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백 스물 아홉 번째 주제
그냥,
마음이 바닥나는 것만 같았다.
폭 안기던 그 정도의 어깨와 손길이
사르르 녹아서 사라질 것만 같았다.
불안한 마음의 흔적만으로도
조각난 틈을 헤집고 들어와
나를 짓누르고 아프게 할 것만 같았다.
나는,
조금의 자존심도 남아있지 않은 여자라
너로 채워지지 않는 날들을 헤아리며
남겨진 시간들을 미루고 있었다.
나는 자꾸 당신이 그리워지는 날들을
자꾸만 만들어
오늘이 되어 네가 그리운 것인지,
네가 그리워 오늘이 되었는지
-Ram
1.
나는 상처받기가 싫었다.
그래서 내게 가시가 돋았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서든 내 자신을 방어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서
오히려 가시돋힌 말들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게 어떤 때에는 습관이 되어서 정말 아무런 사심없는 말들까지도
타인에게 상처를 주었던 적이 종종 있었다.
그렇게 생각지못하게 오해를 산 적도 많았고,
상처받은 타인이 내게 먼저 다가와 그런 이야기를 건네기도 했다.
그럴때마다 차라리 내가 조금 더 유해지고 상처를 받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해보았지만
말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어느 순간 내가 먼저 철벽방어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느껴졌다.
그래도 옆에서 나를 지켜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어떻게든 내 편이 되어주고, 내가 잘 못 던진 이야기들이나, 말투 등을 바로 잡아주는 사람이 있다.
그런 존재들이 내 마음을 녹이고, 내가 조금은 더 유해지도록 노력하게 만드는 것 같다.
안그래도 요즘 굉장히 예민한 시기다.
아마 내일도, 일주일 뒤도, 어쩌면 한 달 뒤까지도, 예민한 시기가 지속될지도 모르겠다.
예민함을 느끼는 내 자신도 에너지소모가 상당하지만,
내 예민함에 찔리는 사람들도 상당할 것 같은 예상때문에 조금은 더 유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난, 좋은 사람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2.
엄지발톱이 다시 건강해졌다.
몇 년에 걸쳐 너무 앞 코가 뾰족한 하이힐, 마라톤, 무리한 등산, 스노우보드 등으로
엄지발톱이 엄청나게 고생을 했다.
그래서 많이 빠지기도 했고, 피멍이 들기도 했고, 죽은 발톱 아래 새 발톱이 나기도 했고.
정말 몇 년을 꾸준히 기다렸다.
어쨌든 발톱은 새로 자라기 때문에,
언젠가는 새 발톱이 죽은 발톱들을 다 밀어내는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드디어 올해 초에 나는 새로운 엄지발톱을 만날 수 있었다.
다시 내 발톱들을 아껴줘야지.
-Hee
혼자인 시간이 나쁘지만은 않다.
혼자이기에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
그리움, 공허함,
무엇인가를 느낀다는 것. 그 것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그리움 없이는 진솔한 애틋함이 있을 수 없듯이
공허함 없이는 진솔한 충만함이 있을 수 없듯이
느껴지는 이 감정을 쪼개고 쪼개어본다.
그리움 한 줌. 공허함 한 줌. 그리고 또 무엇인가 느낄 수 있을까
쪼개어진 감정들은 너에게서 다시모여 새로운 황홀함을 만들어낼까?
멀어진 우리는 결국 다시 만날수는 있는걸까
-Cheol
1.
요즘, 아침마다 일어나는 게 힘들고 온 몸이 힘없이 느껴지는 건 순전히 점심에 먹는 샐러드 때문일까. 아침마다 만든 샐러드를 점심에 먹고 나면 저절로 한숨이 쉬어진다. 간단한 샐러드라고 말하기에도 조금 민망할 만큼 단출한 샐러드. 오후 열시 쯤 마트에 가서 제 값보다 싸게 가져온 쌈채소, 파프리카, 토마토, 두부, 바나나, 달걀 따위를 아무렇게나 찢고 썰어서 먹는다. 드레싱도 없이 먹는 샐러드는 역시 고기같은 음식에 비하면 아주 많이 빈 듯한 맛이고 다 먹고 나면 가끔씩 ‘아, 정말 더럽게 맛없네.’ 같은 생각이 입 밖으로 자연스레 삐져나온다. 건강을 생각해서 먹는다지만 이렇게나 괴로운 맛이라니. 나는 외려 더 아파지는 기분이고, 아무래도 아삭한 식감과 씁쓰레한 맛을 도저히 좋아할 수 없을 것 같다.
2.
큰 아픔을 가진 사람은 더 작은 아픔을 가진 사람에게 어쩐지 우쭐하게 되는 것 같고 그런 심리는 그 나름대로 또 마음아픈 일이다. 계속해서 모호한 심리적 우위를 차지하려면 늘 아파야만 하고 그게 싫다면 아무렇지 않게 떠올릴 수 있을 만큼 극복해내야만 한다. 아픔을 겪은 사람이어야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고 아팠던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야 마음 저릿한 글을 쓸 수 있다는데, 아픔을 극복하고 나면 무어든 얻게 되는 것들이 있는 걸까. 딴에는 아픈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런 시간들을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래도 좋았었지.’ 말하며 떠올릴 수 있을 만큼 덜 아픈 사람이 됐다. 그래서 얻은 게 뭔지는 사실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전보다 좋아진 부분부분이 있다는 확신이 생긴다.
-Ho
2016년 6월 26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