말하자면,
딸의 생일에 수줍게 전화하시면서도
차마 '생일 축하한다' 한 마디가 쑥스러워
'잘 살아라' 한 마디로 묻고야 마는 분이다.
아무리 딸이 앙탈이며 애교며 잔망스러운 말을 뱉어도
허허 웃고 마는 아빠임을,
그대로 받아들인 시간도 많지는 않다.
그래도 크면서 아빠의 '표현'이 묻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 '꽃게'가 그렇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모두가 알겠지만)
꽃게나 새우같은 음식은 홀로 해먹기가 쉽지만은 않다.
사실 해먹어본 적도 없다.
집에 내려가면 철에 맞춰 아빠가 투박한
짜장 그릇에 꽃게를 다섯 마리, 여섯 마리나 내어 준다.
가끔은 대하를 한 바가지를 주거나
때때로 전복을 데쳐 주시기도 한다.
날 생각하며 샀다느니, 맛있게 먹으라느니,
그런 대단한 말은 섞지 않는다.
그저 네가 온다기에 삶았다.
라는 말과 함께 던져준다.
살보다 버리는게 많고 먹기에 번거로운 꽃게인데도
유난히 맛있는 것은 아빠가 나에게 하는
당신만의 애정 표현임을 알면서부터 인것 같기도 한데,
사실은 아주 많이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었다고,
그러한 진실은 감추고 맛있게 먹는 것 또한
딸이 전하는 사랑의 표현임을 아빠는 알까.
-Ram
1.
고등학교 다닐때 저녁시간이었다.
원래는 학교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야자를 해야하는데,
서로를 죠스라고 부르는 친구랑 몰래 학교를 빠져나왔다.
학교에서 저녁을 먹지않고 나와버려서 죠스와 나는 배가 고팠다.
마침 죠스네 집이 우리집보다 학교에서 가깝고, 아무도 없다는 소식에 버스를 타고 죠스네 집으로 갔다.
죠스네 집에 도착해서 식탁에 앉으니, 죠스가 냉장고에서 이것저것 반찬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죠스는 반찬을 꺼내다가 어떤 냄비 뚜껑을 열었보고는 환호성을 질렀다.
"아싸! 이거 있다!"
도대체 뭐길래 저렇게 좋아하는거지, 라는 마음으로 "뭔데?" 물어보며 냄비 안을 보니 간장게장이었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 간장게장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우리집 식탁에는 젓갈, 게장이 한 번이라도 올라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종종 귀동냥으로 게장은 밥도둑이라는 이야기를 익히 들어왔기에 나도 먹어보겠다고 나섰다.
밥솥에서 하얀 쌀밥까지 식탁에 세팅한 후에 우리는 저녁식사를 시작했다.
드디어 밥도둑이라는 게장을 먹어보는구나, 라고 생각하며 집게다리 하나를 들었다.
죠스한테 어떻게 먹어야하냐고 물었더니, 그냥 아그작아그작 깨물어먹으면 안에서 살이 나온다고 하길래
용기있게 게다리를 입에 넣었다. 그리고 아그작아그작 씹었다.
아.. 첫 맛은 일단 짰다.
아.. 중간 맛도 짰다.
아.. 끝 맛도 짰다.
그냥 짰다.
퉤!
어느정도 살이 나왔다고 생각하여 껍데기를 뱉어냈다.
사실 살도 코딱지만큼이라고 생각했다.
왜 이걸 도대체 밥도둑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난 그냥 다른 반찬들이랑 먹어도 충분할 것 같아서 게장 전부를 죠스에게 양보했다.
죠스는 다리는 대충 다 씹어먹어버리고, 게딱지에 밥을 비벼먹는 것이 아닌가?
엄청나게 행복한 표정으로.
죠스에게 맛있냐고 물어보니, 죠스는 엄청 맛있다고 대답했다.
혹시나 내가 아까 맛을 잘 못 느낀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그 게딱지에 비벼진 밥을 한 숟갈 퍼먹어봤다.
?
역시 짰다.
나에게 간장게장은 밥도둑도,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르는 음식이 아니다.
충분히 누구에게는 너그럽게 양보할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2.
망원동에는 '한상'이라는 음식점이 있다.
메뉴는 단 두 개.
'밥상만'과 '술상만'.
가격은 두 메뉴 전부 만원이다.
처음 그 음식점을 갔을때 오후 3시쯤 되었다.
시간이 애매해서 식사가 될까, 아리송해하며 가게문을 열고 여자사장님이 계시길래 식사되냐고 물었더니,
인자한 미소와 함께 당연하다고, 자리에 앉으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자리에 앉으니 사장님이 물을 가져다주시며 "밥상 둘?" 하시길래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얼마 안있어 엄청난 가짓수의 반찬과 밥과 국이 등장했다.
이 가게에 오기 전에 국이 대부분 바뀌는 것을 알고 미역국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소소한 바람이 있었는데,
아니나다를까! 국이 미역국이였다!
진짜 엄청 행복했다. 미역국을 정말 먹고싶었었는데!
그리고 식탁 위는 반찬그릇으로 꽉 찼다. 대충 20가지 정도 될까.
장조림, 두부김치, 제육볶음, 애호박무침, 잡채, 콩나물무침, 고사리나물, 샐러드, 간장게장, 꽃게무침, 묵, 부추메밀전 등등.
전부 내가 다 좋아하는 반찬들이었다. 그 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반찬이 방게무침.
어릴 적에 부모님이 모두 직장에 다니셔서 동생과 내가 알아서 밥을 챙겨먹어야 했는데,
어느날 엄마가 반찬가게에서 방게무침을 사오셨다.
나는 그 방게무침을 처음보고 "엄마 이걸 어떻게 먹어야되?" 했더니, "통채로 그냥 씹어먹는거야"라는 대답을 들었다.
너무 딱딱하지 않을까, 하며 조심스럽게 방게무침 중 작은 것을 골라들어 입안에 넣고 일단 열심히 씹었는데,
엄청나게 고소한 것이 아닌가!
그 어릴 적 먹었던 방게무침이 이 음식점에서도 반찬으로 나와 엄청나게 반가웠다. 또 한번 리필해서 열심히 먹었다.
단돈 만원에 이렇게 푸짐한 집밥같은 음식점이 있다니.
더구나 나는 자극적이거나 짠 간을 좋아하지 않는데, 여기 음식들은 전부 간이 괜찮았다.
예전에 연희동에서도 이런 백반집을 간 적이 있는데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음식점은 주로 고기반찬 위주라서
약간 무거웠는데, 여기 망원동 '한상'은 나물반찬도 많아서 완전 내 스타일이였다.
밥을 다 먹어갈때쯤 사장님이 오셔서 "저기 입구 쪽에 식빵있는데, 잼 종류도 많으니 토스트도 드세요" 라고 하셨다.
이미 배가 엄청 부른상태여서 빵까지 먹진 못했다. 그랬더니 사장님이 디저트라며 귤도 주셨다.
어마어마하게 친절하셨다. 밥 먹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았고, 친절한 사장님도 완전 좋았다.
다음 번에도 밥을 먹고 싶으면 여길 꼭 오겠다고 다짐했다. 이 가게가 오래오래 그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다.
-Hee
밤 10시쯤 장을 보러 마트에 가면 가끔 꽃게가 떨이용으로 반 값에 나온다.
그러면 다음날은 꽃게된장찌개.
나에게 꽃게란 그런 존재.
꽃게에겐 미안하지만, 내가 직접 사는 꽃게란 그저 찌개거리 같은 존재.
그 것도 이제는 매일 야근이니 드문 경우이다.
그래도 내가 다루는 재료가 많지 않으니
꽃게 이 놈도 어찌보면 제법 선택 받은 아이이다.
꽃게 한마리 끼워주고
펜션이든 캠핑이든 어디든 훌쩍 떠나 꽃게된장찌개를 끓이고 싶은 하루다.
-Cheol
맨 처음 입 속에 한껏 퍼졌던 감동들은 어느새 어딘가로 사라지곤 없었다. 예를 들면 처음 입 속에 넣었던 초콜릿의 달달함, 왈칵 뿜어지는 소고기 육즙의 고소함, 서서히 익어 절정으로 치솟는 술 맛, 자주 먹을 수 없는 멜론의 비싼 달큰함, 아무 것도 모른 채 먹었던 개고기의 의미심장한 맛. 예를 들면 늘 먹던 엄마의 된장찌개에 처음으로 꽃게가 들어갔던 때 입 속에 퍼졌던 향미의 잔치.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먹는 저녁 상 위에서 꽃게를 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음에도 냄비 속에서 꽃게가 사라지기 까지는 꽤나 길고 긴 시간이 필요했다. 오달지게 밥을 잘 먹던 우리 형제도, 직접 장을 봐 와 상을 차린 엄마도, 일 마치고 배가 고픈 아빠도, 할아버지도 젓가락질 하기를 망설이며 머뭇거렸던 꽃게. 좋은 음식을 찾아 다시 먹으면 잊고 지냈던 그 음식만의 향미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나곤 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깟 꽃게따위가 됐지만, 배고픈 시절에 먹었던 꽃게의 맛은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Ho
2015년 11월 29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