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도란도란 프로젝트 - 백세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 첫번째 이야기


제발 이 순간이 끝나기를,

거짓말같은 악몽에서 깨어나기를,

너무나 간절히 기도하던 때가 있었다.


잿빛 기억으로 가득한 그런 때에

겪어본적 없는 슬픔으로 뒤덮여

이 긴긴 기간의 보이지 않는 끝을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렸다.


나는 한낱 먼지 조각마냥

무심히 흐르는 꼬여버린 시간의 실타래를

부여잡고 흐느끼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목구멍에 울분이 차올라도

뱉어낼 곳이 없어 속으로 삼켜냈다.


걸어온 모든 순간이 거짓말 같았고

내 손과 혀로 꾸려진 그 때의

순간이 절망스럽고 원망스러워

애처롭게 끝을 빌었다.


흐느껴 울던 때에도 희망을 그린것은 아니었다.

잘 될거라는 위로도 빌어볼 수 없었고

누구하나 곁에서 나를 완벽히 보듬을 수 없었다.


그렇게 새카맣게 태워버린 나의 시절은

그대로 끝이 났다.

끝이라는 언저리 즈음에

주저앉아 울부짖던 때가 아득하여도

그대로 끝이 나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끝이 온다는 건 그래도 다행이라는 이야기다.


- 두번째 이야기


언제나 끝은 시원섭섭한 순간이 된다.

시작보다 설레지 않고 두근거리지 않는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을 가득담아

끝을 축복하는 시간을 소중히 하게된다.


한 해가 끝나는 연말도

학창시절이 끝나는 졸업도

전부 다시 없을 귀중한 순간이다.


언젠가 곁의 이 사람과 마지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자

그 사람과 끝을 맺게 되었다.


끝이란건 추억하면 아리고 쓰라린 기억들이지만

모든 끝맺음의 순간도 괜시리 담아두게 된다.


미련도 집착도 아니라

모든 나의 소중했던 시간들을,

끝을 내었다는 그 자체로도

어쩐지 고마워서,

어째서인지 모르게 담아두고 싶다.


끝이라는건 그렇다.

시원섭섭한 그런 것들.



-Ram


1.

욕심을 부리고 싶었다.

끝을 맞이하기 싫어 욕심을 부렸다.

하지만 욕심을 부린 만큼 끝은 더 쉽게 났다.

끝이 아닐 것 같았던 사람은 모두 끝이 나고,

금방이라도 끝이 쉬울 것 같았던 사람은 이상하리만큼 지속되고 있다.

욕심이 화근이 된걸까.

아니면 어차피 끝이 날 사람인걸까.

근데 너랑은 끝내기 싫은 생각이 들어 욕심으로 변할까 조바심이 난다.


2.

자정이 넘은 시각에 내 아이폰에 도착한 카톡메세지는 맥락을 확실하게 바꾸어 놓았다.


3.

2년 전에 아주 깔끔한 끝을 맞이한 적이 있다.

어느 누구도 기분이 상하지 않았고,

오히려 고마웠고, 아쉬웠고, 기분좋은 슬픔과 후련함도 있었다.

그렇게 깔끔한 끝은 난생 처음이였다.

애써 눈물이 나려고 했는데 참았다.

잘한 것 같다.

그 날을 잊을 수 없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잘했던 일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Hee


끝이라는 말이 두려웠었다.

이대로 끝내야 하는 것일까?

미련이 남아 있을 때 나는 쉽사리 끝내지 못하였다.

아니지, 미련이라는 표현이 적당한 것일까?

끝내려고 할 때 그 감정에 반하는 감정들이 나의 앞을 가로 막았다.


‘저리 비켜’

나는 마음 속에서 내 앞을 가로막은 그 감정들에게 말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의지는 굳건해 보였다.

그들은 빛나 보였고, 그들의 숭고한 의지는 마치 어느 영화의 영웅들 같아 보였다.


나는 언제나 굳건한 그들을 상대한다.

바람직하며 선한 것을 추구하는 어떠한 신성한 가호를 받는 그들이었다.


그러한 감정들을 하나씩 부스러지도록 만들 때마다 큰 격정이 일어났다.

한 명, 한 명 흩어질 때마다 나의 가슴 속에서는 폭우가 쏟아지고 회오리가 몰아쳤다.


신성한 그들을 소멸시키는 나는 ‘악’의 일종인 것일까?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은 어떠한 이에 대한 나의 ‘선한 마음’들 이었을 뿐이다.

그이에게 배신당한 나는 초라할 뿐이었다.

어쩌면 그이의 배신이라기보다는 나의 실패였다.


‘끝’

나의 선한 마음들의 일부를 소멸시켰다.


피할 수 없는 감정의 아픔.

그래도 나는 해야만 하였다.


한 무리의 ‘선한 마음’의 스러짐이 다른 무리의 ‘선한 마음’들을 더욱 굳건하게 만든다.

나를 응시하는 그들의 눈빛에서 자신들은 결코 흩어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그래, 내가 더 분발할게. 너희에게는 미안할 뿐이야’


그들을 감싸 안고 더욱 옷깃을 여민다.

나의 마음들에게 ‘이런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노력할게’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말을 아낀다.


문을 열고 옷깃을 더욱 여민 채,

겨울의 눈바람이 몰아치는 밖으로 나선다.



-Cheol


1. 삶의 고통이 죽음의 고통보다 커서, 이 세상의 합리가 본인의 합리와는 달라 버티고 있을 이유가 없다며 학생 한 명이 자살을 했다. 인터넷에 퍼뜨려진 유서를 몇번 읽었다. 이해가 되면서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핑계들이 그득했다. 그 애를 죽게 만든 것에는 불합리한 사회 구조보다도 우울증이 더 크게 작용한 게 아닌가. 밑바닥을 기어보지 않고서, 진탕을 뒹굴어보지 않고서 섯부르게 끝을 결정해버린 그 애의 나약함을 나는 위로하고 싶지 않다. 조금 더 살아 볼 일이었다. 한국이 빌어먹게 싫다면 차라리 다 내려놓고 본인의 합리와 일치하는 세상을 찾아 떠나 보기라도 할 것을, 조금 더 살아보고 결정해도 좋았을 것을.


2. 나는 왜 장학금씩이나 받아가며 잘 다니던 대학을 자퇴했을까. 질 좋은 대학이 아니기도 했지만, 고작 학위에 대한 욕심을 이유로 다니다 보니 금새 싫증이 났다. 여전히 후회는 없지만 그대로 다녔더라면 지금 내 모습이 어떨 지 궁금하긴 하다. 아무래도 지금보다도 더 구리지 않았을까. 끝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는 건 가끔은 멋진 일이다. 나는 섣부르게 대학생활의 끝을 앞당긴 것을 두고두고 자랑스러워 할 만 하다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었다.



-Ho


2015년 12월 27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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