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백 서른 번째 주제
네 맘을 그대로 바라보기에는
내가 너무 작았다
나는 요만큼의 두려움도
둥둥 부풀려서 스스로를 감싸고
살아온 마음이라서,
고작 그 몇 마디 말에도
지레 겁이 났다
어째서인지 시간은 더디게 가고
해 뜨는 소리에 발 맞추어
마음이 바스라진다
도망치고 싶었다던가
그리워 했다던가
시시콜콜한 변명 아래로
얄팍한 내 마음은 뭉그러진다
그런 마음이었다
용기의 모서리도 내어보지 못하는,
그 정도 뿐인.
-Ram
나는 용기가 없었던 것일까, 있었던 것일까.
아니다. 나는 용기가 없었다.
-Hee
이번 주는 휴재합니다.
-Cheol
버스 정류장에 서있는 여자에게 가서 전화번호를 물어보고 오라는 말에 손사래 쳤다. 정 부끄러우면 직접 가서 물어봐주겠다는 말에 기겁하며 친구를 말려야 했다. 이미 그런 식으로 술집에서 다른 친구에게 여자친구를 만들어 주었던 그의 전적이 스스로에게는 아주 대견한 일이었던가. 그게 아니라면 오래도록 혼자인 내가 못마땅했던 걸까. 언젠가 남자친구가 있다는 백화점 화장품 코너 직원에게 두 번이나 더 찾아가 정말로 남자친구가 있는 게 맞냐고 물어보고 올 정도로 무례하고 어떤 의미로는 용감한 친구의 호의가 어지간히 발칙하다고 생각했다.
얼마 뒤 집 근처 도서관에서 앞 자리에 이상형에 퍽 가까운 여자가 앉았다. 하루키 소설 속 아오마메를 나는 아주 좋아하는데 그 여자는 늘 상상해오던 아오마메의 모습과 아주 많이 닮아있었다. 수수한 얼굴에다 왠지 군더더기 없이 매끈한 몸매를 가지고 있을 것 같은, 차분하고 섬세한 성격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 여자였다. 얼굴을 보고 성격까지 짐작해버리는 일은 우습지만 그렇게 생긴 여자는 아무튼간 분명히 그럴 거라 속으로는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뭘 신경쓰냐. 어차피 다시 볼 일 없는 사람인데 부끄러울 게 뭐 있어. 그냥 가서 물어봐. 알려주면 좋은 거고 아니면, 그래도 나쁠 거 없잖아?’
모르는 사람의 연락처를 다짜고짜 물어본다는 건 나로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종류의 일인데 그 순간에는 불경스런 친구의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언젠가 수영장을 같이 다니던 친구가 호감가진 사람에게 말 한 마디 못 건네는 모습이 답답해 시키지도 않은 대필편지를 썼을 때처럼 한없이 저속해지고 싶었다. 다시 만나게 될 확률은 없다시피 적었고 때문에 마음은 조급하고 속은 타들어갔다. 다행히 더부룩한 느낌으로 멍하니 있는 사이 여자는 생각보다 빨리 떠났고 남은 빈자리를 보며 나는 안도했다.
“그래가지고 결혼은 어떻게 할거야.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쉬워진다니까 그러네?”
나무라듯 말하는 친구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앞으로도 그런 용기는 갖지 못하겠지만 나는 차라리 잘 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운명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좋아하는 소설과 영화 속 주인공들은 결코 하지 않을 행동을 나 역시도 하지 않았다는(못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
-Ho
2016년 7월 2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