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도란도란 프로젝트 - 백여섯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준비_하나


당신과의 이별을 준비하려할 때
때는 이미 늦은 것이었다.


지금은 당신이 더 좋은 곳에서
나를 비추는 것을 안다.


가슴 속 깊이깊이
사무치도록 그리운 마음을
나는 채 정리해보기도 전에
당신을 떠나보내야 했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은
그토록 시리고 아파서
내가 주저 앉은 이 땅이
나를 덮치는 파도가 될지언정,
당신이 떠나는 바람 끄트머리라도 부여잡고픈
그런 애처로움이다.


당신이 떠나는 그 순간에도
나는 멀리서 기도했을 뿐이다.


내 행복을 쫓아 움직일 때에
당신은 홀로 얼마나 아파했을까
그리운 당신.


까슬한 손등도 음푹 패인 눈언저리도
이제는 곁에 없는 것을 깨달을 때면
텅 빈 부엌만큼이나
마음이 공허해진다.


그리워요, 잘 지내요
언제나 아껴주던 당신.
나도 많이 아꼈다고,
절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준비_둘


기회가 닿았을 때,
내가 준비된 사람이기를.


손을 놓치지 않고 꼭 잡는
준비된 사람이기를.


아쉬움 없이 당장이라도
달려들 만큼
매순간이 준비된 여자이기를.



-Ram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너에 대한 믿음이나 신뢰가 부족했기 때문이 전혀 아니였다.
너에 대한 준비가 전혀 아니였다.
이제서야 겨우 내 삶이 다시 내가 생각하고 있는 정상궤도에 올라왔기에
난 그저 조금만 더 나와 너에 대해 체계적으로 내 머릿 속에서 정리를 하고 싶었기에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만 뭉뚱그려 이야기를 했다.
너는 내 말을 충분히 오해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뒤늦게 밀려왔다.
아니, 네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나 역시 계속해서 몰랐을 수도 있었던 부분이였다.
오히려 너는 나의 이야기를 오해아닌 오해를 하며 들었기에
너는 너의 탓을 했다.
하지만 너는 아무 잘못이 없었다.
확실하게 의사전달을 하지 않은 내 잘못이 있을 뿐이였다.
다시 잘 풀어가고 싶었다.
내가 왜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지에 대한 이유들을 장황하게 늘어놨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말들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은,
나는 너와 함께이고 싶다는 사실이다.
사실 나는 그랬다.
나는 내 이야기를 그냥 있는 그대로 들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생각들을 섞지 말고,
그냥 내가 이야기하는 것들을 네 안에서 필터링하지도 말고,
그냥 내가 느낀 것들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도 각각의 사람인지라 각자 가지고 있는 프레임을 가지고 필터링을 한 채로
서로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나는 어쩌면 대화에 서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냉랭할수도 있는 대화들을 서툴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너에게 전달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숙한 나를 탓하며 잠이 들었다.



-Hee


무엇인가로부터 영감을 얻는다는 것.
내부로부터 피어나는 것.
그리고 외부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


EBS의 다큐멘터리에 푹 빠져보는 것.
아이스볼이 들어간 블랙러시안을 홀짝거리는 것.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구경 하는 것.
오랜만에 만난이와 책과 음악을 함께 나누는 것.
보고싶어하는 이를 그리워하면서도 내색하지 않는 것.


이 모든 것으로부터 영감이 꽃 피운다.


우리는 언제나 ‘준비’를 한다.
수능을 준비하고, 취업을 준비하고, 은퇴를 준비한다.
매 번의 과정에는 정말 무수히 많은 준비과정들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사회에 끼워 맞추어진 대로 그 과정들을 따라 흘러가곤 한다.


방금 이야기한 내용들은 그저 ‘사실’이자 ‘현상’ 혹은 ‘경향’일 뿐,
어떠한 ‘의미’도 없다.


난 아무래도 무엇인가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삶에서 ‘준비’라는 과정을 겪어내고 후회 없이 살아보기 위해서는 말이다.
한낱 부질없는 하나의 삶일지도 모르지만 인류사가 품고 있는
‘인문주의 혹은 인본주의(humanism)’가 실재한다고 믿는다면 말이다.


‘의미’를 찾는 과정은 결국 ‘목적의식’으로 귀결된다.


‘의미’를 찾는 과정만큼은 기나긴 방황의 시간이 될지도 모르지만,
또 어느덧 그 ‘의미’는 내가 찾던 것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결국 우리는 ‘소중한 의미’를 찾아내게 될 것이다.


메타적 관점에서의 ‘목적의식’이야말로 결과의 여부에 상관없이
우리의 준비과정을 ‘의미’있는 삶의 한 부분으로 이끈다.


나만의 방식대로, 나만의 ‘소중한 의미’를 말이다.
어쩌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람이란 것의 삶이 비슷해서
그 의미는 대부분 정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사랑할 너와
함께할 우리와
우리로부터 이어진 새로운 삶.


그런 것들이겠지만,
메타적 관점에서의 ‘목적의식’에는 언제나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마음이 존재한다.
구체적인 것들이야 내가 살아가고 있는 그 삶 자체이기에 구태여 남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내 삶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여행이 아닌,
고생도, 행복도 내가 누리기 위한 여정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Cheol


1.


느지막이 일어나 방청소를 하다가 사람이 다른 무엇을 자기보다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을 한다. 말하자면 나는 나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나보다는 덜 소중한 모든 것에서 낯설게 뒤돌아설 수 있는 준비를 하며 산다. 마음 어수선한 날에는 다른 사람의 부담스런 고민을 들어주기보다도 방청소 따위를 더 열심히 하는 것이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는 말을 빙자로 언제든 여러 사람에게 상처입히는데 주저함없다. 오로지 나를 위해서라면 다른 모든 것들에 한없이 무관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지긋지긋한 이기주의가 나를 사랑하는 올바른 방법은 아니겠지만 너무나 편리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다.


우습게도 남과 다른 나의 개별성은 유독 이렇게 비루한 곳에서만 삐져나온다. 나 외에는 도무지 모르고싶은 마음. 이 몰염치함은 지금 내 모습 그 자체라 할 수 있겠다. 너저분한 나를 위해서라면 의미없이 따뜻한 단어들을 들먹이며 숨가쁜 말들을 싸게 후려칠 수도 있다. 그러고는 언제고 뒤돌아설지도 모를 나를 위해 애써 마음 달구지 말 것을 바라고 부풀려놓은 말들 뒤에 감춰놓은 내 모습을 알아서 잘 수집할 것을 요구하며 상대가 딱 나만큼 나를 이용해먹길 바란다. 이렇게 편리하고 불편할 수가 없다.


2.


나는 내 사소한 강박을 사랑한다. 무자비한 게으름을 조금이나마 버텨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치밀하고 완벽하고싶은 내 강박 탓이다. 잔정도 없고 나태하기까지 한 내가 너에게 만큼은 세심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뱉어낸 단어들이 너에게 따뜻한 고백으로 닿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내 강박 탓이다.

너를 만나는 오늘 내 준비도 여전히 강박 덕에 순조롭다.



-Ho


2016년 1월 17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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