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도란도란 프로젝트 - 백아홉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너, 그리고 하나


해마다 봄이 잦아드는 이맘때 즈음이면,

꽁꽁 묻어두었던 너의 흔적도 조금씩 조금씩

아지랑이마냥 피어오르는 것 같다.


하루, 이틀, 몇 달 혹은 몇 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도 너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서

봄을 알리는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나를 간지럽힐것만 같다.


너는 봄을 닮지도 않았고

네 손길이 퍽 따스한 것도 아니었는데,

이렇게 계절이 바뀌며 너를 그리는 것을 보니

그래도 내가 널 많이 사랑하긴 했었구나- 하고 생각한다.


내게 힘들었던 순간을 꼽으라면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너를 만난 모든 순간이라며 못되게 말할 것이다.


허나, 행복했던 순간을 묻는다면

너를 만나려던 순간부터 네가 생각이 나는 지금까지

모든 찰나의 순간이라 말할 것이다.


아프고도 강렬했던 사랑.

너는 내게 그러했던 사람.



너, 그리고 둘


문득 2천개가 넘는 스팸 메일로 가득찬 메일함을

정리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약 3년 전의 메일부터 거꾸로 시작하여 중요한 메일을 걸러내며

휴지통에 한가득 메일을 버려내고 있었다.


그리고 스팸 메일 무더기에 뒤엉켜 드문드문

너와 내가 주고 받았던 메일 몇 통이 보였다.


구태여 추억하려 그 메일들을 읽지도 않았고

그걸 보았다고 네가 그리운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이런 시절이 있었구나,

너와 내가 이런 시간을 보냈었구나 하는 마음에

조금 먹먹해진 기분이었다.


너는 모를 나의 기억들,

나는 아마도 모를 너의 힘들었던 순간들.

잘지내.



-Ram


1.

단단하게 마음을 먹었다고 생각했다.

정말 잘하고 싶다는 마음에 시작했다.

하지만 빈틈이 많았다.

마치 유리컵에 커다란 조약돌들만 쌓여가는 느낌이 들었다.

조약돌 사이에 생겨난 빈틈이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그런 상태.

가끔 유리컵 안에 모래알들이 우수수 한 웅큼 떨어지는 것 같긴 하지만,

여전히 빈틈은 많았다.

그냥 유리컵 안에 시멘트를 부어서 꽉 차게 굳어버렸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되기가 힘든가보다.

그런 생각이 들자 단단하게 마음을 먹었던 내 마음에게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한 톨의 의심없이 마음을 다 잡았었는데,

나만 잘하면 될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부분들이 많이 보이니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내 자신에게 심통이 났고, 실망을 했다.

어디서부터 다시 마음을 다시 굳게 잡아야 할지 모르겠다.


2.

사실 넌 항상 내게 따뜻하지만은 않았다.

나 혼자 무인도에 떨어진듯 외로움이 내 옆에

자리를 꿰차고 있을 때가 많았다.

생각해보면 외로움은 그냥 나만의 고유한 감정이였다.

어느 누구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고유한 감정.

그 외로움은 평생 나와 함께 같이 가는 감정이였다.

허무하고 허탈했다.

이 외로움이 사라지길 바랐는데.

사라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버리자

정말 허무하고 허탈했다.

난 그냥 항상 너의 따뜻함의 부재를 탓헀었는데.

너는 나를 외롭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화살 촉이 다시 나에게로 겨뤄지고,

나는 다시 막막해졌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내 옆에서 항상 웃어주었으면 좋겠다.

든든하게 있어주었으면 좋겠다.

힘이 들때 기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심통부릴때 받아주었으면 좋겠다.

내 욕심이 빤히 드러나는 행동에도

마냥 귀엽게만 봐주었으면 좋겠다.

무조건 내 편만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4.

너와 함께 선선한 밤거리를 걷고 싶다.


5.

난 네가 누군지 몰랐어

너는 햇살이었고, 바람이었고 즐거운 충동이었지

너는 가루같은 물방울이었고, 춤이었고, 맑고 높은 웃음소리

항상 내게 최고의 아침이었어.


검고푸른날들, 황강록


6.

너의 차가운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내려앉는 것만 같다.

사실 나는 어느 누군가의 차가운 모습을

마주했던 경험도 정말 생각보다 없을뿐더러,

앞으로도 그런 경험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아서,

너의 차가운 모습을 볼 때면

난 정말 산산조각 나는 것만 같다.

차갑게 대하는 널 마주하는 나는

정말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만 같아서 끔찍하게도 싫다.


7.

잦아드는 피곤함과

스며드는 외로움과

종종 부딪히는 갈등을 맞이해도

나는 나를 잃지 않으려고 부단한 노력을 할 것이다.

내 색을 다른 색으로 물들이지 않으려고

나를 지켜내려고 꿋꿋하게 버틸 것이다.

선명한 나만의 빛을 내야지.



-Hee


나라는 사람이 하나의 유리잔이라고 생각해본다. 그 속에 담긴 투명한 물은 나의 감정의 샘이다. 나의 샘이 담긴 잠은 어느 때는 고요하고 어느 때는 출렁인다. 또한 어느 때에는 어두운 빛이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밝은 빛이기도 하다. 나의 감정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색도 있지만, 분명 유리잔에 담긴 샘은 주변의 빛에 물들기도 한다.


어떠한 존재만으로도 빛이 나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모든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의 빛을 가지고 있다. 은은하고도 마음편한 빛을 띄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노골적인 빛을 띄는 사람도 있다. 바라보기만 해도 열정적인 빛이 나는 사람도 있고, 도무지 어떠한 느낌의 감정인지 알 수 없는 빛을 띄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러한 수 많은 빛들 중에 그 사람을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은 조화롭고, 새콤하며, 은은하기까지 하다.

분홍빛이 잘 어울리지만 노골적인 분홍빛이 아닌 사람.

존재만으로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사람.

단지 외모가 아니라 그저 자신의 모든 것이 조화로운 사람.

그 사람이 그렇다.


참 오랜만에 보는 기분 좋은 사람이다.


누군가는 말하기도 한다. 누군가를 그렇게 ‘기분 좋은 사람이다’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 아니냐고 묻기도 한다. ‘좋아한다’라는 표현이 많은 감정들을 가로채가는 아귀 같은 것임을 생각하면, 나의 감정이 ‘좋아한다’라는 영역에 속할 수도 있다고 대답할 뿐이다.


나는 이제 안다. ‘좋아한다’는 하나의 스펙트럼 속에는 무수히 많은 감정들이 뒤섞여 있음을 말이다. 어찌보면 ‘좋아한다’라는 표현보다는 어느 방송의 ‘그린라이트’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그래 그 사람은 나에게 온통 초록빛을 선사하였다.


하지만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우리 사이의 ‘관계’가 아니다. 좋아한다든지 그린라이트라든지 하는 표현들은 ‘관계’에 집중할 때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좋은 관계였으면 좋겠다.

더 친근한 사이였으면 좋겠다.

이 방향은 맞지만,


너를 온통 나만의 것으로 소유하였으면 좋겠다.

우리를 어떠한 언약으로 속박하였으면 좋겠다.

이 방향은 틀리다.


나는 그저 너의 존재에 감탄할 뿐이고 감사할 뿐이다.

우리 사이에 더 굳건한 신뢰관계와 그로부터 우리 사이에 소중함과 애틋함이 생기는 것은 바라 마지 않다만 그 것은 너의 조화로움과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에 비하면 별 것 아닌 것이다.


다시금 나의 잔으로 돌아오자.

너에 대한 경외도 좋다지만 그 뿐이다.

너가 나에게 그렇듯, 내가 너에게 그러한 밝음이자 빛이고 싶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나의 잔을 뚝딱거릴 뿐이다.

더욱더 맑아지도록 빚어내고 빚어낼 뿐이다.

너 역시 나의 존재만으로도 깊은 충만함을 느끼게 하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 그저 나에게 애쓸 뿐이다.

이런게 내가 너에게 다가가는 방법이다.


인연이란 것은 부디 삶의 우연으로부터 생겨나길 기도할 뿐이다.



-Cheol


“너, 내 강박을 이해하지. 좀처럼 완벽할 수 없는 우리는 도무지 가까울 수 없구나. 그 음습하고 불안한 모습을 언제까지 이해하고 다독여야 하는지, 내가 얼마나 더 위태로워야 하는지 말 해. 포기와 무관심이 버릇이 되기 전에, 어서.”


서로가 휘청일 때마다 희생을 강요당했던 우리는 이제 서로를 외면하고 싶다. 너를 항상 응원한다는 거짓말은 조금 더 쉽게 할 수 있게 됐고 진심어린 말 한 마디를 꺼내기는 훨씬 더 어려워졌다. 끝내자는 말이 날 숨 뒤에 습관처럼 달라붙는다.



-Ho


2016년 2월 7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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