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도란도란 프로젝트 - 백다섯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사회, 첫번째


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다.


사실 명백하게 따지면 첫 걸음이 아닐지라도

어떠한 기준에 있어서 '사회인'이 되었다.


마음의 준비가 채 되지 않은 채로,

그리고 여전히 우리는 소녀같은 마음인 채로

친구는 먼저 그렇게 조금 빨리 사회 속으로 나아갔다.


나는 묵묵히 친구의 등을 바라보며

축하를 보내지도, 응원을 하지도 않았다.


대단하게 여길 친구의 성격을 이미 잘 알고 있어서이기도 하였고

내가 그녀를 축하하고 대견하게 여길수록

그녀가 내딛은 첫 발걸음이 무거워지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녀가 열기 시작한 사회의 문을 모두가 축복할 때에

누군가 한 명즈음은 조용히 뒤에서

그녀가 지나온 발자취를 묵묵히 따라 걸으며

혹시라도 그녀가 돌아볼 때를 기다려야 하진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물론 그렇지는 않겠지만.


요란하고 화려하게 그녀를 축복하지 못했던 것은

내심 그녀에게 부담이 되진 않을까,

모두가 축하해주는 마음만큼 나는 고목나무 같이

그녀를 '사회인'이 아니라 그저 나의 '친구'로서

별다를 것 없이 바라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이런 마음의 응원이 내가 그녀를 아끼는 방법이라고.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그녀이지만

그래도 사실은 마음 한 켠에서 언제나 잘 해낼 친구를

나는 언제나 믿고 축복하고 있음을,

조금은 눈치채고 든든해 하기를.


사회, 두번째


문득 돌아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내가 사회 속에서 벗어나려 애를 쓰고

불평, 불만이 가득하더라도

결국 내가 밟고 서 있는 이 땅이 나의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누워서 침뱉듯,

나는 그저 내 얼굴의 못생긴 점을

시끄럽게 떠벌리는 사람 뿐이라는 것을.



-Ram


1.

사회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서,

나는 아무리 발버둥쳐봐도 그 톱니바퀴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싫다고 외쳐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외쳐도,

내가 무인도에서 혼자서 삶을 개척해나가지 않는 이상

나는 이 사회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그런 사회와 현실 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느꼈을 때,

그제서야 그가 이해됐다.

왜 그렇게 서둘러 잘 수 밖에 없었는지,

왜 주말에는 나가기 힘들어 했는지.

그리고 내가 왜 잠을 챙겨야 하는지도 깨달았을 때,

자칫하면 내가 부정하려 했던 모습이 되어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서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나를 절대 잃지 않을거라고.

나를 절대 잊지 않을거라고.

그리고 내 삶을 내 방식대로 어떻게든 살아갈거라고.


2.

제대로 된 사회를 만드려면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LOVE, EDUCATION, SHARE.

내게 이 세 단어가 뭉쳐서 다가왔던 순간은

정말 인생에 몇 없는 값진 순간일 것이다.

나는 저 단어 뭉치를 절대 잊지 않을것이다.


3.

거대함의 압박감을 느꼈을 때보다,

체제 속에 숨쉬고 있는 것을 느꼈을 때보다,

더 숨이 막혔던 것은,

내 자유에 대해, 내 존재에 대해 간섭과 억압을 느꼈을 때.


4.

나도 언젠간 그럴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그런 날의 기운이 빨리 다가올 진 몰랐다.

이제는 전혀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이기에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너무나 조심스러운 것을 온 몸으로 깨닫고 있는 중이다.


5.

'사람 냄새가 나는 사회,

각자가 가진 다양한 향기가 인정되고 충분히 섞일 수 있는 사회,

누군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기꺼이 함께 연대하는 사회'

최소 내가 살고 있는 사회를 지칭할 날이 올까?

아니야. 욕심은 버리고.

이런 사회가 어느 곳에는 존재할까?

유토피아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Hee


요즘은 젊은이들이 힘들고 아프다고들 한다.


대충 우리가 체감하는 '힘들고 아픔'의 입장에서 '아 그렇구나'가 아니라 지금의 나는 실제로 어떤 사회에서 살고있나 어디한번 살펴보자.



주권


현재 우리나라의 연령별 인구현황은 아래 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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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OSIS 국가통계포털


40대~60대를 기성세대라고 가정하고 '기성세대'의 정의를 '나무위키(https://namu.wiki/w/기성세대)'에서 검색해보았다.


"

旣成世代(이미 이루어놓은 세대). 나이가 들고 이미 사회에서 안정적 지위를 확보해놓은 세대를 말한다.[1] 신세대들에게 매우 적대적이며, 높으신 분들도 여기에 속하고 있으며 나라의 정치일을 많이 하지만 삽질도 많이 한다.


기성세대도 처음에는 젊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이끌어서 인도해왔던 신세대였다. 이들은 점차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신이 살던 시대의 사고방식을 버리지못하고 그대로 유지하려는 경향을 가지게 된다. 그러다가 새로운 세대들한테 자신들의 사고와 전통을 답습하려하고 강요를 하다가 신세대들과 대립을 하게 된다. 다시 말해 세대갈등인 동시에 보수와 진보의 대립의 성향을 띄는 경우가 잦다.

"


우리나라의 주권은 국민 개개인의 투표에 의해 형성되는 데, 20대 및 30대와 40대~50대의 차이를 보면 너무나도 숨막힌다(집단 간 11대 15의 비율이다). 각 세대에게 가까운 10대와 60대도 포함시킨다면 15대 23의 비율이다.


마치 키 150의 사람이 키가 230인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젊은이들에게 기성세대란 '주권형성의 숫자'만으로 보았을 때 너무나도 거대하다.


젊은이들의 '목소리'는 기성세대의 기득권에 맞추어 갈 수 밖에 없는 형세인 것은 아닐까.

사회 어느 곳에서나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느끼는 분위기는 그렇다.



경제력


젊은이들에게 자주적인 주권은 없다. 그렇다면 사회로부터 얻고 있는 물질적 상태는 어떨까?


각 대학 및 대학교에서는 매년 졸업생들이 경제활동을 위해 쏟아져 나오고 소위 기성세대들은 요즘 젊은이들이 건방지며 예의가 없고 열정이 없다고 한다. 이는 어찌보면 세대 간의 차이에 대한 이해 없는 생각일 뿐인데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들여다보자.


1999년과 2000년의 우리나라의 실질경제성장률은 9.5%와 8.5%였고, 2009년과 2012년의 실질 경제성장률은 0.3%와 2.3%였다.


10년 전의 상황에 비추어보았을 때, 우리 세대는 본격적으로 '저성장'의 시대를 헤쳐나가야 하는데 '구준생', '삼포세대' 등의 용어들이 생겨난 것을 보면 이러한 분위기를 실감할 수 있다. 이러한 저성장의 기조에 맞물려 실업률은 높아져만 가는데, 실제로 소위 '대기업'에 들어가는 친구들을 제외하면 대다수의 젊은이들은 월급 120에서 180만원, 초봉 1800에서 2400만원 선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게다가 이것 역시 미래를 보장받는 '정직원'은 아닌 경우가 흔하다.


기업들은 고용에 있어서 저성장에 따른 부담을 기존 인재(기성세대)들을 내보내고 새로운 인재들을 채용하는 방법으로 해소하지는 않는다. 우선적으로는 새로운 채용을 줄이는 방법을 택하고는 하는데, 이는 결국 저성장 시대의 부담을 젊은이들이 짊어지게 되는 것이다.


볼멘소리를 해보자면 10%성장 시대의 열매는 기성세대가 누려 놓고, 저성장 시대의 고통은 젊은이들에게 전가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젊은이들이 1명의 경제활동 인구로써 자주적인 살아가는데 아래와 같은 생활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1.대학교의 학자금을 모두 정부대출 지원을 받았다.

원금상환과 이자상환이 한달에 20만원 정도가 나온다.

2.스스로 구매한 아이폰6+의 할부 및 통신료가 한달 10만원이 나온다

3.보증금 없이 거주할 수 있는 고시원의 월세가 35만원이다.

4.교통비가 한달에 7만원 정도 나온다.

5.점심 및 저녁 식사비가 하루에 1만원이라면 한달 30만원이다.

6.주 40시간 아르바이트 혹은 회사에서 받는 월급이 120만원이다.


그러면 기초생활(이라고 쓰고 생존이라고 읽자)에 필요한 금액은 102만원이다. 한달을 열심히 일하고, 야식과 외식 및 데이트 없이 친구들과의 술자리 한번 없이, 내 손에 남는 돈은 18만원이다.


머리를 꾸민다거나 유행하는 옷을 사 입는다거나 운동화를 산다거나, 겨울에 입는 대중적인 코트나 패딩 하나가 18만원이 넘어가는 것을 생각해보면,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사회에서 우리 젊은이들에게 남는 것(주어지는 것)은 없다. 있다면 그저 기초생활(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것들뿐이다.


개인의 문제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인구에 회자되었듯이 구조적인 문제가 더 크다고 한다.


부동산을 손에 쥐고 광기의 레이스를 펼치는 기성세대를 생각해보면, 그들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지적할만한 입장은 아닌 것이다. 그 광기의 레이스가 끝나는 때의 버블붕괴는 결국 또 젊은이들이 짊어지고 갈 것이니까 말이다.



결론


주권도 없는 세대, 가진 것도 없는 세대.

자주적인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내 몸 하나 밖에는 없는 세대.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자신에 대한 확신 없이는 정말로 버티기가 힘든 세대,

바르고 빛날 것이라는 확신이 그 어느 세대들 보다 중요한 세대,


그 것이 지금의 우리들인 것은 아닐까?


기성세대가 말하는 ‘요즘 젊은이들이 건방지며 예의가 없고 열정이 없다’는 것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확신이 없어도 자주적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시대’와 ‘확신 없이는 자주적으로 살 수 없는 시대’의 차이로부터 발생하는 오해일지도 모르겠다.

(여기에는 기성세대는 확신이 없어도 자주적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는 숨은 전제가 있긴 하다)


볼멘소리는 그만두고 조금 더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

기성세대가 누렸던 젊음의 가능성보다는 더 좁은 의미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가능성'이라는 것이 여전히 열려있다. 내가 열어 갈 '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손에 들고, 치열한 시대를 받아들여 좌충우돌 하는 것이, 나에게도 사회에게도 기여하는 길이 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우리는 기성세대가 바라 마지않는 ‘젊음’을 가지고 있다. (실상 기성세대가 지금 시대의 젊음으로 돌아오고 싶다고 한다면 적극 말리고 싶지만)


그저 어떻게든 헤쳐나가 보는거다.

이것이 내 짧은 견해로 본 지금의 사회이다.



-Cheol


1. 사회인이 되기 위해 아침이면 마지못해 눈을 뜨고 늦은 밤이면 아쉬워하며 어쩔 수 없이 잠에 든다. 아직도 나는 접경에 머문다. 내게는 어렵기만 한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요구하는 사회와 수줍고 조용하기만 한 내 본질 사이를 오가며 망설이고 또 자주 멈칫거린다. 어디에든 잘 녹아드는 사회인이 되고 싶기도, 그리고 나의 개인성을 아껴주고 싶기도 해서 말이다. 사회를 떠나서는 살아낼 수 없으면서도, 도통 어울리는 것을 즐기지 못하는 나는 사회인이 된다는 게 퍽 힘들다.


2. “인마. 좀 웃어라, 웃어. 너는 어떻게 아직도 그 모양이냐.”


병든 사회 속에서 마음 상하게 만드는 헛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얼굴 붉히고 싶지 않아서, 밥을 빌어먹으며 살고싶지는 않아서, 내가 더 아프지 않기 위해서 하기 싫은 일도 웃으며 해내야 한다. 언제든 스스로를 배신하는 행동을 해내고 하고싶지 않은 언행을 지껄여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염병할 일에도 나는 어느새 적응을 해버리고 있다. 속 곪아가며 억지로 쥐어짜낸 여유와 능글맞은 모습이 이제는 습관이 됐다. 좋든 싫든 사회인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선 것 같다. 밥벌이를 잘 챙기면서도 반듯한 나로서 잘 살아가는 방법은 어떻게 찾아야 하는 걸까. 사회 선배들은 그런 방법을 알려 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Ho


2016년 1월 10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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